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역사 세계신화총서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영웅 신화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찾아 읽은 책이다. 얇지만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책장 넘길 때마다 읽을 분량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 배고픈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읽었다.

 

이 책은 역사라서기보다는 문학사나 종교사 책이다. 이렇게 뜻밖에 보석같은 책을 만나게되면, 모든 史자 붙는 책에 열광하는 나의 습성도 꽤 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책 전체를 7장으로 나누어 신화의 역사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 시대 구분 기준은 일반적인 통사서 기준과 같다. 1장에서는 신화의 기능에 대한 대략적 설명을 해 주고 2장부터 본격적 신화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그 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기원전 4000년경부터 800년 경까지의 초기 문명 시대, 그리고 현대의 종교 기반이 발생한 기원전 800년경에서 200년경까지의 기축시대를 다룬다. 저자는 기축시대에 이어서 탈기축시대를 기원전 200년경에서 기원후 1500년경까지로 잡는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시대를 신화의 역사와 관련해서 주요한 분수령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다. 마지막 제7장 신화의 대변혁기는 1500년경부터 현재까지이다. 현재 신화가 하던 역할은 소설이 하고 있다는 말로 신화의 역사가 끝난다. 역사의 새 시대로 들어설 때마다 인류와 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고, 이는 신화에 반영되는 것이다.

 

제1장인 '신화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본격적 신화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전에 신화가 갖는 의미와 기능부터 밝힌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기에 인간의 상상력은 종교와 신화를 만든다는 것. 신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곤경에서 헤어날 수 있게 도와줘서 이 세상을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만든다는 것. 그래서 신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다음 장인 2장에서는 기원전 2만년 경에서 8000년경까지 '구석기시대-수렵민의 신화'를 서술한다. 나약한 인류는 자연을 접하면서 하늘과 대지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낸다. 네안데르탈인의 장례 풍습을 통해서도,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를 통해서도 구석기시대의 신화의 형성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수렵민들이 사냥 과정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종교와 신화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특히 이 시기의 샤먼와 영웅신화 형성 부분이 읽기에 재미있었다.  신석기 혁명을 거쳐 인류는 농경을 체험하고 씨앗이 죽어서 부활하는 과정을 신화에 반영하게 된다. 또한 고된 농업 노동 과정을 잃어버린 낙원의 신화로 반영하기도 한다. 초기 문명시대는 흔히 세계 4대 문명시기라고 불리는 시기인데, 도시가 건설되면서 새로운 도시의 건설과 유지에 대한 경험이 신화에 반영된다. 도시 경험을 한 인간들은 자신들을 독립적인 개체로 보게 되어 인간의 역사가 신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 시대 신화의 재해석이 이 시기에 일어나 신앙의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공백은 기축시대에 놀라운 예언자와 현인들이 등장하여 인류 신앙의 발전에 중추역할을 함으로써 메꿔진다. 유교, 도교, 불교,힌두교, 중동의 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등장한 시기이다. 이 시기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격변이 있던 지역에서 신화에 내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변화가 일어나 현재까지 인류의 종교와 신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칼 야스퍼스는 이 시대를 기축시대(Axial Age)라고 불렀다. 이어지는 탈기축 시대는 16세기까지인데 기축시대의 일신론을 다시 언급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약진을 다루고 있다. 이 서구의 세 일신교는 부분적으로나마 신화적인 아닌 역사적 바탕을 갖고 있는데, 이 역사적 사건은 종교적 영감을 주기 위해 제의 등으로 신화화된다. 마지막 시대는 종교 개혁이후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는 산업 혁명 등으로 로고스가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신화의 빛을 잃게 한 시대이다. 그리고 종교 개혁가들은 전시대까지 상호보완적이던 신화와 종교의 관계에서 신화를 분리해냈다. 그러나 로고스는 인간 의식의 심연을 설명해주지 못했고 신화를 잃은 현대인들은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저자는 로고스가 대신할 수 없는 신화의 몫을 인정하고 현대의 신화인 소설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장하기를 권한다. 예전에 신화가 했듯이. 그러므로 신화는 매번 다시 쓰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화의 도움을 받아 일변 무질서하고 산만하게 보이는 사건들에서 핵심을 파악하고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화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효하기 때문에 진실인 것이다.

 

이상 이 책의 내용을 간추려 보았다. 쓰다보니 너무 거칠어서 오히려 이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해를 하게 만드는 요약같다. 책의 곳곳에 신화와 인간의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문장이 많은데, 이렇게 간추리다 보면 그 내용을 다 놓치게 되어 안타깝다. 그래서 맛보기로 본문 인용을 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씨앗은 곡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죽어야만 했다. 가지치기는 사실 식물에게 도움이 되었으며 새로운 성장을 촉진했다. 엘레우시스의 입문식은 죽음과의 대면이 정신적 재탄생으로 이어지며 인간 가지치기의 일종임을 보여 주었다. 영생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신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죽음의 얼굴을 침착하게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더 당당하게, 따라서 더 알차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실제로 우리들은 매일, 이미 일정한 위치에 도달한 자신의 모습을 버리길 강요받는다. 신석기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통과의례에 관한 신화와 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한한 삶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변화하고 성장할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었다.  - 본문 64,65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위의 인용부분 같은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와서 목이 메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우울할 때 신화나 소설 등을 무작정 읽어대면서 품었던 질문이 풀리면서, 그동안 묵은 응어리 같은 것이 함께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이론서인데 좋은 문학 작품을 읽은 것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영웅신화를 통해 개인의, 어린 소년의 성장 과정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 저자분은 깊고도 넓은 자신의 지식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엄청나시다. 자신의 지식을 체화해서 육성으로 전달해주는 사람 같다. 저자의 이력을 읽고, 자서전을 검색해서 정보를 알아보니 이 분의 글이 내게 와락 안기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심지어 이 저자를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의 20대, 30대가 좀더 평온했을까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책을 다 읽었지만 리뷰 쓰기 전에 저자분 검색해서 전작 읽기 리스트를 만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아, 이런 인문서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리뷰랍시고 써 놓아도 될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신줄 놓고 쓴 리뷰를 내가 봐도 창피하지만, 지금 나는 매우 감동에 벅차 잠도 안 오는 상태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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