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인가, <대항해시대>를 감동적으로 읽고 난 후, 본문에 자주 언급된 책을 참고 문헌을 보고 와장창 주문했었다. 그 때 대강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고 리뷰 남긴다.
원제는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 Society, Culture, and the World Economy, 1400 to the Present>인데, 이 번역본 제목도 책의 성격과 주제를 요약적으로 임팩트있게 보여 주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즉 설탕이나 커피 플랜테이션과 무역으로 시작된, 유럽 중심적 근대 세계의 형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현재 전지구적 불평등한 경제 구조라는 결과만 놓고 본다면 서구인들의 선구적 업적과 우월성이 보이는 듯 하지만 그 과정은 거의 우연과 폭력의 연속이라는 것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 중, 플랜테이션이나 노예 무역 등의 의도적 폭력 부분은 많이 알려져 있기에 다른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19세기 미국 중서부의 밀재배농들은 밀농사를 기계화했다. 밀수확기는 밀을 베어내어 그 밀짚단을 끈으로 묶은 뒤 탈곡기로 운반까지 해냈다. 이러한 노동력 절감으로 낮춰진 밀값 덕분에 미국 동부인들과 유럽인들은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밀짚단을 묶는 끈의 원료인 선인장을 생산하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는 원시적 형태의 무자비한 노예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강제로 땅을 빼앗긴 마야 인디오들이 굶주리며 강제 노동에 동원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어보면 세계 무역이란게 겉보기에는 평화적으로 보여도 실상을 알고보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국 마찬가지 폭력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본질!
역사가로서 우리도 인류가 어떤 것들을 발명해 냈고, 부가 실제로 어떻게 축적되고 재분배되었는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을 할 때 우리는 피 묻은 손과 보이지 않는 손이 보통은 같이 움직였음을 보게 된다. 사실 그들은 같은 몸통에 붙어 있을 때가 많았다.
- 본문 306쪽에서 인용
물론 이런 결론이야 좀 읽었다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원작을 읽고 그 디테일한 추이를 직접 따라가서 스스로 그 내용을 납득하게 된 독자와 대중서의 요약된 결론만을 통해 쉽게 알게 된 독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 책의 저자들은 책 본문에서 있었던 일들을 건조하게 나열할 뿐 어떤 행동의 변화나 각성을 촉구하지는 않는다. (아, "이제 이런 이야기들은 다 잊어버리자,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혹시 이렇게 나와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 126쪽" "공식 기록들이 정치가들과 투자자, 기술자들에 대해서는 이름까지 들어가며 언급하면서도, 실제로 곡괭이와 삽을 들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 139쪽" 이 정도의 귀여우신 언급 정도는 있음) 그러나 읽다보면 고민하게 되는 것은 늘 세계관이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역사서들은 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에 고민이 시작된다.
서구유럽 중심주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중국을 재평가한 캘리포니아 학파의 거두 케네스 포메란츠와 스티븐 토픽이 경제지 <World Trade)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어서, 한 가지 주제를 담은 각각의 꼭지가 정확한 분량으로 실려 있다. 그래서 좀 묵직하고 두꺼운 역사서에 두드러기 돋는 분이라도 지하철 한 정거장에 한 꼭지 씩 편히 읽을 수 있다.
여튼, 역사에 관심있는 분, 현재의 세계가 어떻게 지금의 체제로 성립되었는지가 궁금하고 화딱지 나시는분들께 강추드린다. 도서관이든 헌책방이든,,, 여러 경로를 통해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 읽어보시면 <대항해시대>나 다른 대중 역사서에서 얼마나 이 책을 많이 인용해 서술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생각외로 친숙한 내용이 많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시장 경제를 떠받치느라 특히 비유럽 세계에서는 지금도 폭력이 계속 사용되고 있 - 295쪽"기 때문이다.
확실히 세계 경제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연결해 왔다. 지금의 세계화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진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에 정말로 새로운 것은 없는 셈이다. 다양성이라는 개념 역시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일련의 이야기들을 통해 세계가 아주 오랫동안 서로 연결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는, 각 지역은 지구적 차원의 전후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세계체제론의 인식을 바탕에 깔고 주변부의 변화 및 작용이 어떻게 전체를 형성해 갔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중략)
우리는 유럽인들을 제일의 동력으로 보면서 다른 지역은 이들의 요구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유럽 중심의 목적론을 거부한다. 그보다는 세계경제는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비유럽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했다면 그것은 유럽의 전염병이 신세계의 원주민 사회를 거덜냄으로써 엄청난 땅덩어리를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폭력이나 행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 본책 16,17쪽 서문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