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특별판)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는 원자폭탄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삶은 위대한 업적에 대한 과시나 찬란한 미래를 향한 기대보다는 과거에서 밀려오는 후회로 점철되어 있다. 트루먼 대통령과 만났을 때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회담을 제안했을 때, "그것은 트리니티 바로 다음 날 했어야 했다"는 말 역시 그렇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 순간, 인류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American Prometheus)는 이 물리학자의 업적보다는 비운에 더욱 주목한다. 핵분열은 순간적이지만, 그 연쇄반응은 한없이 길고 고통스럽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공을 세웠지만, 누가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고, 존경받는 롤 모델로 생각할까?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는 끝없이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지만, 누구도 그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과학은 분명 사고의 지평을 폭발적으로 넓힌다. 메리 셸리(Mary Shelley)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인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그리고 오펜하이머는 각각 생물학과 물리학에서 대담한 시도를 했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생명을 만들었고, 오펜하이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의 분열과 융합이 가시 세계 전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들의 창조물은 지극히 불완전하고 미약했으나, 발명가들은 인류에게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 '프로메테우스'라는 별명을 얻기에 충분했다. 이 평전의 저자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행동의 결과를 담담하게 제시한다. 그 서사시 앞에서 독자는 절로 숙연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남아 있는 자들이다. 어떻게든 교훈을 얻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핵전쟁의 공포와 위협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러니 거대한 서사는 역사에 맡겨놓기로 하자. 원자폭탄이나 미시물리학이 주는 위압감이 강해질수록, 오펜하이머의 삶이 주는 여운은 약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기억하고 싶다. 평전의 특성상, 어떤 인물의 좋은 점과 업적만 드러낼 수 없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오펜하이머의 결함을 더 많이 발견한다. 그의 정신적, 육체적 나약함, 광기와 일탈, 편협함과 무책임(특히 가장으로서의)은 원자폭탄을 떼어놓았을 때, 오펜하이머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편, 나는 자신의 부족한 면모를 독특한 방식으로 극복해 가는 정신을 발견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기 전, 오펜하이머는 저명한 물리학 교수였다. 그가 처음부터 강의를 잘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강의는 마치 기도문을 읊는 것처럼 단조로웠으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한편의 "공연"을 열었다. 드디어 음조의 변화가 생겼다. 중요한 부분일 때 목소리가 더욱 낮아지는 것이 흠이었지만. 강의록이 없이 말하다 보니 꽤 더듬기도 했지만, 항상 유명한 과학자나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청중의 얼굴을 보고 어떤 부분에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파악하고는 즉석에서 설명 방법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한번은 단 한 명의 학생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강의 시간 전체를 특정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273쪽) 오펜하이머는 나름대로의 강의 방식을 고안했고, 이것은 그의 천재성과 결합하여 많은 제자들을 물리학의 길로 인도하며 자신의 조력자로 만든다. 저자들이 뚜렷하게 강조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페이지 너머에 실존하는 그의 카리스마와 통찰력을 엿본다.
오펜하이머의 가족은 어떨까? 키티는 오펜하이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 병으로 사망한다. 아들인 피터는 아버지의 정체를 숨기며 평범하게 살고, 딸인 토니는 연약한 자아에 괴로워하다가 마음의 고향인 세인트존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메카시즘의 광풍 및 오펜하이머에게 닥친 불운의 여파로 학계에서 추방된 동생 프랭크는 대학교에 복직을 한다. 그리고 그는 1969년에 '익스플로러토리움'(Exploratorium)이라는 과학 박물관을 설립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 박물관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두 형제가 예술, 정치에 몰두하며 사는 동안 배운 모든 것들이 익스플로러토리움에 집약되어 있었다. 프랭크는 "익스플로러토리움의 목적은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면, 사회적, 정치적 세계 역시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면 모두 침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892쪽)
이 "모든 사람에게 권력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세워진 과학 박물관은 현재까지 계속 운영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남아 있는 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단순히 샌 프란시스코의 작은 만에서서 유지되는 박물관 하나만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세상이 멸망한 위협을 무릅쓰고 원자폭탄을 발명하려고 애썼던 이유가 동생의 염원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 사회적, 정치적 세계를 비롯한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므로 남아 있는 자들은 이해하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의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꼭 물리학이 아니어도 좋으니,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 내장되어 있는 원자폭탄의 연쇄 반응이 시작되는 때일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그 순간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남아 있는 자들은 어떨까? 그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