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는 갑니다- 

 

오 나는 갑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을 땐

 당신은 시인이 되어 있겠지

 

 저 너머 산을 넘어

 저 행복한 세계로

 

 저 너머 바다를 넘어서

 우리가 원하는 세계로

 

 오 나는 갑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을 땐

 당신은 시인이 되어 있겠지
 

 

-자유시, 서정시- 

 

나의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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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글씨 속에서/요동치는 것을/들어라 

세상만사는/이렇게/격렬히/요동친다 

그리고/마침내/아침이/되었다. 

 

-현대시조- 

 

나의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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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펭귄클래식 96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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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울한 도시의 초상

 '음울한 도시의 초상'은 『더블린 사람들』의 서문을 쓴 테렌스 브라운이 자신의 서문에 붙인 이름이다. 「음울한 도시의 초상」이야말로 『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서문은 작품의 출판 내역부터 설명한다. 1905년 기대에 부푼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원고를 냈지만, 결국 거절당한다. 1909년에도 마찬가지였고, 1914년에야 이 단편집은 출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출판된 이후에도 이 단편집은 그의 다른 작품에 묻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더블린 사람들』은 분명히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

 『더블린 사람들』에는 조이스의 자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그가 어릴 적에 가난했던 것처럼,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난하다. 실제로 『더블린 사람들』의 시대적인 배경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쇠퇴해 가는 시대였다. 오코넬이나 파넬 같은 정치적인 지주가 죽고,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몰아닥치던 시기에,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표지에 나타난 것처럼 마치 '죽은 사람들(혹은 유령)'처럼 더블린이라는 미로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표지에서 우리는 테렌스 브라운이 설명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표지에서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건물(가난함 또는 빈곤함)과, 유령처럼 더블린을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문은 조이스의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에피파니'에 대해 설명한다.

 

 "『더블린 사람들』의 예술적 가치는 조이스가 사실주의자의 시각으로 사실 덩어리를 다루었다는 데 있지 않고, 상징주의 전략을 구사하여 세상에 대한 광휘로운 진리를 전달하는 데 있다. 예술가의 임무는 독자들이 그들에게 가능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문맥 속에 에피파니의 순간을 짜 넣음으로써 현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조이스는 믿었다. 『주인공 스티븐(Stephen Hero-필자)』에서 스티븐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결정적인 상황의 그물로부터 이미지의 절묘한 혼을 정확히 풀어내어, 예술가가 선택한 예술적 상황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재구현하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이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조이스는 더블린 시 전반에 관한 자신의 해석적 진술을 담기 위해, 서로 간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맥락에서 그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더블린 생활의 세세한 면면을 재구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에피파니의 세부 요소들은 스스로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역사적 메아리, 문화적 연상, 신화적 유사물들이 제공하는 의미도 함유하게 된다(p.38~39)."

 

 『젊은 예술가의 초상(범우사 판)』의 역자인 김종건 교수님의 해설에 따르면, 에피파니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이 내릴 수도 있다.

 

 
"에피파니는 기독교에서 세 동방박사 마기(Magi)의 방문으로 상징되는 구세주의 현현(顯現: 1월 6일이 그 축제일임)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예수의 탄생은 단지 아기 예수의 탄생 이상의, 즉 구세주의 도래라는 갑작스런 계시를 짐작케 한다.

 아마도 조이스가 20세기 문학에 공헌한 수많은 업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에피파니의 창안일 것이다. 조이스의 작품에 있어서의 에피파니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갑작스런 정신적 발로(revelation) 또는 계시(manifestation)로서, 이는 마치 베일이 걷히며 드러나는 사물의 본질 같은 것이다. 에피파니의 동기는 가장 사소한 소리나 제스처에 의하여 야기된다. 또한 에피파니는 상징주의와도 구별된다. 전자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의 암시적 뜻을 갖지만, 후자는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조이스의 에피파니는 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특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의 경험주의에 뿌리를 박고 그 경험하는 자의 직감과 연결되기도 한다.

