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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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이 말을 유행시킨 드라마는 정작 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왔을까? 

 

 

비운의 천재 여류 시인으로 알려진 실비아 플라스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자전적 소설 <벨 자>를 남겼다. 이 작품은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 책 중 한권'이며, '가장 빼어난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작품명 '벨 자(bell jar)'는 실험용 진공 용기를 말하며, 작품 속에서는 개인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적 관습을 상징한단다.  

 

 

줄거리는 '특기가 장학금과 상 타기'일 정도로 어렸을때부터 다재다능했던 여대생 에스더 그린우드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잡지사 수습사원으로 여름 한달을 뉴욕에서 보내는 전반부와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온 후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신경쇠약에 걸렸다가 일상으로 되돌아 오는 과정을 그린 후반부로 나뉜다.

 

 

 

 

 

'출세와 부의 상징' 뉴욕이라는 도시는 저자인 실비아 플라스와 주인공인 에스더 그린우드 모두 선망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짧은 머뭄은 권태와 부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하겠지.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라니까. 십구년간 촌구석에서 살면서 잡지 한 권 못 사 볼 형편이었던 여자애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더니 이런저런 상을 받고 결국 뉴욕을 휩쓸고 다니네."

하지만 난 휩쓸고 다니지 못했다. 내 자신조차 마음대로 못했다. 호텔에서 사무실로, 파티장으로, 파티장에서 호텔로, 다시 사무실로 멍청한 무궤도 전차처럼 다닐 뿐. 다른 여자애들처럼 들떠서 지내야 마땅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마음이 가라앉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주위가 소란한 가운데 둔하게 움직이는 폭풍의 눈 같다고 할까.

 

-실비아 플라스, <벨 자>p 11 中-

 

 

이 나이 또래가 대부분 그러하듯, 세상에 대한 냉소와 치기로 가득하다.

 

 

 

뭔가 내 인생은 특별할 것만 같고...

나 아닌 타인의 삶을 관조할 여유가 없으며...

세상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대로 움직여줘야 하는 곳이다...

 

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낯선 뉴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무엇이 그녀를 화나게 했고, 그 누가 그녀를 엇나가게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순결에 대한 의무와 이성에 대한 관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며 동질감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는 모순된 성향과....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엄마를 향한 이유 없는 반발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젊음 특유의 가벼움까지... 

 

 

작가 또한 이런 주인공(혹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열아홉 시절, 내게는 순결이 가장 큰 화두였다.

세상을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로 나누지 않고, 섹스를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었다. 그것만이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인 것 같았다. 

 

 

-실비아 플라스, <벨 자>p 113 中-

 

 

 

내 눈에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사춘기를 다소 심하게 앓는 소녀처럼 보인다. 십대와 작별하고 성인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혹독한 '성인식'을 거쳐야 한다. 성인식이란, 아이로서 자신의 유치함과 한계를 자각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어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십대 시절 유난히 자의식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성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유년기와의 작별을 거부한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다만, 자전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서른이라는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작가의 삶과 결합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 해석된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작품속 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하지만, 저자인 실비아 플라스는 서른이라는 짧은 삶을 극단적으로 마무리했다. 어린 딸과 아들을 남겨둔 채...

 

 

그녀에게 묻고 싶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고,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에 희망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뛰어난 시들과 소설 작품을 남겼다면 최소한 남은 이들에게 '이별'의 이유만이라도 알려줘야하지 않겠는가?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치다 떠났다면, 최소한 그 몸부림의 흔적에 새겨진 의미만이라도 남겨야하지 않겠는가?

 

 

 

부디, 이 작품을 통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더랬는데... 

그녀의 생각과 느낌과 호흡까지도 공감하고 싶었는데...

그래야지만이 그녀를 마음껏 애도하고 영원히 기릴 수 있을 것 같았더랬는데...

 

아쉽게도,

나의 기대와 희망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겨진 채,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다.

 

 

굿바이! 실비아 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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