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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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소설 자체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 그 등장인물을 흉내내는 얼치기 인간들이 맘에 안 들어 거리를 두고 있는 소설이 꽤 있다. 와타나베가 등장하는 <노르웨이의 숲>이 그랬고, 조르바가 등장하는 이 책이 그랬다. 이른바 '책 제비'로 불리는 일부 문학한답시는 얼치기들은, 여자를 꼬시는데 와타나베와 조르바를 인용하곤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만 두 소설에 편견을 가져 버렸다. 두 소설을 읽기는 읽었지만 시큰둥했다.

 

그러다 이번 겨울, 한 가지 작업을 하며 더불어 한 가지 조금 힘든 일을 겪어 가면서 갑자기 조르바가 떠올랐다. 이제 나도 나이가 꽤 들었는데,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이제는 그를 제대로 만나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제발 나도 좀 자유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고, 빠져 들었고,,,, 빠져 나왔다. 역겨운 인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삶이 있었다. 먼저 깨달아 행동에 옮긴 자의 자유로운 삶이.

 

먹고 마실 때에는 그 음식에만, 여자를 만나 키스할 때는 그 동작에만 집중하는 조르바. 현재를 즐기는 조르바. 그 조르바의 자유로움은 얇은 지식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1930년대의 그리스 크레타. 그 현장에서 지옥을 겪어봤기에 그는 더 현재를, 인간을 뜨겁게 사랑할 줄 알게 된 거였다. 예전에, 어린 나는 그것을 읽어 내지 못했다. (아니면, 그때 내가 읽은 책은 <희랍인 조르바>여서인지도 모르겠다. ^^)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안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 본문 328 ~ 329쪽에서 인용 

                  
지금 다시 작가 연표와 함께 소설을 읽어 보니, 이 소설은 60대의 작가가, 30대에 만났던 조르바에 대해, 그 때는 이해못하고 무작정 선망했던 60대의 조르바를 이제는 온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소설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심정으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쓴 작품이 아닐까. 아, 지금은 이 정도까지만 느끼고 생각하련다. 아무 편견없이 이제 조르바의 애정행각과 언어표현이 주는 역겨움에서 자유로와진 것만 해도 난 이미 자유이고 조르바인 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 본문 135쪽에서 인용

 

그래도 난 아직 어린가부다. 조르바가 다른 말 거칠게 떠들어대는 대목보다 이런 잔잔한 대목이 더 좋다. 난 늘 나보다 말 많은 남자가 싫다. 현실이든 소설 속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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