 창작에 있어서 에피파니의 전개(epiphanization)는 일종의 작품의 기법 또는 구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연주의적, 극적, 상징적 문체의 전개를 의미한다(p.351~352)."

 

 2. 자매

 제임스 플린 신부가 죽었다. 평소에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마비'라는 말에 깊이 고민한다. 제임스 플린 신부는 마비증으로 죽었고, '나'가 살았던 더블린 역시 마비되었기 때문이리라. 얼마 후, '나'와 아주머니는 신부의 관이 있는, 플린 신부의 여동생인 일라이저 댁에 방문했다. 그들은 일라이저로부터 그가 왜 죽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플린 신부는 자신이 성매를 깨뜨렸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심하게 받다가 심신이 이상해진 것이었다.

 소설 내에서 고딕체로 표시된 부분은 원서에서 이탤릭체로 강조한 부분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작가가 직접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매」에서 고딕체로 표시된 부분을 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강조한 부분이 바로 이 단편의 주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마비", "그노몬", "성직 매매"이다. "그노몬"이란, 평행사변형에서 한 각을 포함하는, 그보다 작은 닮은 꼴의 평행사변형을 떼어낸 나머지 부분을 일컫는다.

 

 3. 우연한 만남

 인디언 놀이를 즐기는, 꿈이 사제인 조 딜런과 그의 동생 레오 딜런은 '우리('나'를 포함)'와 어울리면서 여러 가지 잡지를 돌려가며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 그 잡지를 읽는 것을 들키는 바람에 아이들은 큰 흥미를 잃고, 그리하여 학교를 하루 정도 쉬고 싶었던 '나'는 레오 딜런과 마호니와 함께 피전하우스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왜 이것이 모험인가? 그저 그들은 더블린에 있는 발전소로 가려는 것 뿐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더블린이 '미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칫하면 더블린에게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이렇게 위험한 모험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그래서 그런가, '나'가 6펜스까지 주면서 그들(마호니와 레오 딜런)과 약속했지만, 결국 레오 딜런은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마호니와 '나'만이 그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와 마호니는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하느라 그곳까지 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더블린이 미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래는 피전하우스까지 갈 수 있었으나, 더블린이 가진 미로적 요소로 인해 끝내 마호니와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리고 작품의 중반 부분 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어느 아저씨였다. '나'는 고양이를 쫓는 마호니의 모습을 본 그 아저씨가 마호니가 거칠더냐고 묻자 '나'는 그렇다면서, 그가 많이 맞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와 헤어진 후, '나'는 언덕에서 그에게 인사하는 마호니를 보고 자신이 그를 무시한 것을 뉘우쳤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우연한 만남'이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우연한 만남'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4. 애러비

 노스 리치먼드 가의 어느 집에서 살고 있는 '나'는 우선 자신의 집에 들어 살던 신부의 죽음을 말해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맨건의 누이를 짝사랑하여 그녀를 따르는 '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다가 그녀가 '나'에게 1894년 5월에 더블린에서 열렸던, 아라비아의 시적 표현인 바자회 '애러비'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 바자를 매우 고대했고, 마침내 그 날이 왔지만, 아저씨가 너무 늦게 보내주는 바람에 바자는 이미 거의 문을 닫고, 그녀도 이미 간 후였다. '나'는 번민과 분노를 느끼며 집으로 들어온다.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애러비'는 이렇게 끝난 것이다. 그야말로 이 소설은 더블린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내었다.

 「애러비」 이후부터는 작품이 한층 더 성숙해진다. 조이스가 자신의 문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작품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율리시스』에서 문체와 기법이 점차 성숙해지는 것과 같이, 「애러비」 이후의 단편은 점차 성숙해진다. 지금까지는 '소년'인 '나'를 주인공으로 하던 단편이었지만, 이젠 주인공이 한층 더 성숙하고 자라게 된다. 3인칭 관찰자로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5. 이블린

 3인칭이 된 화자는 '그녀(이블린)'을 관찰한다. '그녀'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단편이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후의 작품인 「죽은 사람들」에서는 3인칭이 없다.

