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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ㅣ 역사도서관 2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길(도서출판)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절판된 책이어서, 그동안 다른 역사책에 인용된 부분만 읽으면서 감질나 죽을뻔 했다. 그러다 드디어 온라인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해 읽게 되었다. 오, 명불허전! 읽어가면서 책의 한 장 한 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무지무지 재미있었다. 한편 독학의 한계랄까, 답답함이랄까,,, 그런 감정에 빠져 들기도 했다.
우선 저자 소개부터.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현대 서양사학계에 '미시사'라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한 세계적 역사학자이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 서양사학계가 실증주의의 독일 사학에 대한 반동으로 프랑스 아날학파가, 또 그 아날학파의 계량경제사학을 바탕으로 하는 거시사적 역사분석에 대한 반대편 연구 입장으로 이탈리아 미시사 사학이 생겨난 것 같다. (더 묻지 마시라, 이 부분은 좀더 공부해야 할 듯) 이 미시사 연구의 시초가 된 사람이 카를로 긴즈부르그이고, 그 시발점이 되는 책이 저자가 27세에 박사논문으로 발표한 이 원고이다.
베난단티(복수형, 단수형은 베난단테)라는 존재는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 재판 문서에 나타난다. 이들은 병자들을 치료해주고 마녀들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양막을 쓰고 태어난 이들은 때가 되면 대장의 부름을 받아 영혼이 빠져 나가 일년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판에 모인다. 이들 베난단티는 수숫대를 든 나쁜 마녀들에 대항하여 회향목 가지를 들고 밤새 싸우는데 그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이 지방의 베난단티들은 수없이 많으며 그 진술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그외에도 베난단티는 죽은 자들이 고향 집에 돌아오는 행렬에 참여하기도 한다. 즉, 그들은 풍요의식을 거행하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샤먼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종교재판관들은 이런 베난단티를 사악한 마녀들과 동일시하는 유도심문을 한다. 그래서 후대에 내려올수록 베난단티는 마녀와, 그들의 풍요 의식은 마녀의 사바트와 동일시된다. 말하자면, 기독교에 민중 신앙이 굴복한 셈.
그런데 저자는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 재판 관련 문서들을 소개하면서 건조하게 재판 진행 과정과 베난단티 신앙의 변모 과정을 나열하기만 할 뿐, 역사적 해석을 가해서 독자에게 들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학 작품도 아닌데 빈 부분을, 역사적 의미를 나 스스로 읽어가면서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보다 대중적인 역사서를 읽을 경우, 저자가 읽고 공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가 역사를, 세계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 독자인 내게 확연히 보이는 반면,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현재의 내 수준에서 읽기에는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해가면서 기존 고대부터의 기층 민간 신앙에 압력을 가하여 유럽 민중의 일상 생활까지 지배하려 하는 시도, 그 과정에서의 민중 신앙의 변모 과정이 보여 흥미로웠다. 하지만 솔직히 이 사료들을 어떻게 해석하며 읽어야할지 답답한 점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 가면서, 마치 먹을 것을 양 손에 가득 받았는데도 감격에 겨워 무엇을 어떻게 먹고 소화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하는 거지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아, 어쩌랴! 책은 다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