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박범신 작가가 돌아왔다. 『비즈니스』가 출간된 이후로 처음이다. 오랜만인 것 같다. 500쪽 가까운, 양장본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에 대해 다룬 전작과는 달리,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연재된 바 있어서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니 느낌이 새로울 것이다. 

 

 

  

 중앙일보 연재 마지막 회(일부) 

 에필로그: 말굽이 하는 말

 나는 말굽이다.
 그러나 말굽이라고 불릴 뿐 나는 말굽이 아니다. 아니고말고.

 나는 하나의 생명이다. 나의 육체는 생로병사의 순환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간의 잔인한 세례와 무관하다. 다만 오욕칠정만은 없다. 나의 주인은 마지막까지 우주 바깥, 아주 먼 곳에서 유래한 ‘탄생 이전의 슬픔’이라는 감정만은 남겨 지니고 있었지만, 나에겐 탄생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감정조차 전무하다. 나는 지고지순할 뿐 아니라 완전하다. 이를테면 나는 말굽 모양을 한 일종의 ‘사이코패스’다. 그러니 당연히 어떤 주인보다 오래 살 수 있다.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이대로 살아남을 것이다. 나를 도구로 삼았던 역사가 모든 걸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도구’라니, 틀린 말이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내가 오히려 나의 주인을 도구로 삼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처럼 거의 지고지순해질 뻔했지만 마지막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불쌍한 나의 주인. 오래 살기 위해선 오욕칠정을 완전무결하게, 뿌리째 거세해야 한다는 것을 나의 주인이 끝내 깨닫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영원히 살려면 감정을 완전히, 티끌 하나 없이 거세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윤리성의 최종적인 표상이다. 만약 나의 주인이 먼 곳에서 온, ‘탄생 이전의 슬픔’까지도 버렸다면 지금도 나처럼 정정히 살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꿈꾼다고 감히 말하면서, 사람들은 왜 참된 불멸에 완전하게 다가서서, 그것과 한 몸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빗물이 스며들어 내 몸을 적시고 있다.
 피에 굶주린 나의 깊은 갈증이 이로써 풀리는 건 아니지만, 빗물은 어쨌든 반갑다. 생생한 빗물이다. 생생한 빗물이 이리 쉽게 내게까지 스며드는 것은 내가 곧 지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날씨가 좋아 포클레인이 작업할 수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내 몸이 지표면에 도달할는지 모른다. 지상에 도달하면 누군가, 새로운 나의 주인, 어쩌면 바로 당신이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를 금방 들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나도 당신처럼, 너무도 간절히, 어서 당신에게 달려가서, 당신과 완전하게 한 몸뚱어리가 되고 싶다. 진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니 진화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이왕이면 ‘단풍잎’을 얼굴에 붙이고 살았던 나의 전 주인보다 좀 더 진보한, 좀 더 진화한 새 주인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바깥보다 더 먼 곳에서 온, ‘탄생 이전의 슬픔’까지도 완전히 거세된 불멸의 주인을.

그립고 그리운, 아, 바로 당신!


<끝>


* 지금까지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연재와 함께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재소설은 6월초 ‘문예중앙’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출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384945&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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