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만약 '행위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에 있어서, 우리가 이것은 그 자체 때문에 바라고, 다른 것들은 이것 떄문에 바라는 것이라면, 또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렇게 무한히 나아갈 것이며, 그 결과 우리의 욕구는 공허하고 헛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좋음이며 최상의 좋음일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니 이것에 대한 앎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큰 무게를 가지지 않겠는가(p.14)?" 

 

 위 구절에서 '행위될 수 있는 것'은 '행위에 성취될 수 있는 것들'로 번역될 수 있으며, 원어 '프락톤(prakton)'은 행위의 대상이나 결과를 가리킨다. 때문에, 위 구절은 행위의 결과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선'이며, '다른 것'은 '헛된 욕구'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으뜸가는 학문, 가장 총기획적인 학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치학이 바로 그러한 학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폴리스 안에 어떤 학문들이 있어야만 하는지, 또 각각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를 정치학이 규정하기 때문이다(p.14)."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는 윤리학과 정치학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주장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대가 담겨 있는데, 정치학이야말로 윤리학을 가르치는 데 가장 유용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에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이 담겨 있는만큼,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또 정치학은 나머지 실천적인 학문을 이용하면서, 더 나아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고 무엇을 삼가야만 하는지를 입법하기에 그것의 목적은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함할 것이며, 따라서 정치학의 목적은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설령 그 좋음이 한 개인과 한 폴리스에 대해서 동일한 것이라 할지라도, 폴리스의 좋음이 취하고 보존하는 데 있어서 더 크고 더 완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좋음을 취하고 보존하는 일이 단 한 사람의 개인에게 있어서도 만족스러운 일이라면, 한 종족과 폴리스들에 있어서는 더 고귀하고 한층 더 신적인 일이니까. 따라서 우리의 탐구는 일종의 정치학적인 것으로서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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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1-3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제목 만으로 숨이 막혀요~

대학시절 선생님께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을 스무번을 읽었다고 했다는게 쌩뚱맞게 생각

나네요~ 거듭해서 읽어도 매 번 다르게 읽히는 책이 고전이겠죠?

지금 읽고 있는 것들이 두고 두고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해보게 되네요 ^^

starover 2011-01-31 10:06   좋아요 0 | URL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을 아들 니코마코스를 위해 썼다고 하지만, 실은 모든 인류를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