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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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기분 좋은 익숙함이 나를 반겼다. 문장 부호의 최소화를 이용한 긴 호흡의 서사,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 독특한 기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장편소설에서 볼 수 있어서 기뻤다. 문장 부호 전체를 배제하는 주제 사라마구와 달리, 『아침 그리고 저녁』은 적절한 장소에 마침표를 찍는데, 이 문장부호가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찾아내는 것도 큰 재미 있다. 사실 나는 속독으로 읽은 편이라, 마침표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역자의 친절한 해설이 있어서 짧지만 어려운 이 소설을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 마디로 대답하면, 요한네스라는 노인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요한네스의 영혼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수용하여,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사(또는 삶)를 죽음 이후까지 연장한다. 이러한 시도 역시 욘 포세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죽어서 눈을 감은 이후의 순간까지 삶이라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주고, 죽은 자에게도 그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 삶과 죽음을 단절과 이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마침표마저 생략하여 영혼의 마지막 장면을 포착하는 이 작품의 시도는 가히 새로운 충격을 준다. 


 삶과 죽음은 분명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일생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려면, 그 사람의 일생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타인의 삶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특성상, 어떠한 작가도 삶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다만, 이 대담한 작가는 삶과 죽음의 원형 또는 순환의 가능성을 제시하여, 침묵 속에 언어를 담는다. 실로 그것이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언제나 침묵보다 적은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한편으로, 『아침 그리고 저녁』의 배경이 되는 피오르의 느긋한 자연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 한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요한네스가 수영을 배우지 않는 것에는,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속한 세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한 노인의 생애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언제나 무엇인가를 정복하고 개발해야 그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한가로운 삶이 반복되는 피오르의 생활은 달가운 일일까, 따분한 일일까? 우리는 심심풀이가 없는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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