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고 하니, 섬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12월 역시 1년에 존재하는 여러 달 중 하나일뿐이다. 그러니 이 특별함으로부터 특별해지기 위해, 난 평범한 방법을 택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세는 연말, 한해를 `돌아보는` 것에 관심이 많나 보다. 신간에서도 그렇나 보다. 역사 또는 역사인물에 관한 신간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니. 돌아보고 싶은 것은 나 자신만의 일은 아니었나 보다. 이번 달의 키워드는 `돌아봄`이다. 더불어 나의 마지막 신간 페이퍼를 장식하는 주인공은 역사 신간이다. 난 주인공을 나중에 배치하는 것을 즐기는 까닭에, 소설 먼저 내보낼 것이다. 소설 역시 신간이 많다.

 

 

 

 우선 국내소설부터. 이 세 작품이 이번 달 주요 국내소설 신간이라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박경리의 『녹지대』가 사실은 내년 1월에 출간된다는 것쯤. 하지만 날짜야 어떤가.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된다는 말에 설레이는 말을 듣는 책이 바로 신간인 것을. 우리가 그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50년 가까이 접하지 못했던 『녹지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멋진가. 박경리 젊은 시절의 글이기도 한 이 소설은 제 2세대의 사랑과 아픔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빨리 만나보고 싶다.

 내가 『핸드메이드 픽션』을 주목한 까닭은, 우선 저자 박형서가 『새벽의 나나』의 저자라는 점이었고, 그 다음은 펜이든 다른 무엇이든 결국 `핸드`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픽션`이라는 당연하고도 잊었던 사실 때문이었다. 이 단편집은 하이브리드 소설, 다시 말해 종합선물세트다. 저자가 정성을 들여 손으로 만들어낸 이 픽션들을 보고, 저자의 수고에 감사하길. 하이브리드란, 저자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결정체니까.

 역사의 물결에 묻혀 사라진 비운의 여성, 봉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채홍』은 『미실』로 증명된 팩션의 떠오르는 거장 김별아의 신작 역사소설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아주 짧게 언급된 그녀는 저자의 펜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분 제도와 사회 구조가 엄격하여 다른 일탈은 허용되지 않던 시기, 욕망대로 행동하고자 했던 그녀의 스캔들, 그 자유로운 정신이 소설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웃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웃는 동안, 또 다른 웃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론 슬픔이 일어나기도 하고, 위로가 일어나기도 한다. 웃는다고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억지 웃음, 허탈한 웃음이라는 게 있듯이. 윤성희 작가는 상처받고 가난한 이들을 따뜻한 유머로 감싸주는 작가다. 이번 소설에는 상처 준 이들을 감싸주기 위해 유머를 사용한다. 단편집을 통해 다양한 위로와 유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소설집은 김미월의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과 어느 면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무도 펼쳐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는 인간들을 조명하고 그들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십자매 기르기』도 빠질 수 있겠는가. 부모님이 서로 갈라지고, 할아버지마저 죽게 된 십자매, 그리고 맏형과 둘째 `나`의 십자매 기르기 이야기........ 딱 봐도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 같지 않나? 돈을 벌기 위해 두 사람은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플루트` 연주를 통해 희망을 차츰차츰 발견한다. 이 아름다운 내용은 저자의 놀라운 문체에 의해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왕도와 신도』를 보자. 역사서 분위기만 잔뜩 풍기는 제목, 그러나 내용은 역사소설이다. 신숙주에 대한 역사소설이다. 역사에 기록된 `배신자` 신숙주가 아닌, `인간` 신숙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초기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과 함께 읽으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소설 역시 역사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점점 추위를 더해가는 날씨에 거스르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추리소설/미스터리소설을 모아보았다. 마치 겨울날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독특한 매력이 있듯이, 겨울철에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그 나름의 짜릿함을 더해준다. 『움직이는 집의 살인』은 우타노 쇼고의 `집의 살인` 시리즈의 연속이자 마지막 이야기로, 한해를 끝맺는 겨울에 출간되었다. 일본 추리소설 중 전설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인 『흑사관 살인사건』, 이 작품이 70년이 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명탐정 노리미즈가 이끌어가는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오컬적인 소설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찾아도 찾아도 끝이 없는 방대한 지식량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어휘를 따로 정리한 사이트까지 있다고 하니, 그 지식량과 인기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 아즈나 나오미의 『탐정은 바에 있다』 역시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총 12편의 작품이 출간된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우리나라가 늦게 알았거나 저작권을 얻는 데에 또는 번역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바에 있기를 좋아하는 탐정 `나`가 펼치는 유쾌한 탐정물의 세계에 한 번 빠져보라.

