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존 라베 지음, 에르빈 비커르트 엮음, 장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독일인이면서 중국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부처로 통했던 사람, 존 라베의 일기를 엮어놓은 책이다. 엮은이, 에르빈 비커르트의 앞 , 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설명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를 돕는다. 평생 전쟁을 한번 겪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라베는 두 번의 잔인한 전쟁을 경험한다. 일본이 무참하게 저지른 난징의 대학살과 러시아의 독일 침공 모두 그에게는 버티기 힘든 일이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면서 의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지멘스라는 기업의 중국 파견자로 근무하면서 중국 생활이 시작되었고 일본의 침략이 계속되는 순간까지 고국으로 돌아가기는 커녕, 남아서 많은 중국인들의 생명을 지켜주었다. 그가 나치주의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
일본군 네 명이 다시 정원 담을 타고 올라왔다.....이들은 독일인과 엮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도이치' '히틀러'라고 소리치기만 해도 그들은 얌전해진다. (p152)
혼란과 잔학행위가 팽배하던 점령기에 그는 운영부를 설치하여 안전구 안에서 25만명이 넘는 대도시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제공하고, 일본인들 앞에서 그 사람들의 이익을 강하게 대변해 주었다. 라베와 함께 이들을 돕던 미국인들은 그를 찬탄해 마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그를 ' 살아있는 부처'로 우러렀다.(p402)
|
|
|
|
|
독일은 일본에게 우호국이었고, 나치의 깃발이 걸려있는 라베의 집은 안전이 보장되는 특수지역이었다. 집안과 방공호와 마당까지, 중국인들에게는 그들의 생명을 지켜줄 안식처였다. 이부분에서 라베의 사상에 대해 의심이 생길 수 있다. 나치주의자로 히틀러를 공경하는 자가 어찌 인간적인 면모를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겠는가에 대한 문제 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 히틀러의 초창기 지배시기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읽으면 의문이 풀린다. 라베가 나치당에 입당할 즈음에는, 윈스턴 처칠조차도 히틀러의 용기와 꿋꿋함과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후 자유를 제한하고, 유대인을 무차별적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일삼았던 것은 당시에는 히틀러의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히틀러의 이미지는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찼다고 한다. 존 라베가 나치주의자였던 것에 대한 변명으로 충분하다.
난징에서 돌아와 독일에서 지내던 시절, 중국인들이 당한 참혹한 실상을 히틀러에게 알리고자 했는데 , 그 일로 게슈타포에 잡혀가게 되고, 일기장을 빼앗기고, 그러면서 그는 실망하고 탈나치화를 위해 노력한다. 소송을 통해 겨우 이루기는 했지만, 이후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의 악화로 빈곤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의 일기는 난징과 베를린에서 지낸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전쟁의 시작과 실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솔직하고 처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스스로 유머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일기 자체가 유머스럽고 재미있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 1930년대 난징 대학살이 이루어지던 중국의 역사적 배경과 제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 되고 독일이 패배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나게 체험해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베푼 선행들, 희생정신, 중국인들에게 왜 '굿 맨'으로 통했는지 일기를 통해 공감하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은 어느 문학작품을 통해 접해 보아도 늘 슬프다. 무자비한 학살, 강간, 굶주림,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런 것들이 삶에 쳐들어와 지배한다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라베의 일기를 통해서 못된 일본의 면모를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존 라베는 무서운 전쟁의 시기에 대해 담담한 일상적인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감정적인 폭발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권력과 무관한 휴머니스트로 말이다.
|
|
|
|
히틀러 치세 동안, 독일인을 세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첫째 나치,둘째 지식인,셋째 신뢰할 만한 독일인. 한 사람이 세 그룹에 동시에 속할 수는 없고, 두 그룹까지만 속할 수 잇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적이고 신뢰할 만하면 나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적이면서 나치인 자는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뢰할 만하면서도 나치인 자는 지적일 수 가 없었다. 그는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를 꿰뚫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그룹에 존 라베가 속했다. (p4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