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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3 (보급판) - 두 개의 탑 1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반지의 제왕>을 다 읽고 영화도 봤다.
꼬박 한달 걸린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확실히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달라졌으리라. 마치 프로도에게 간달프가 원정을 떠나면
돌아올지 어떨지 장담할 순 없지만 만약 돌아온다면 떠나기전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말처럼...
우선, 번역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1편 '반지원정대'와 2편 '두 개의 탑'에 해당되는 1권부터 4권까지는 황금가지 출판사(번역 한기찬)에서 출간되었으나 3편인 '왕의
귀환'은 어찌된 영문인지 출판사(씨앗을 뿌리는 사람들)도 역자(김번, 김보원)도 바뀌어 있었다. 양자의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고유명사가
통일성있게 번역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예를 들면, '이센가드'를 '아이센가드'로 '중원'을 '가운데 땅'으로 '흑기사'를 '어둠의 기사로 옮긴
것 등은 그나마 유추가 가능하다지만 '아르고르(순찰자)'를 '성큼걸이'로 '실롭(왕거미)'을 '쉴로브' 등으로 옮긴 이유는 뭘까? 시리즈 중,
전편 번역본이 있다면 후편 시리즈 번역작업할 때 전편 번역본을 먼저 확인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도, 최근 출판사 한곳에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전편을 번역 출판했다고 한다. 나처럼 2000년대 초반 두곳의 출판사에서 1~4권과 5~7권으로 나눠 출판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읽으실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듯...)
제3편 <왕의 귀환>은 절대반지의 파괴와 곤도르의 왕 귀환 그리고 샤이어의 상황과 그 뒷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제 막
악의 세력을 물리친 간달프(알고보니, 그는 악을 막기 위해 중간계로 보내진 5명의 使子 중 한명이었다.)일행은 그의 지략으로 프로도와 샘이
절대반지를 모르도로의 용암 속으로 던져넣을 수 있도록 사우론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투를 펼친다.
그 사이 오르크족에게 잡혔던 프로도는 샘에 의해 구출된 후, 계속해서 전진하여 마침내 사우론 영토의 심장부인 삼마스 나우르에 도착한다.
절대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넣어야 하는 순간, 절대반지에게 지배된 프로도는 샘이 보는 앞에서 "절대반지는 이제 내 것이야!"라고
외치며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골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가 싶더니 골룸의 어금니사이로 번득이는 무엇인가가 언뜻 스치는
순간 손을 부여잡은채 쓰러진 프로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절대반지에 집착한 골룸이 반지를 끼고 사라져버린 프로도의 손가락을 깨물어 뜯은 것이다.
그런데 그만 기쁨에 겨워 반지를 손에 들고 날뛰던 골룸이 용암속으로 반지와 함께 떨어지고 만다. 영화에서는 프로도가 골룸을 떠밀어 떨어뜨리지만
원작에서는 골룸이 혼자 날뛰다가 스스로 미끄러 떨어진다. (영화 1~2편을 거치며 이미 영웅의 이미지로 떠오른 프로도의 마지막 모습을 나약하게
묘사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고민과 배려가 엿보인다.)
때마침 독수리를 타고 나타난 간달프(미스란디스)에 의해 프로도와 샘은 무사히 구출된다. 아르곤은 곤도르의 왕이 되어 엘론드의 딸인 요정
에오웬과 결혼을 하고 에오메르는 로한을 통치하며 파라미르는 아르곤에 의해 영주로 임명된다.
다시 뭉친 네명의 호빗족은 고향 마을 샤이어로 돌아가는데...
샤이어가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낀다. 알고보니, 사루만이 샤이어에까지 악의 손을 뻗친 것이었다. 샤이어 호빗들은 샤르키라고
불리우는 우두머리를 섬기는 나쁜 무리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도와 샘, 메리와 피핀은 전쟁터에서의 용맹을 다시 한번 발휘하여 호빗들을 봉기시켜 악의 세력을 무찌른다. 마침내 샤르키를 붙잡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사루만과 뱀혓바닥(그리마)이었다! 그를 죽이려는 순간, 악을 악으로 막지 말고 선으로 막아야 한다며 프로도가 말려 사루만은
간신히 목숨을 지키지만 뱀혓바닥의 배반으로 결국 그의 손에 죽는다. 이리하여 미스란디스(간달프)와 함께 중간계를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던 다섯
명의 마법사 중 하나인 사루만이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샘이 골룸을 죽이려고 했을 때도 그렇고 사루만의 목숨을 지켜준 것도 그렇고 프로도의 행동을 통해 엿본 톨킨의 세계관은 명확해보인다. 톨킨이
살았던 시대는 1,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에게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열강들의 모습은 마치 중간계의
각 종족들이 '보물'과 '반지'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볼면, 톨킨은 분명 반전(反戰) 평화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서양과 백인 위주의 세계관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성우월주의와 신분계급사회를 당연하게 여긴 인물이기도 하다.