 이블린의 어머니는 죽었고, 아버지인 어니스트는 타락하였다. 그녀는 어느 날 집을 떠나 멀리 도망가기로 했다. 아버지도 마침 죽었고, 자신이 살게 될 새 집에 대한 기대도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자신의 남자친구인 프랭크와 함께 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어니스트가 있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을 드디어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기 전 어머니와의 약속을 기억한다. 그녀는 떠나고 싶었지만, 죽은 어머니의 약속 때문에 프랭크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갈 수 없었다.

 왜 그녀는 죽은 어머니와의 약속에 집착하는가? 왜냐하면, 서문에도 밝혔듯이, 『더블린 사람들』에는 조이스의 자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율리시스』의 1장을 보면, 스티븐 데덜러스(즉, 제임스 조이스)는 암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멀리건의 조롱도 견뎌낸다. 아마 이블린이 지켜야만 했던 약속은 스티븐의 그것과 유사할 것이다.

 

 6. 경주가 끝난 뒤

 자동차 경주가 열렸다. 경마와 자동차 경주는 더블린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경주가 끝난 뒤, 승리자와 다름 없는 두 젊은이는 축하 파티에 참석힌다. 그리고 계획을 세운다. 요트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음악을 즐기며 카드놀이를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그들의 계획대로 움직인다. 지미와 세구앵은 카드놀이를 즐긴다. 그런데 지미는 카드놀이에서 점점 재산을 잃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미는 아침이 될 때까지 계속 카드놀이를 한다. 쉬고 싶은 마음에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쾌락의 끝은 고통"이라는 말이다. 지미는 쾌락 끝에 고통을 얻기 때문이다.

 

 7. 두 한량

 더블린을 활보하는 두 한량, 코얼리와 레너헌은 어느 여인에 대해 논의한다. 코얼리의 여인을 레너헌이 본 후, 그들은 잠시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레너헌은 코얼리를 기다린다. 그의 청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침내 코얼리는 레너헌에게 황금 하나를 내민다. 그의 성공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단편 소설은 두 한량이 더블린을 무의식적으로 방황하는 것을 다루고 있는 단편 소설이다.

 

 8. 하숙집

 푸주간 집 딸인 무니 부인은 장인이 죽고 무니 씨가 주정뱅이로 횡포를 부리자 신부의 허가로 별거를 하기로 한다. 그녀는 딸 폴리와 함께 하숙집을 차렸다. 그곳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는데, 그 중 폴리는 도런과 사랑을 나누기로 한다. 폴리는 그러기 전까지 아픈 기억들을 극복해 내야만 했다. 이 단편 소설은 돈에 굴복당하는 가난한 아일랜드인을 그려낸 단편 소설이다.

 

 9. 작은 구름 한 점

 꼬마 챈들러 씨는 런던 신문계에서 성공한 그의 친구 이그너티우스 갤러허를 떠올리며 더블린을 배회한다. 둘은 콜리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다. '토이'라고 불리는 챈들러는 갤러허와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더블린 사람들에게 '술'은 소통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며, '술집'은 또 하나의 집이자 만남의 장소이다. 그만큼 더블린 사람들에게 '펍'은 특별한 공간이다. 어쨌든 그들은 이것이 마지막 술자리라는 것을 알고 더 많이 술을 마신다. 갤러허는 런던과 파리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고, 챈들러는 자신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날, 챈들러는 애니의 사진을 보다가 갤러허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만, 바이런의 시구를 읽다가 아이가 울자 죄책감을 느끼다가 남기로 한다. 이것 역시 '이블린'처럼 약속 때문에 더블린에 남는 것이지만, '에피파니에 의한 약속의 회상'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라는 에피파니의 동기가, 그로 하여금 약속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에서는 갈수록 조이스의 기법이 성숙해간다.

