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노경실 작가 최초의 성장 소설인 이 책은 평소 고전적인 작품만 읽는 나로서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정말 나는 이 책을 작가의 말처럼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청소년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바로 작품의 첫 부분이다. 

  "365×14=5,110.  

 '겨우 오천백십 일?' 

 연주는 휴대전화 뚜껑을 화닥 덮었다.  

 '14년이나 살아왔는데, 고작 5천 일 정도라고?' 

  연주는 사회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고민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연주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온 날을 계산하는 부정적 입장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연주는 이 소설 속에서 나날이 성장하여, 앞으로 자신이 살 날이 30,000여 일밖에 남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 이것은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긍정적 입장이다. 또한, 이 다짐은 연주가 아픔을 겪는 과정 속에서 성장을 했다는 증거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가수가 꿈인 14살의 연주는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 민지를 친구로 사귀면서 즐겁게 지낸다. 한편, 연주는 자신을 도와 준 지섭 선배를 은근히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지섭 선배가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학교에서는 일종의 '노래 대회'가 열린다. 지섭 선배를 떠나보낸 연주는 이윽고 그 대회를 준비하지만, 결국 떨어진다. 하지만 연주는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성장할 준비를 한다. 밝고 힘찬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말이었지만, 대회에서 떨어지는 부분은 약간 반전이었다. 그것도 아주 냉담한 문체로, "연주는 노래자랑대회의 예선에서 떨어졌다"고 말한다. 연주의 심리 묘사 역시 자세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는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중간 단계에 속한(정체성이 상실된 시기) 14살 연주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그리고 노경실 작가는 그 과정을 연주의 심리 묘사로써 밝혀낸다.

 "세상은 연극 무대인가?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니! 

 세상은 패션쇼 무대인가? 

 등장하는 사람마다 모두 나보란 듯이 잘난 존재들이니! 

 세상은 신생아 병동인가? 

 TV를 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잘나고 멋진 인물들이 탄생하니! 

 아니면 다윈의 진화론대로 사람들이 진화해서일까?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하는 대신, 이제는 사람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p.20~21)." 

 

 "어쨌든 나는 '아직' 열네 살이고, '겨우' 열네 살이고, 어쩌면 '벌써' 열네 살이고, '어느새' 열네 살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p.122)." 

 

 "-그럼 도대체 몇 살 때부터 남자 선배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열여섯 살! 춘향이도 열여섯 살에 연애했잖아. 

 -열여섯? 바보냐, 넌 그 나이 되면 고등학교 준비해야 해. 너희 엄마는 네 성적을 알면서도 너를 특목고에 보내려고 하잖아!  

 -바보! 너 모르니? 

 -뭘? 

 -로미오와 줄리엣 알지? 거기서 줄리엣이 몇 살에 연애를 시작했는지 알아? 

 -몇 살인데? 

 -열네 살! 그리고 로미오는 거의 지섭이 선배 나이 정도이고! 

 -정말? 정말? 줄리엣이 열네 살이었어? 그럼 내가 비정상인 거 아니네? 

 -그럼! 줄리엣이 죽은 나이도 열네 살일 거야.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불행에 빠지는 것도 모두 열네 살 때에 일어난 거네. 그 말은 진짜 인생의 역사가 시작되는 게 열네 살이라는 거야? 

 -옳지, 옳지! 잘 알아듣는구나(p.154~155)."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너희가 울든, 웃든, 노력하든 포기하든, 주저앉든 다시 일어나든…… 시간은 단 한 번도 멈추거나 쉬거나 요령 피우지 않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것을(p.166)." 

  

 "내가 살아온 날은 겨우 오천백십 일. 우리가 평균 백 살까지 산다면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은…….' 

 365×85=31,025. 

 연주는 휴대전화 뚜껑을 화닥 덮었다. 

 '앞으로 내가 살 날이 고작 3만 일 정도라고?' 

 85년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숨이 탁 막힐 정도로 길고 긴 날들인데, 날수로 3만 일이라고 하니 얼마 되지 않는 시간들로 여겨졌다.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하다 만 숙제도 해야 하고, 노래연습도 더 열심히 하고, 갈 수만 있다면 미국에 가서 지섭 선배도 만나고! 이렇게 인생이 바쁜데 엄마는 지리산에 다녀와서는 만날 느림, 내려놓음, 슬로우 라이프, 버리기, 비우기를 말한다. 

 '엄마는, 어른들은 해볼 것 다 하고 살아와서 그런 식으로 말하겠지만,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우리한테 그런 식의 삶을 강요하면 너무하잖아!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본 다음에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 아냐?' 

 연주는 엄마가 청소를 하고 있는 거실 쪽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p.250~251)."  

  

 (윗 부분은 작품의 첫 부분과 운율 혹은 리듬을 형성한다.)

 

 "그 때 연주의 가슴속 글에 응원을 보내듯 파란 시계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또, 다시…….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p.253)."  

 

 현대 사회는 순수함이 사라지고 '로스트 제네레이션(잃어버린 세대)'가 반복되고 있는 사회이다. 다시 한 번, 21세기 초에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와는 뭔가 다르다. 분명 그 때 젊은이들은 제 1차 세계대전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전쟁도 없고, 가난함도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잃어버린 세대가 되어 가고 있는가? 그들이 육체적으로 방황하고, 정신적으로도 방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열네 살들은 학교에서 학원, 학원에서 학원, 학원에서 집으로 옮겨가는 삶을 반복하면서 몸이 지쳐간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 '왜 내가 이러고 있지? 왜 내가 이런 지겨운 삶을 반복해야 하지?'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생각이 그들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굴복된 열네 살들은 비행청소년이 되거나 나쁘게 물들게 된다. 작품 속의 연주처럼 성장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머러스한 철학자 같은 민지 같은 열네 살 역시 드물다.

 사람의 인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유년기, 청소년기, 성숙기(어른의 시기)로 말이다. 그리고 유년기와 성숙기의 중간인 청소년기는 매우 중립적인 관계에 놓였으며, 정체성이 쉽게 상실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가장 첫 부분에 위치한 열네 살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또한 강하지도 못하다. 유년기의 첫 부분은 강한 자에 의해 보호받고, 성숙기의 첫 부분은 스스로 강하여 보호할 수 있지만, 청소년기의 가장 첫 부분, 즉 열네 살은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저항할 수 없다. 그래서 열네 살은 현대 사회의 '로스트 제네레이션', '잃어버린 세대'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작품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나도 14살이기 때문이다. 14살의 설움이 무엇인지 안다. 14살은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서, 어린이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모두 날아가버린다. 그렇지만 14살은 성인도 아니다. 성인이 되려면 15살이 된 후, 자신의 생일이 지나야만 성인이 된다. 즉, 14살은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혜택 같은 건 아무 것도 없는 시기이다. 어른들은 "이제 어른이니까 철이 들어야지"라고 14살의 '어른'에게 말하면서도, "너희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참견 말아"라며 14살의 '어린이'에게 말한다. 하지만 14살은 온통 그 설움을 참아내야 했다. 하지만 이 성장 소설은 당당하게 "열네 살이 어때서!"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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