부록을 통해 제1시대와 제2시대 그리고 제3시대의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 그리고 생몰연도까지 자세하게 기록된 가계도를 만들만큼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세세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톨킨은 여성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평범한 인물일지라도 영웅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평범하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열린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범한 인물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은 끝끝내 간과하고
말았다.
잘 알다시피, <반지의 제왕> 속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름 있는 인물도 많지만 이름 없는 인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그중 이름이 부여된여성등장인물은 고작 세네명에 불과하다. 꼽아보자면, 요정 여왕인 갈라드리엘과 엘론드의 딸 에오윈 그리고 로한의 공주
아르웬이 전부다. 그나마 갈라드리엘을 제외하면 에오윈과 아르웬은 주로 남자 주인공을 빛내줄 '짝'으로써의 역할이 강조될 따름이다. (아, 참!
나중에 샘과 결혼하는 호빗족 로지도 있었지...)
만약, 이 작품이 영웅이 등장하는 신화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류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문외한의 변명일
뿐이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영웅 신화의 원형을 살펴보면 인류 최초의 신은 여성이었다. 초기 인류는 여성의 생식능력을 무엇보다도 신비롭고 높게
평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남성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이를 지배한 우두머리가 나타나면서 힘의 우열에 따른 역사가
펼쳐지고... 이 과정에서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남성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인류 신화에서 여성을 배제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성이 우위를 갖춘
분야라 할 수 있는 전쟁과 싸움에만 초점을 맞춘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 역시 이와 같은 남성주의적 세계관의 확장 혹은 전형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이 만들어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와 배경 등은 분명 놀라움을 자아내며, 무엇보다도 그가 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후대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잉태되고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한편, 프로도와 골룸 그리고 샘이라는 세개의 캐릭터를 놓고 봤을 때 나의 마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부여잡았던 인물은 단연 샘과 골룸이다.
주인공인 프로도 배긴스는 삼촌이자 자신보다 먼저 원정에 나섰다가 돌아온 빌보 배긴스와 같은 선상에 놓인 인물로 봐야한다. 즉,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과 욕구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정원사로서 프로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샘은 원정대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깨닫지도 부여하지도 못한다. 그에게 원정이란 그저 '주인님(프로도)을 잘 모시고 따르기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분명 영웅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의 가치관을 옹호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골룸(스메아골)이다.
골룸은 이중인격과 자아가 분열된 존재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절대반지(권력과 물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해버린 인물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런 골룸의 모습이야말로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매순간 선택을 해야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절대반지를 파괴한 인물도 다름아닌 골룸이다. 만약, 골룸이 없었더라면 프로도는 마지막 순간에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을 이겨내고 반지를
용암 속으로 던져넣었을까? 아니면, 프로도 주인님을 목숨 걸고 지켜왔던 샘이 주인님의 명을 어기고 그로부터 반지를 빼앗아 대신 파괴시켰을까?
피터 잭슨 감독 역시 이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기쁨에 미쳐 날뛰는 골룸을 원작과는 달리 프로도가 밀어떨어뜨리게 만든
것이리라.
1편(반지 원정대)과 2편(두 개의 탑) 모두 영화와 원작이 약간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흐름이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작은 차이일 뿐 원작의 내용을 바꾸거나 누락시킨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에 반해 3편(왕의 귀환)은 원작에서 다룬 '샤이어 전투' 부분을
통째로 누락시켜 아쉬웠다. 아이센가드에서 쫓겨난 사루만이 샤이어까지 흘러 들어와 악의 손길을 뻗치다가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온 호빗들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인데...
빌보 배긴스와 빌보 프로도는 회색항구를 떠나 서쪽으로 가는 요정들과 동행함으로써 요정의 세상이었던 제3시대가 막을 내리고, 또한 배긴스家의
이야기 역시 마무리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한편 앞으로 도래할 제4시대는 곤도르왕국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세상이자 샤이어의 호빗인 샘 와이즈
감지家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요정들에게 주어졌던 3개의 반지인 빌랴, 네냐, 나랴는 각각 엘론드,
갈라드리엘 그리고 간달프가 갖게 된다.)
분명, 재밌고 놀라운 작품이다.
나 역시 <반지의 제왕>과 함께 했던 지난 한달 동안 매우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많이 즐기고 좋아했기에 그만큼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크다.
작품을 즐기는 내내 많은 것들을 생각했고...
또 앞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