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 우리의 창세여신 설문대할망 이야기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내 또래들은 19세기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는 세계 명작 동화 전집이란 것을 읽으며 독서 이력의 첫발을 뗀 것 같다. 전집에 실려 있던 신화들은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 이야기였고, 한국 전래 동화라는 범주는 거의 권선징악적 민담 위주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기에, 요즘 애들이 읽고 있는 한국전래동화전집을 보면, 내가 미처 모르는 우리 신화 이야기가 너무도 많아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나 한국인 맞아? 이렇게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전시대 기록문학으로 남은 신화들만큼 구전 설화, 무가에서 채록한 신화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 한다. 바리 공주, 설문대 할망 등 여성이 주인공인 신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제주도 창세신화인 설문대 할망 이야기를 통해 사라진 위대한 여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설화와 비교하여 그 의미를 밝혀 주기도 한다. 이들 고대 여신들의 존재는 비록 현실 체제에서는 남성 지배세력에 의해 사라졌어도 여전히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남아 우리의 꿈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상당히 쉽고 재미있는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설문대 할망 이야기의 각 모티프를 자세히 비교, 탐구한 후에 전체적으로 고대의 위대한 여신의 상이 그려지지 않아 아쉽다. 전문적인 신화학 연구 서적이라기보다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설문대 할망 이야기를 통해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고 하겠다.

 

설문대할망 신화같이 윤리를 주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신화를 통해서 우리들의인간 중심 도덕관과 이분법적 세계관을 재고해보면 어떨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저 '그렇다'라는 시각으로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92쪽

 

저자는 여러 참고 서적에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 이론을 인용해 준다. 그런데 어떤 부분은 좀 무리다, 싶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213쪽에서 귀에서 징소리가 들리는 카톨릭 성직자의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한나 아렌트를 인용한 것은 꼭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저자의 박식함을 기분좋게 느꼈다. 참고 문헌 부분과, 본문에서 누차 인용해준 마리야 김부타스의 고대의 위대한 여신 전통에 대한 이론은 꼭 읽어보고 싶다.

 

참, 리뷰랑 관련은 없지만 설문대 할망 이야기는 대학 다니던 시절 제주도에서 유학 온 대학 동기에게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집이 성산 일출봉 아래였기에 친구집에 방문해서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자언어로 읽은 것은 조카들 동화책에서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대강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보니, 어린이용 동화에서는 할아방 할망의 거대한 성기 관련 이야기는 삭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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