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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 거상 김만덕
정창권 지음 / 푸른숲 / 2006년 3월
평점 :
18세기의 제주 여성 김만덕은 양민으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어 기생의 양녀가 되었다가 기적에 올랐다. 성인이 된 후 기적에서 빠져
나와 결혼하지 않고 장사를 시작했다. 시세차익 계산에 빠른 그녀는 거부가 되었으나 제주에 최악의 기근이 닥친 1795년 전 재산을 내놓아 굶주린
백성을 살렸다. 그 공으로 의녀 자격으로 정조를 만나고 금강산 유람을 한다. 채제공은 <만덕전>을 지어 그녀의 행적을 기린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그녀를 만덕 할망으로 부른다. 할망은 꼭 할머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 어머니로서의 한 어머니, 즉 여신이다.
김만덕에 대한 구체적 전기 사항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책을 검색해보니 김만덕에 대한 단행본은 전체 얼개 외에 빈 구석은 거의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은 소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제주 지자체의 문서나 논문을 제외하고는(이것도 많지 않다) 현재 유일한 김만덕 연구
단행본 서적이다. 김만덕과 관련한 현재의 모든 연구 자료가 소개되어 있다. 그래도 책 분량이 나오지 않아서인지, 각 부분마다 저자가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내용이 같이 있다.
나는 만덕이 기적에서 빠지게 된 과정과 자수성가한 만덕이 어떤 계기로 전재산을 투척했는지가 궁금한데, 이 책의 저자는 이 부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처리했다. 기적에서 빠지게 된 것은 문서 증거를 보이며 그녀가 논리정연하게 따진 것, 기부하게 된 것은 그녀의 일을 봐준 집사격인
남자 문명을 잃고 나서 얻은 깨달음 때문인 것으로 소설로 표현했다. 다른 책을 봐도 다 이부분은 정설이 없다. 작가의 상상으로 메꾸어간다.
반면 김만덕이 치부한 과정은 객관적으로 추적 가능하다. 당시 상업에 대해 서술한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런
부분이 충실하다. 소설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18세기 제주를 비롯, 전국 유통업과 포구, 객주의 발달 과정을 같이 서술했다. 마음에
든다.
김만덕은 2009년, 5만원 신권에 여성 인물 도안을 넣기로 할 때 후보에 올렸건만 신사임당에게 밀렸다. 그녀가 관기 출신이라는 것이
200여 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녀를 있는 그대로 조명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그녀는 이미 그녀를 옥죄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났거만,
우리 중 일부는 아직도 그 굴레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