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신간이 나와서 알라딘의 글벗님들께 알립니다. 

 

한국일보의 <젠더살롱>코너에 2년 2개월간 연재되었던 칼럼을 바탕으로 총 연재분 53회 중 독자님들 반응 좋았던 20회만 좀더 손 보아 실었습니다.  가부장제가 일상의 성차별로 이야기를 통해 작동하는 방식을 다룬 책입니다. 

 

이번 책이 6번째 책이네요. 오래된 친구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래는 신간 <거침없이 우아하게 젠더살롱>의 서문입니다. 

누군가 필요하신 분께 제 진심이 가 닿길 바랍니다.

 


===서문==+++++++++++++==================================

 

다른 시대를 열어갈 이야기, 젠더살롱

 

이야기는 힘이 세다. 고대의 왕들이 치수(治水) 사업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했듯, 기득권자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지배한다. 큰 강의 물길을 바꾸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듯, 사람들의 생각이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도록 관리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지배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죽이지 마라! 성폭행하지 마라! 차별하지 마라!”를 외치는 여성들에게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마라!”라고 반응하는 남성들이 많은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약자 집단을 차별하여 지배하는 방식 중 하나는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서 ‘스스로 알아서 기게’ 하는 것이다. 결국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는 말은 ‘우리를 여자들처럼 2등 인간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법적, 제도적 성차별이 거의 사라진 지금,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부터 여자는 재수 없다는 속설에다 요즘은 남자들이 더 살기 힘들다며 역차별 운운하고 있지도 않은 집게손 망상까지, 다양한 이야기로 일상에서 은은하게 세뇌하여 사람들이 성차별 문화에 젖어들도록 하는 바로 그 방식!

 

바다에 오염된 강물이 도달한 원인을 알아보려면 강의 상류 지역을 살펴봐야 하듯, 지금의 잘못된 현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하려면 역사의 강을 거슬러 중세, 고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당연한 듯 전해지는 여성 혐오에 별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지어내서 전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불명확해 보였던 차별의 구조가 뚜렷해진다. 내가 역사와 이야기의 유래를 추적하는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이 책이 비상 구급약이 되길 바란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우울증을 많이 앓고 자살률이 높아진 이유가 성차별 현실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젊은 여성들의 의식은 급격히 깼지만, 다른 세대와 성별의 사람들은 이에 따르지 못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엄연히 있는 차별에 좌절하는 여성들을 인성이나 성격적 결함이 있는 개인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외부의 문제를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들면 병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이 너무도 다르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조차 나를 2등 인간으로 취급하고, 이에 항의하면 나쁜 년으로 몰리니, 아프지 않고 버틸 수가 없다. 부디 여기 실린 글을 복용하고, 차별과 억압의 구조를 파악한 후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으로 나눠서 산뜻하게 대처하길 권한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하기에 구조 자체가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을 자유민과 노예의 중간, 인간과 가축의 중간으로 여기는 고대 가부장의 망탈리테를 가진 사람도 지금 21세기 내 옆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성차별주의자들을 일일이 설득할 필요는 없다. 개인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탓하느라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정리할 관계는 거침없이 정리하고 자기 인생에 우아하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내가 앞서 길을 내준 선배 여성들 덕을 보았듯, 나 역시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 뒤에 오는 여성들이 꽃길을 걸을 수 있도록 꽃씨를 심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낸다.

 

책의 제목은 한국일보의 ‘젠더살롱’ 코너에서 따왔다. 가부장제의 역사를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는데, 한국일보사의 제의를 받아 지면을 얻어 총 54회에 걸쳐 글을 쓸 수 있었다. 연재하면서 작가로서 귀중한 경험을 많이 했다. 며칠간 많이 본 기사 상위 랭킹에 오르기도 하고, 살해 협박 메일을 받기도 하고. 응원하는 댓글에서는 계속 글을 쓸 힘을 받았고, 분노한 남자들의 댓글에서는 다음에 쓸 소재를 얻었다.

 

실전용 지침서 성격으로 책을 만들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으로 이 책에는 20회 분량만 실었다. 게재된 후 반응이 좋았던 글을 골라 더 다듬고 가부장제가 이야기로 지배하는 방법,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작동하는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출간을 앞둔 2023년 11월 현재, 짧은 머리 여성을 페미니스트라며 폭행하는 사건과 메갈 집게손 소동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니 이 책이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2년 넘게 연재할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사와 전작 《제가 왜 참아야 하죠?》에 이어 멋진 단행본으로 만들어주신 바틀비 출판사, 그동안 댓글과 메일로 적극적인 의견을 주신 애독자님들의 다정한 응원에 감사드린다.

 

모두 모여 다른 시대를 열어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거침없이 우아하게, 여기 젠더 살롱에서.

 

2023년 12월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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