 

 10. 분풀이

 사장 앨레인 씨는 패링턴 씨에게 그가 보들리외 커원과의 계약서를 정서하지 않은 것에 화낸다. 이 단편에서 '분풀이를 하는 사람'은 앨레인과 패링턴 씨로 나눌 수 있다. 분노한 패링턴 씨는 분풀이 거리를 찾는다. 그는 펍(술집)에서 흑맥주를 마시고 회사로 돌아온다. 그런데 아직도 앨레인 씨의 분노는 그치지 않았다. 편지 두 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분노한 것은 패링턴이었다.

 패링턴의 분노는 이 단편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가 사무실에서 느낀 분노는 이렇다.

 "사내는 사무실 전체를 혼자서 날려 버릴 정도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무언가를 하고 싶고, 밖으로 뛰쳐나가 마구 때려 부수고 싶어 근질근질했다(p.156).

 그리고 나중에 술집에서도 친구들과 팔씨름을 했는데 졌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더블린의 약자(패링턴)가 느끼는 분을 예리하게 묘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속은 분해서 부글부글 끓는 데다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분한 나머지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p.163~164)."

 그리고 약자 패링턴은 더욱 더 약자인 자신의 아들에게 분풀이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더블린 사람들의 약육강식적 모습을 알 수 있다. 패링턴 씨는 아이가 불을 꺼뜨렸다는 이유로 아이를 마구 때린다. 그러자 아들은 외친다.

 

 "아, 아빠!" 아이가 울부짖었다. "때리지 마, 아빠! 아빠를 위해 기도드릴게요……. 기도드릴게요……. 아빠, 때리지 않으면…… 기도드릴게요……(p.166)."

 

 작가는 이 부분에서 '기도'라는 단어에 강조한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신에게 올리는 대화이다. 하지만 모더니즘 작품은 '신의 부재'라는 것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즉, 아들의 말은 더블린에서 약자는 누구에게도 분풀이를 할 수도, 의지할수도 없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11. 진흙

 더블린 등불 세탁소의 주인인 마리아는 여자들과 다과회를 하면서 만성절 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진흙'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날에 반지를 집으면 구혼을 의미하고, 진흙을 집으면 '죽음'을 의미한다. 마리아는 이 날에 기도책을 받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조의 집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구혼을 받지 못한다.

 

 12. 가슴 아픈 사건

 이 소설에서는 평범하지만 약간 괴팍한 성격을 지닌 제임스 더피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어느 날 로툰더 극장에서 어느 여인을 만나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서서히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사귀기도 전에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진다. 에밀리 시니코(제임스 더피의 연인)부인이 기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더피 씨는 그녀의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며, 술집에서 나와 길거리로 나온다. 그녀가 없자 그는 두려움(외로움)을 느낀다. 비록 그녀가 그를 타락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녀가 필요했던 것이다.

 

 13. 위원실의 담쟁이날

 '위원실의 담쟁이날'은 아일랜드의 애국자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의 사망일인 10월 6일을 기리는 기념일이다. 이 날에는 그의 정치적 추종자들이나 숭배자들이 부활의 상징인 담쟁이 줄기나 잎을 옷깃에 달고 파넬을 추모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 단편은 그의 모든 단편 중 정치적으로 가장 관련이 깊은 소설이고, 제임스 조이스가 존경했던 정치적 인물에 대한 작가의 서술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하인즈와 오코넬, 그리고 잭 영감은 하나같이 파넬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들과 교류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종의 파넬 추종자이다. 크로프튼 씨와 라이언스 씨, 그리고 셋은 시의원 선거에 대해 논의하면서, 파넬에 대해 언급한다.

