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발행 중인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야생적 사고의 산책)'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이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종교학, 인류학, 양자물리학을 넘나드는 인문학자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대학 비교 종교학과 강의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기에 깊이 있는 내용이 어렵지 않게 담겨 있다.

 

저자는 새집 뒤지기, 연석, 가구야 아가씨, 콩의 의미,,,, 등등 익숙하지만 지나쳤던 이야기나 풍습을 통해 신화적 사고로 우리를 이끈다. 곧이어 전 세계의 신데렐라 형 이야기를 분석해 들려준다. 저자는 페로의 신데렐라 말고 그야말로 전세계의 신데렐라들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횡무진 다루는데, 설렁설렁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때그때 읽는 내 입을 딱딱 벌어지게 만드는 예를 들고 분석해 준다. 읽는 동안 턱을 붙잡고 읽어야 할 정도였다. 3년 전에 주경철 선생님의 <신데렐라 천 년의 여행>에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보고 한번 대강 읽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신데렐라 등 외짝신을 신고 절룩이며 걷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신이치 교수가 소개하는 레비 스트로스의 추론과 진즈부르그의 연구까지 접하고 나니 놀라워서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여기에다 우리 민담 <반쪽이>를 결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에서 신화를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이라 강조한 이유는 서문에, 그리고 여러 이야기의 예를 들면서 본문 곳곳에 나와 있다. 저자는 대략 3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에 신화적 사고방식이 인류 최초의 철학으로 자리잡았기에 고대 그리스 이후 겨우 2500년의 역사를 가진 철학에 비해 신화의 역사가 더 오래된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후 일신교 성립에 의해 그 이전의 철학인 신화는 대규모로 부정당하고 억압당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일신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후기 구석기 시절의 사고 방식대로 최근까지 살았던 수렵민들의 신화에 주목한다. 신화가 종교에 흡수되면 신화 자체의 성격을 읽고 변화를 일으켜 본래의 야생적 사고 방식을 잃고 현실과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독자들이 신화는 비현실적이고 황당하고 미신적이고 아이들 동화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본래의 신화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둘을 중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다. 마지막 소마 버섯 부분에서 저자는 이런 본래 신화의 역할을 강조하며 책을 마친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하나하나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잃어버린 고리'가 저절로 날아와 딱딱 맞물리는 이런 느낌, 독서하면서 자주 드는 경험이 아니다. 아아, 이런 분은 평생 스토킹해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신화를 배우지 않는 것은 인간을 배우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인간과 이야기와 역사에 관심있는 내게, 이런 입문서는 아주 유용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