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짓 - 일상 여행자의 소심한 반란
앙덕리 강 작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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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딴, 짓>을 탐독하는데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딴 짓 하다 네 생각이 난다는 지인’의 메시지에 <딴, 짓>이란 제목이 선명한 표지 사진을 찍어 보내며 혼자 킥킥 거린다. 저자 ‘강수정’이 말마따나 “딴짓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딴짓은 세속적인 기준에서 생산적인 일들을 앞두고, 계량화하기도 어려운 비생산적인 일들에 유받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딴, 짓>의 주관적 해독 결과, ‘강수정’에게는 ‘딴짓’은 직업의 연장으로서, 창작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려는 스트레스 해소(혹은 방지) 기제로 보인다. 수십 개의 조각이 비어있는 채로 180조각 퍼즐을 완성하려는 기분으로, 저자를 상상해본다. <딴, 짓>으로 염탐한 강수정의 첫 번째 정체성은 ‘일탈을 꿈꾸는, 불혹이지만 소녀 감성을 지닌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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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우선 225mm 사이즈 하이힐을 소화하는 작은 발을 가졌기에 키가 꽤 작을 것이다. 61페이지에 실린 사진 속 늘씬한 여인이 저자일까 하는 고양이의 호기심은 225라는 숫자에서 잦아들었다. 또한 그녀는 불혹을 넘겨서도 여전히 ‘아가씨’란 호칭을 자연스러워하니 ‘아이가 딸린 엄마’가 아닌 독신여성일 것이다. 실제로 <딴, 짓>의 행간에는 이미 이십여 년 전에 만났던 옛 애인에 대한 애정이 아직도 묻어난다. ‘기독교 회관에서 그 남자를 보고 심장이 멈춘 듯 호흡이 잦아들었(딴짓 #26, 82-3쪽)’ 다든지, ‘그 남자와 함께 먹던 김치 수제비를 혼자 먹으려니 목 넘김이 힘들다(92-3쪽‘든지의 미련을 내비친다. 나아가 “내가 저버리는 것보다는 내가 버림을 당하는 편이 낫다(137쪽)”는 고백으로 아픈 연애사를 추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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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의 행간 읽기로 추정하건대, 작가 강수정은 열 살 난 여자아이와의 연상게임에서 자신을 “unexpected"란 단어로 규정 받고 공감의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자유롭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도 여러 의무관계에서 자유롭다. 대한민국의 그 많은 여성들을 진공흡입기처럼 빨아들인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로워서 아이도 남편도, 자주 드나들어야 할 시댁도 없다. 관계에서 오는 의무에서 자유롭기에 그녀는 제주도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고,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자전거 타고 훌훌 떠나고, 인도와 일본 등 외국 여행을 자주 하며, 딴짓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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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칫 ‘오지랖’의 경계로 넘어가버릴 수 있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과 섬세함을 지녔다. 재료가 입안에서 따로 도는 7000원짜리 칼국수의 맛과 엉망인 서비스에 기사 정신을 느껴 칼국수 집 주인에게 장문의 충고문서를 써서 날리기도 하고(딴, 짓 #32 99쪽), 방음이 전혀 안 들리는 홑벽 집을 부동산 중개인에게 안내받는 와중에 “눈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설레하겠다(딴, 짓 #25 80-1쪽)”며 소녀 감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런데 오지랖으로 보이기보다는 엉뚱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40 나이인데도, 세상의 때로부터 스스로를 자정시켜온 명상자 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작가 강수정의 귀엽고도 성찰적인 딴짓 메들리로 이뤄진 <딴, 짓>에 소개된 316개의 딴 짓 중에 유독 “즉흥여행(딴, 짓 #12)"과 ”생명줄(딴, 짓 # 88)“이 훈훈한 사람냄새로 기억된다. 전자의 에피소드에서 저자는 부산행 새마을호 하행선에서 손수건에 싸온 김치 도시락을 나눠먹는 노부부의 도시락 까먹는 소리에서 ”세월의 소리“를 듣는다. ”생명줄“ 에피소드에서는 한라산 등산길에 걸려 있는 빛바랜 촌스러운 빨랫줄이 알고 보니 폭설로 길 잃을 뻔한 등산객들을 안내하는 생명줄이자 등대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경험을 담고 있다.

전직 기자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사업가의 딸로 살면서 ‘육지 것’스러움이 배여있는 저자는 <딴, 짓>을 집필하던 와중에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해버렸다. 스스로에게 “촌스러운 육감”이 있다거나 ”전생에 소복한 눈송이였을지 모른다.“라는 다분히 무속적인 믿음을 내보이는 그녀가 한 눈에 반한 집이다. 독자로서의 육감으로 말하건데, 왠지 그녀의 양평 작업실 ‘벼리’에서 앞으로도 더 좋은 글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벼리의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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