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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생활문화로 보는 서양사
박지배 외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아, 이 책 괜찮다. 너무 괜찮아서 심술날 정도이다. 딱 대중역사서와 전문 역사서의 중간 정도 수준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 작가가 이상한 에피소드 나열이나 해대는 대중 역사서의 단점은 없고, 목침만큼 두꺼운데다 불친절하게 전문 용어 돌직구로 읊어대는 이론서의 단점도 없다. 게다가 쉽게 읽히며 일목 요연한 정리를 해주는 친절한 대중역사서의 장점과 권위있는 자료를 근거로 최신 견해를 소개해주는 이론서의 장점은 다 갖췄다.
책 제목은 마치 중고생용 서적같이 보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상당하다. 어쩌면 배경 지식 없는 독자가 읽는다면 너무 많은 내용이 집약적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뒷골 당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심술날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쟈크 르 고프라든가 로베르 들로르, 맛시모 몬타나리, 장 베르동 등등 내가 힘들게 한 책 한 책 구해 읽고 공부했던 내용들이 단칼에 엮어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진작 나왔더라면 나 그렇게 헤매며 개고생하지 않았을텐데! 아유, 심술나!
책은 서양사 서적답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생활문화 서술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3장과 4장의 중세 유럽과 근대 서유럽의 생활문화로 넘어간다. 이 중세와 근대 부분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5장은 도시 형성의 여러 모습과 생활상을 다루고 있는데, 거의 도시 형성의 자연적 조건과 도시명 유래 소개 위주이다. 이어서 6장은 미국의 생활문화를, 7장은 러시아의 생활문화를 서술한다. 그리고 이 책의 구성이 돋보인 부분인 8장의 에스파냐 · 이베로아메리카의 생활문화로 이어진다. 저자진은 에스파냐만을 서양으로 보지않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즉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이 침략해가서 현지 원주민과 강제로 납치해온 흑인들과 섞여 만들어진 남미 문화도 서양 문화롤 보고 서술하고 있다. 그 명칭도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베로 아메리카라고 부른다. 이 점 정당하면서도 독특했다. 이어 마지막 9장에서는 헝가리의 생활문화를 다룬다. 각 장마다 기본적 의식주와 기독교 전래 이전 이후의 풍습, 관혼상제, 배설 등등의 생활 문화를 간략히 소개해 주고 있다. 러시아편에서, 표트르 대제의 개혁이 계급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정확히 지적하는 등, 사관도 괜찮다. (우리가 대개 교과서에서 서구 위주로 배워서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의 장점만 외웠던 것이 생각나서 예로 들어 보았다. )
책은 고대 그리스 로마권과 서북부 유럽권 위주로만 서양을 다루는 다른 역사서들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듯하다. 그래도 분량상 충분하지는 않지만 꽤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쪽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 기본 틀을 잡고 뒤의 참고 문헌을 격파해나가면 나처럼 개고생하지 않고 편히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다시 한번, 심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