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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다
후지사와 마치오 지음, 임희선 옮김 / 일빛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매우 독특한 역사 에세이책이다. 열 명의 인물을 뽑아서 각 시대의 모습을 횡으로 늘어 놓는다. 그런데 읽다보면 종으로 역사의 맥이 읽혀진다. 각 챕터에 이름이 등장한 그 인물의 삶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활약한 시대의 모습, 그 인물과 관계있는 사람들, 시대의 풍조, 대외 관계 등등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좀 주제의식이 없어보이고 맥락 없어보이는 면도 있기는 한데 읽다보면 독자의 머리 속에서 이탈리아의 한 시대, 나아가 전 시대 역사가 재구성되게 만든다. 허술한 책인데 이상한 매력이 있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이 세월이 흘렀다"는 식으로 시작되는 각 챕터의 담담한 서두문장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가을이라서 그런가?
작가는, 게르만족과의 갈등으로 고대 로마제국이 붕괴되던 4,5세기의 이탈리아는 로마황녀 갈라 플라키디아의 삶으로 그린다. 600년 후, 황제와 교황의 권력다툼이 절정에 이르는 11세기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백작 마틸다가 중심이다. 이 주제는12세기의 성자 프란키스쿠스와 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데리코 2세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진다. 세 챕터를 연달아 읽다보니 이탈리아의 황제와 교황 갈등과 전쟁이 자연스레 정리된다. 작가는 이어서 이탈리아 도시국가와 르네상스 쪽 역사를 14세기의 보카치오와 15세기의 코시모 데 메디치, 15 ~16세기에 활약한 미켈란젤로를 통해 보여준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멸망은 카사노바 편을 통해, 그리고 통일 이탈리아 왕국 형성 과정은 18세기 피에몬테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와 19세기 작곡가 베르디와 그 주변 상황으로 묘사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리소르지멘토의 뜨거운 기분을 표현하고 대표했던 베르디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가 완전하게 막을 내렸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이다. 이야기가 역사가 되는, 흥미로운 서술이다.
기본적 통사에서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부분의 서술이 그 시대 연대기 등을 바탕으로 상세히 나와 있다. 그래서 좀 독서량이 있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단점은 번역. 일본식 외래어 표기를 무성의하게 옮긴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을 만한 책이다.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지금 갖고 싶어서 미치겠다. 나처럼 대중 역사서 쓰기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구석구석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