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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왜 자꾸 대중역사서를 읽게 되는 것일까? 제대로 지식을 쌓으려면 1차 사료나 전문학자의 고전명저라고 꼽히는 책들을 읽는 것이 훨씬 나은데
왜 자꾸 신간 대중역사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의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는 순간, 나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았다. 나는 대중 역사서들을 통해 1. 우선 쉽게 통사적 지식을 얻기를 원하는 것 같다. 2. 내가 알고 있는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고 다른 평가를 접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3 현실의 모습을 과거 역사를 통해 더 명확히 보거나 현실을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세 가지로 말이다.
고구려사 등 이 저자분의 일부 책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이덕일 저자의 저서는 다 찾아 읽는데,
이분의 저서를 읽는 이유는 당연히 3번이다. 내가 보는 이 저자분의 매력은 강단 사학자들과
달리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발언을 과거 역사인물을 통해 정확히 해 주시는 점이다. 이번의 신간 <윤휴와 침묵의 제국>을 통해서도
그런 매력에 빠질 수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윤휴는 17세기, 송시열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평생 공부만 하다가 현종
15년(1674)인 만 57세에야 가슴에 품고 있던 뜻을 세상에 펼치지 시작했다. 그의 뜻이란 다름아닌 북벌과 대개혁 실시이다. 그러나 삼번의
난이 끝나갈 즈음인 숙종 6년(1680), 윤휴는 사사당한다. 그의 죄는 서인들처럼 말로만 북벌을 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북벌을 추진하려 했던
것과 양반 사대부들도 평민들과 똑같이 의무를 지는 대개혁을 실시하려했던 것 뿐이다. 그는 북벌을 위해서는 국력이 강해져야 하고, 국력이
강해지려면 먼저 백성들의 생활을 돌봐야 한다고 믿었다. 여기까지는 당시의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점은,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려면 양반들의 계급적 특권이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는 데에 그 시절 지배계급 출신인 그 자신의 생각이 도달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사는 시대와 환경의 한계와 자신의 이익을 떠나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은가! 그랬기에 그는 광범위한 적을 만들게 되어
끝내 역모죄도 아님에도 사약을 받는다. 유언을 남길 것도 거부당한 채. 윤휴의 죽음의 원인을 따져보면 청나라와 서인 정권을 두려워한 숙종의
문제가 더해진다. 그리고 노론의 역사는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송시열과 서인을 북벌추진의 주체로 기록하게 된다. 이후 조선은 개혁에 대해서 침묵의
제국이 되어 버린다.
앞서, 내가 이덕일 저서를 읽는 이유가 현실의 모습을 과거 역사를 통해 더 명확히 보게 만드는 점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의 경우, 그 옛날 숙종시대 서인 남인 정치인의 모습을 떠나 지금 현재 현실 정치인의 모습을 떼거지로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말로만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서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보다 강대국 중국 우선인 지배계층의 모습에서, 개혁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나
현실적으로 당장 추진이 불가하다는 말만 외워되는 사대부들의 모습에서, 서인이고 남인이고 정당과 상관없이 계급적 특권이 걸린 문제라면 당색이
없어지고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는 모습에서, 결국 정권이 바뀌어도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저자의 전작인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와 <조선의
승려는 북벌을 주장했다>와 겹치는 내용, 같은 견해가 보여서 책 읽는 동안 긴장을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좀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조선은
노론집단이 말아먹었다,라는 주장의 연속이어서 내용이 좀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책 말미에 참고문헌 목록이 없어서 의아했다. 본문에 많이 인용한
<수옥문답>과 저자가 발견했다는 윤휴의 가야금 악보 등 궁금한 서지사항이 많았는데 말이다. 나는 이런 역사서를 읽을 때, 정확한 자료
목록을 보지 않으면 본책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그저 휩쓸려 갈 수 있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