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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밥상으로 보는 조선 왕조사'라는 부제 그대로, 왕의 밥상을 통해 당시 조선사회의 사상과 지배원리를 접할 수 있는 대중역사서이다. 신선한
접근방식이 재미있다.
책의 구성을 소개하자면, 1장에서는 왕의 식사 장면을 소설처럼 묘사하여 수라를 준비하고 들이는 절차를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했다. 2장은 조선조 26대 왕(순종 제외)의 치세를 밥상과 관련한 기록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선조의 히스테릭한 성질을
밥상머리 발언으로 보여주는 등 정말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어떤 방향으로 접근하든 고수가 파헤치면 진실은 같게 나온다는 뻔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장이었다. 3장에서는 왕의 밥상 관련한 제도와 관청, 사람들, 식사법 등을 소개하며 4장에서는 '밥상의 우주'라는 제목으로 음양오행
사상을 반영하여 왕의 양생을 위한 노력을 했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게 해 준다. 마지막 5장에서는 '사람과 더불어 먹는다'는 왕의 밥상의
정치학을 보여 주는데, 아마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 백성의 고혈 착취만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진상'을 통해 각 지방의 상황을 살피는 순기능이 있음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흉년이나 가뭄 등의 경우 백성과 함께
굶는다는 좋은 의도가 담긴 '감선'의 경우 왕의 정치적 의도가 실상 더 많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도 있어서 신선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왕의 밥상에서 건강법이나 음식 자체만을 맛보지 않았다. 내게는 조선 사대부들의 지배 이념과 사상이 왕의 밥상을 둘러싸고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보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12첩 반상에 표현된 음양오행사상이라든가 감선을 둘러싼 알력 등을 통해, 나는 왕의 밥상 역시 조선
사대부들의 성리학 이념이 펼쳐지고, 왕을 전제 군주로 모실 것인지, 아니면 단지 제1사대부로서 조선의 지배 이념을 체현하는 존재로만 여길
것인지를 보여주는 팽팽한 긴장의 현장으로 보았다. (이 점은 육류위주, 희귀하고 비싼 요리 재료들을 고집하는 유럽 왕들의 식탁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 )
이러한 이념 체계로서의 왕의 밥상을 정면으로 거부한 왕은 단 둘이다. 연산군과 인종. 군주 자신의 쾌락만을 강조한
밥상을 원하고 받은 연산군과, 균형잡힌 밥상의 우주 자체를 거부한 인종. 둘다 각각 극단의 입장에서 성리학적 이념을 거부하거나 과도히 추구한
왕들이며, 그 결과 그 둘은 파멸에 이른다. 참으로 흥미롭다.
사실 하루에 두세 끼를 꼬박꼬박, 적당한 밥과 반찬을 챙겨 먹으면
건강은 유지된다. 사옹원 제조니, 상선이니, 상식이니, 수십 명의 숙수와 궁녀들이니 법석을 떨 필요도 없으리라. 그러나 전통 체제에서 왕은
그렇게 '실용적으로'만 대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하고 지엄한 자리에 있었다. 그의 건강을 지극하게 챙기는 일과, 밥상을 통하여 신하들과, 나아가
만백성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은 왕의 밥상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다. '12첩 반상'은 사치의 상징이 아닌 엄숙한 예법, 또는 밥상의
정치성(공공성)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 본문 230쪽에서
* 129쪽 위에서 6번째 줄에 '경종은 여종 출신인
장희빈의 아들이고'라는 대목 틀린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다른 책에서, 장희빈의 모친이 여종 출신인 것으로 읽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