 지금까지 소개한 세 편의 작품은 모두 명탐정이 존재하는 일본의 추리소설이다. 이에 비해,『무언의 속삭임』은 일본과 똑같은 섬나라인 아일랜드 작가, 존 코널리의 작품이며, 스릴러와 추리물이 교묘하게 얽혀져 있는 관계이다. 이라크 퇴역군인들의 연이은 자살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 찰리 파커가 이라크박물관에서 약탈당한 궤의 미스터리에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 담겨 있다. 이 520쪽의 소설에 담겨 있는 것이 너무나 다채로워서, 『흑사관 살인사건』과 더불어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에 속한다.

 

 

 이번 달에 나오는 추리소설도 대부분이 갓 번역된 신간이 아니라, 예전에 번역된 작품을 다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출간 만으로 기쁘다. 셜록 홈즈 매니아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코난 도일로부터 탄생된 홈즈는 그 작가의 창조물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다른 작가들도 그를 그려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도일의 책 못지 않게 흥미롭고 홈즈의 기량이 마음껏 발휘되었다. 류노스케의 『지옥변』은 단편집으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워낙 거장이라서, 요절한 게 아쉽긴 하지만. 기염 뮈소의 신작이자 뮈소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는『천사의 부름』 역시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엘러리 퀸의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이상하게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에 아쉬울 뿐이다. 이 작품은 장 제목이 모두 '명사'로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석달린 크리마스 캐럴』, 아니 나아가 '주석달린' 시리즈에 대해 주석을 달 필요가 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가치가 너무나 뛰어나고 출간된 것만으로도 기뻐서 감격스럽다. 이 시리즈는 볼 때마다 설레인다. '주석달린' 시리즈의 힘을 이미 맛본 사람으로서 그것을 증명한다. 세계적인 명작 『크리스마스 캐럴』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와서 주석이 달려 나왔다. 비평가들의 이야기와 디킨스의 이야기를 동시에 맛보자.

 사실 이번 소설 신간 중 가장 소재가 참신한 작품은 『로보포칼립스』다. 이 SF 소설은 그 부제(인간은 어떻게 로봇의 반역에서 살아남았는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과 로봇간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로봇 공학자인 만큼, 『로보포칼립스』에는 로봇에 관련된 풍성한 상식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일상 생활 속의 로봇과 전문적인 로봇들이 갑작스럽게 인간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공포감, 외부의 존재가 아닌 인간 자신이 만든 기계에 의해 공격받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상황의 모순, 그리고 역사상 최악의 재난에 맞서 역사상 최초로 힘을 모은 인간들의 모습까지, 이 소설도 가장 기대되는 신작 중 하나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독서를 많이 하다 보니, 일본 국민들 사이에 '전설'의 문학이 존재한다. 『청춘의 문』은 그것에 속한다. 1978년 출간된 이후 영화, 연극, 만화 등으로 각색되고 2000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국내 문학계에도 차츰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츠키 히로유키만의 독특하고 탄탄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 친구 구남의 이야기가 등장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 풀어놓지 못했지만, 이번에 출간된 문학동네 문학전집을, 그리고 밀란 쿤데라 전집을 주목 신간으로 꼽고 싶다.

 

 자, 이제 인문 그리고 역사다. 주인공은 나중에 나오는 법, 그러니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2부에 넘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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