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만들기 -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영웅만들기' 프로젝트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역사서적에 관심을 두고 읽어나가면서, 여러번 경악을 했다. 처음, 어릴적 읽었던  문학 서적이나 다른 쟝르 책들에도 어쩜 이렇게 서구편향, 강자 위주의 역사관이 바탕으로 깔려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았을 때 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또 역사책에 기록되어 다 객관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사실들이 다 어떻게 서술자나 서술되던 당 시대 혹은 정권의 이용가치에 따라 변형되었는가를 알았을 때, 이번에는 난 귀를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시야가 좁고 아는 것이 없어서, 내가 막연히 문제의식만 갖고 있던 주제들을 어떻게 학계에서 접근하는지,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답답했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검색하고 찾다가 만난 책이 바로 이 책. 절판되고 도서관에도 없어서 정말 고생해서 구해 읽었다! (이런 내가 기특하다!)

 

제목과 달리, 영웅 자체에 대한 담론은 없다. 6인의 전문 교수 필진이 서양사 근현대 속의 유명인물들이 각 국가별 시대별 정권별 요구에 따라 어떻게 영웅화되고 신화 속의 인물로 격상되어 이용되는지를 건조하게 짚어간 자료집 같은 성격이다. 연구진이 각각 다루는 인물들은 나폴레옹, 잔다르크, 엘리자베스1세, 비스마르크, 무솔리니. 이들은 영웅화와 신격화와 왜곡, 혹은 정권교체나 시대 변동에 따른 격하 등 부침의 과정을 거쳤지만 최종적으로 유럽 근현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각각 자국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강력히 이용되었던 인물들이다. 결국 우리가 위인전이나 세계사 책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있던 이들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객관적 사실'이란 강요당한 기억의 파편들일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들 남한의 독자들은 이들 서구의 위인들을 식민지 시대나 냉전시대, 독재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형시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책은 내게 아주 유익했다. 이 책을 골라 읽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이런 분들 덕분에 전공자도 아니고 그 나라 언어도 모르는 내가 편히 정보를 얻게 되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나에게는 참고 문헌 목록만 보아도 책값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필자에 따라 수준차가 고르지 않았고, 각 인물의 생애에 대한 개괄적 서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독자에 따라서는 좀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박지향 저자분의 엘리자베스 이야기는 그분의 다른 책에 나온 내용과 거의 겹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어릴 적에 유관순 열사나 화랑 관창 등 10대 소년 소녀 애국영웅들을 어른들이 찬양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어린이 위인전을 읽을 때면 무척이나 의아했다. 아니, 어른들은 뭐하고 우리 애들더러 나라를 구하래??? 뭐 이런 해묵은 궁금증이 어떤 영웅만들기의 매커니즘이었는지를 알게 되어, 늦게나마 삐딱했던 왕년의 소녀 독자, 지금 열대야 자정이지만 꽤나 상쾌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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