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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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유전 사회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자식의 인생도 변한다. 즉, 부모의 위치에 따라 가난이 유전되거나 , 부와 명예가 유전되거나, 지식이 유전되거나, 무지와 부도덕이 유전된다. 어떤 집안의 사람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차별과 가난 속에서 살고 있고, 또 다른 집안의 사람은 아버지가 회사 사장, 정치가라는 이유로 오만과 편견에 빠진 채 살고 있다. 분명 이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해답을 내지 않겠다. 그저 이것을 하나의 예언이라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타락이 대물림되고, 무너져 가는 집안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작년 타계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의 줄거리와 다를 바 없다. 이 환상적 소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다.

 

 마콘도,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곳은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순수한 개척지였다. 그런데 맬키아데스를 비롯한 집시들이 마을을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게 문명의 힘을 전파하자, 그 순간부터 문명이 그를 고독과 무기력으로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나처럼 순진한 독자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맹목적인 문명 추구가 집안에 대물림되어, 부엔디아 집안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동이었는지,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죽을 때까지 모른 이들도 있었다!).

 

 또한, 문명은 마콘도 마을 사람에게 고독을 안겨주었다. 본격적으로 마콘도 마을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기차가 들어온 이후였다. 기차는 집시들이 가져온 진기한 물건 대신 바나나를 싣고 왔으며, 호기심에 찬 사람들 대신 무자비하게 학살된 3000명의 노동자들을 싣고 갔다. 전쟁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을 고독과 고통에 빠뜨렸다. 한 부엔디아의 고독이 집안 전체의 고독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마콘도 마을, 나아가 콜롬비아, 마침내 전 인류를 고독하게 만든다. 여기서 고독이란, 죽음 이상의 고통으로, 서로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장님처럼 서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아니, 장님보다 못하다. 우르슬라는 장님이 되서도 자신이 장님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 집안을 유지했으니까.

 

 한 세대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지만, 우르슬라는 부엔디아 집안의 주축이 되어 5세대까지 살아남는다. 마치 성서의 '창세기'를 보는 듯, 세대를 거칠수록 집안 사람의 수명은 줄어든다. 1세대는 115세(남편은 유령)였는데, 마지막 세대는 신생아(개미에게 잡아먹힌다)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 그것은 마지막 징조다.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부엔디아 집안은 끝났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는 근친상간의 상징이니까. 타락의 끝에서 부엔디아 집안, 마콘도는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끝으로, 오랜만에 나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큰 찬사를 보낸다. 이토록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하게 버무려놓은 작가는 앞으로도 없으리라. '마술적 리얼리즘'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주제 사라마구를 통해 알았고, 마르케스를 통해 완성했다. 이 소설의 재미와 의미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직접 느껴보라는 말밖에 없다. 유전되는 고독을 느껴보라. 벗어나려고 해도 지독하게 발목을 잡는 이 저주를 풀어보라. 과연 당신은 벗어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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