 

 "파넬은," 헨치 씨가 말했다. "죽었소. 자, 난 이렇게 본단 말이오. 여기에 온다는 그 작자는 노모 때문에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왕위에 오르지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즉위한 사람이오. 그는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며, 우리에게 호의를 갖고 있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꽤 명랑하고 점잖은 사람이며, 악의라곤 전혀 없소(p.209)."

 

 이윽고 하인즈가 들어와, '파넬의 죽음'이라는 노래를 읊기 시작한다. 이 노래야말로 이 단편의 주제일 것이다. 이 노래 안에는 파넬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죽음까지 나와 있으며, 아일랜드의 부활에 대한 희망도 담겨 있다(그 부분은 고딕체로 표시할 것).

 

 파넬의 죽음

1891년 10월 6일

 

(…)

 

님은 갔습니다, 우리 무관의 왕은 갔습니다.

오, 아일랜드여, 설움과 슬픔으로 애도할지어다.

현세의 타락한 위선자들의 무리에 꺾여

님은 이제 쓰러지고 말았으니.

 

님은 비열한 도당들의 칼에 맞고 가시니

님은 오욕으로부터 영광의 반열에 오르셨네.

아일랜드의 희망이며 아일랜드의 꿈은

우리의 왕을 보내는 불 위에서 사라지도다

 

궁전, 초옥, 오두막

아일랜드의 정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슬픔으로 그 정기 꺾였도다

조국의 운명 짊어질 님이 가셨기에.

 

조국의 명성을 떨치시고,

영광의 초록 깃발을 휘날리시며,

세상의 만백성 앞에

조국의 문무를 드높이신 우리 님.

 

님은 자유의 꿈을 품으셨으나

(아, 슬프도다, 꿈에 지나지 않음이!)

그 자유를 쟁취하려 애쓰실 때

배신을 당하시와 못 이룬 님의 꿈.

 

수치스럽도다

자기들의 님을 치거나, 혹은 입맞춤으로

그의 친구가 결코 아닌 아첨하는 오합지졸 사제들에게

그를 팔아넘긴 비겁자들아, 비열한 손들아.

 

님의 자부심으로 저들을 물리치신

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애써 더럽히려 한

그자들의 기억을

영원한 치욕으로 썩게 하소서.

 

님은 용맹한 자들이 쓰러지듯 가셨도다,

최후까지 고귀한 용맹 떨치며,

죽음이여, 이제 그분을 하나 되게 하소서

과거 아일랜드의 영웅들과 함께.

 

어떠한 투쟁의 소리도 님의 잠을 방해하지 마라!

님께서 고요히 잠들어 계시니,

이제 어떤 인간적 고통도, 드높은 야망도 그를 독려하지 마라

그가 영광의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저들은 자신들의 소망대로 님을 꺾었네.

그러나 아일랜드여, 들어라,

님의 영혼은 새날의 먼동이 틀 때

불사조처럼 불꽃에서 다시 일어나리니.

 

우리에게 자유의 세상을 가져다줄 그날.

그리고 그날 아일랜드여, 부디

기억하라, 기쁨의 축배를 드는 술잔 속에

하나의 슬픔을-파넬의 기억을(p.212~214).

 

 14. 어머니

 홀로헌과 키어니 부인은 캐슬린 키어니를 낳는다. 그녀는 예이츠의 시극 『캐슬린 백작부인』의, 캐슬린의 딸과 이름이 같다. 캐슬린은 극장의 가수로 일한다. 그녀는 극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교제하다가 연중 음악회에서 실패를 해버린다. 그리고 캐슬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늘자 그녀의 어머니가 발끈하여 체면을 무시한다. 더블린 사회는 그녀를 비난한다. 어머니적 요소를 띤, 차별받는 여자인 '어머니'는 곧 '아일랜드'를 뜻한다. 작가는 '아일랜드'를 '어머니'에 비유한 것이다.

