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의 궤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 고정 독자분 아니면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1975년부터 2012년까지 37년간 이런 저런 매체에 실렸으나 그동안 다른 에세이집에 실리지 않은 산문을 일본의 열성적인 편집자가 일일이 도서관을 뒤져 찾아 만든 책이다. 작가의 어느 한 시기에 대해, 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다. 중구난방격이다.
그리고 지난 40여권의 시오노 작가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글을 읽었기에 그리 신선하지도 않다. 남자들에 대해 쓴 관능적 고백은 <남자들에게>에서, 가짜 사료 만들기를 고백한 내용은 <사랑의 풍경>에서, 영화 감독과 배우 이야기는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에서, 이탈리아 사람의 패션과 보석, 지중해 여행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에서, 그리고 그 유명한 "저 도시를 주시오."는 전쟁 3부작 중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 이미 읽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37년 세월을, 무명 작가에서 지금의 시오노가 되기까지 생각의 흐름과 삶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1995년이래 저자의 책을 읽으며 역사 에세이스트의 꿈을 꾸던 나의 지난 18년 생각(과대망상)의 흐름 역시.
어떤 사람들은 시오노의 제국주의적 시선을 비판한다. 나 역시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오노 작가는 역사가가 아니다. 그냥 역사를 놓고 자신의 견해를 들려주는 에세이스트이다. 보다 올바른 사관을 지닌 역사책을 읽고 싶으면, 시오노를 읽은 후에 에릭 홉스봄(같은 한길사 책이니까 이 역사가의 예를 듬)을 읽으면 된다. 시오노만 읽고 세상의 모든 역사책을 다 안 읽을 것도 아니니까, 나는 굳이 심각하게 걱정하고 논쟁에 나설 생각이 없다. 이 작가는 힘 있고 아름다운 대상을 관능적으로 그려내고 예찬할 뿐이다. 난 거기에 깊이 의미부여할 필요를 못 느낀다. 저자의 사관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본격 역사물이 아닌 에세이이므로 딱 그만큼만 생각하며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튼, 나는 오랫만에 나온 시오노의 이 수필집을 군데군데 줄을 치며, 맞아맞아하며 내 무릎을 치며 읽었다. 젊은 무명 작가의 패기 넘치는 구상,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역사 작가로서의 자세, 영원한 여자로서 진정한 멋진 남자를 사랑하는 자세,,,, 인상깊은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아래이다.
나의 이 책은 언뜻 값이 무척 비싸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왜냐, 한 번 읽으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두 번 읽으면 즐길 수 있게 썼기 때문이다. (중략) 언젠가는 나도, 저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이후 일에 대한 나의 자세가 되었습니다.
- 본문 5~6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