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 식물에 새겨져 있는 문화 바코드 읽기
고정희 지음 / 나무도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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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신화, 전설의 관계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있다. 도서관 나무. 신화 관련 서가 책은 다 털어 보고 있는데 481번대에 있는 책들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맘에 든다. 독일유학 출신이어서 그런가, 서구 신화 소개가 알차다. 가령 버드나무 부분에서 다른 책들은 고구려 건국신화의 유화 정도만 이야기하는데 반해 이 책은 웨일즈 신화까지 연관지어 말한다. 그 식물에 관한 약효, 역사, 설화, 전설 등등을 최대한 많이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어 책을 읽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전공 외 분야는 좀 약하다는 것. 예를 들자면 '어떤 사연인지 이 흉노족이 김일제라는 이름으로 신라의 왕족이 되어 한반도에 불쑥 나타나는 것이다. - 본문 121쪽'는 식으로 흉노족과 신라 관계를 정설로 놓고 설명하는 부분이 두세 군데 있다.

 

그리고 이하, 쓰는 내용은 내가 좀 별나게 예민해서 나만 껄끄럽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사람의 혼과 식물의 혼이 교감하면서 인간사가 진행이 되는데 여기서 식물이 오히려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못하니 수동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정보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을 은밀히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정보 시스템이 바로 신, 혹은 혼인 셈이다. - 본문 64쪽'라며 제목처럼 식물이 중요하다는 것,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라는 것을 역설한다. 그 한 예로 감자를 든다.

 

내 생각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인간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디언들이 몰살당해 미 대륙이 텅 비자 다시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 '감자의 신'이 개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감자의 신이 유럽의 감자를 썩게 해서 굶주린 사람들을 미대륙으로 불러들인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기 전에 우선 감자가 유럽 사람들의 주식이 되어 절대 포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작물이 되어야 했다. - 본문 56 ~ 57쪽에서 인용

 

그런데, 난 이런 관점이 무섭다. (물론 저자는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소개만 했다. 저자분의 주장이 아니다 오해는 마시길) 감자의 신이건 고구마의 신이건, 자신의 계획을 위해 인명을 희생시키는 신을 설정하여 세상과 역사를 보는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무조건 싫다.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어 신의 섭리 어쩌구하는 인간에게 질려서인지, 그냥 이 대목 읽는데 소름이 끼쳤다. 텅 빈 미 대륙에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아일랜드 등 유럽 빈민들을 기아게 처하게 하는 신이라니? 진정 신이라면 미 대륙을 텅 비게 인디언을 학살한 자들을 처단해야 할 것이 아닌가? ,,, 이 책의 주제나 중심 내용과 관련이 없지만, 세상에, 식물을 놓고도 이런 식으로 역사 왜곡하는 사람들이 다 있다니,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책은 도판이며 편집 상태가 좋다. 여러 식물들과 서구 신화 관련해서 두고두고 찾아 보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버드나무와 해리 포터 이야기랑 개암나무랑 도깨비 이야기, 내가 쓰려고 했는데 벌써 이 분이 쓰셨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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