 

 15. 은총

 이 단편은 '종교적'으로 가장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깊이있게 다루기보다는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에 대한 풍자가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말이다. 파우어 씨, 커넌 씨, 커닝엄 씨, 머코이 씨 등의(머코이나 파우어 씨, 커닝엄 씨는 『율리시스』의 '하데스' 장에서 볼 수 있어서 친숙했다) 인물들이 모여서 종교에 대해 토론(사실상 풍자에 가까운)하고, 가톨릭 교황를 비꼰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에 참석한다. 그리고 제목 '은총'은 퍼던 신부의 설교로부터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 단편의 주제이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그러니 잘 들어라.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는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

 "네, 제 장부를 살펴보았더니 이러이러한 잘못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러이러한 점을 시정하겠습니다. 제 회계장부를 사로잡겠습니다(p.261~263)."

 

 이 설교에서는, 이 소설의 종교적 주제와 종교적 풍자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하느님의 은총'이 '돈'과 관련된 일에 시정되는 것을 보면, 당시의 가톨릭 교회가 돈에 물든 세속적인 곳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16. 죽은 사람들

 「죽은 사람들」의 제목은 조이스의 문학적 스승 중 하나인 헨리크 입센의 희곡 『죽은 우리가 눈을 뜰 때』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 작품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 역시 상징적이다. 릴리(Lily)라는 이름은 가브리엘의 상징이자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다. 게다가 주인공 '가브리엘' 역시 마찬가지다. '가브리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렸으며, 인간에게 위안과 동정을 베푼다는 천사이다. 그리고 콘로이의 형제의 이름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름을 본따서 지었다.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가브리엘의 아내가 마이클 퓨리의 죽음을 가브리엘에게 말해 준 후, 그의 의식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죽은 더블린 사람들의 초상을 볼 수 있다.

 이 단편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자 스티븐 데덜러스가 건설한 더블린이라는 '미로' 속에서 방황하는 '유령'이다. 조이스의 이 단편집은 갈수록 진화하여 이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지금까지는 일부의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 단편에서는 모든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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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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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원제는 『23 Thing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23가지'이다. '그들'은 물론 '자본주의의 지배자'이다. 또한, '당신'은 '소비자 혹은 국민'이다. 자본주의의 지배자는 당연히 국가 또는 대기업일 테고. 

 장하준 작가의 『나쁜 사마리아인』 이후 최고의 문제작인 이 작품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금서이다. 그의 전작인 『나쁜 사마리아인』이 군대에서 읽으면 안 될 책이라고 지정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이렇다

 Thing 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Thing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Thing 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Thing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Thing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Thing 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Thing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Thing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Thing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Thing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Thing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Thing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Thing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Thing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Thing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Thing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Thing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Thing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Thing 22: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Thing 23: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하나 하나가 문제작이다. 질문조차 문제적이고, 답변조차 문제적이니, 참으로 문제작이다. 자본주의의 진실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캐피탈리즘의 진실은 참으로 신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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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반격 - 미국은 어떻게 중국 경제를 납치했는가
류쥔뤄 지음, 황선영.한수희 옮김 / 에쎄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월스트리트의 반격』-부제 『미국은 어떻게 중국 경제를 납치했는가』는 미국이 중국을 이긴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책을 쓴 사람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른다. 중국인이기에, 중국의 헛점을 가장 잘 알 것이 아닌가?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허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을 추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도 중국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다. 중국이 비록 인구 수도 많고 물건의 질도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어서 앞으로 미국 최대의 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지만, 저자는 중국의 허점을 놀랍도록 잘 분석하고, 그것을 '월스트리트'의 반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완벽히 동의하지 않는다. 별 다섯개를 주려다가 네 개를 준 이유는, 가치는 뛰어나나 나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여 미국과 맞먹는 강함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세계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나처럼 예상했다. 그런데 저자는 너무 중국을 비하하는 것 같다.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문화사대주의자도 아닌 저자는, 그래도 나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었으니 하나 감점. 그러나 책의 가치는 대단하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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