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스터 캐리』는 서로 다른 꿈을 향해 달려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캐리는 가족을 등지고 도시로 향했고, 허스트우드는 그런 그녀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모두 버리고 대도시로 간다. 하지만 그 선택은 자신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비정한 세계에서 헛된 꿈을 좇은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캐리에게는 능력과 야망이 남아 있었고, 그것을 간직한 채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비평가들은 부도덕한 캐리가 도리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의 도덕관이 잘못 되었다고 비난했지만, 그들은 이후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드라이저가 제시한 냉혹한 사회에서 젊음과 능력을 모두 잃은 캐리에게 어떤 미래가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잇따르는 보상을 얻는다는 허황된 꿈을 믿었을 것이다.


 내가 『시스터 캐리』를 보면서 가장 피부로 와 닿았던 점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비전이 결국은 헛되다는 지점이었다. 캐리가 드루에의 도움을 받기 전, 그녀는 구두 공장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지만, 열악한 생활 환경과 낮은 임금은 삶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드루에와 허스트우드과 관계를 맺고, 그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캐리의 모습, 마침내 허스트우드의 제안을 따라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옮겨갔을 때 그녀가 느낀 가난의 압박들은 어떤 스릴러보다 숨이 막힌다. 벌이는 없는데 잔고는 줄어들고, 일자리를 구한다고 장담하던 허스트우드가 빈 말만 반복했을 때, 캐리는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투쟁해야 했다. 이 도시에서 약자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녀가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뒷줄 어딘가에 배치되었다가, 동료들을 제치고 앞줄에 서게 되고, 마침내 조명을 받는 주연 배우로 성장하는 데에는 열정을 넘어서는 무언가의 요소가 존재했다. 노력하는 자는 '누구나' 성공한다는 환상은 사실 선택받은 계층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다. 


 이 작품에서 드라이저는 캐리의 내면에 대해 치밀한 묘사할 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상을 적극적으로 서사에 반영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차 파업과 허스트우드였다. 한때 호텔의 매니저였던 그는 생전 다루어보지도 않은 전차 운전을 급하게 배워서 현장에 투입된다. 그러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배신자로 간주하여 그를 비난하고, 급기야 그를 끌어내어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는 군중들이었다. 이로 인해 간신히 직장을 구하나 했던 허스트우드는 더 곤궁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중산층인 허스트우드가 빈곤층으로 몰락하는 과정 속에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어 등장인물들이 시대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캐리와 드루에, 허스트우드는 모두 제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캐리는 배 위에 타서 목숨을 건지지만, 흔들의자에 앉아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 자신이 추구했던 목표가 헛됨을 인식한다. 드루에는 예전처럼 부도덕하게 살아가고, 허스트우드는 그 물살에 휩쓸려 익사한다. 그외에도 그들의 주변 인물로 언급되었던 이들은 유령처럼 소모된다.


 확실히 나는 자연주의 소설들이 품고 있는 냉철한 시각에 매료되었다. 신의 은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 오직 개인의 힘으로 생존을 추구해야 하며, 그것조차 자연의 힘에 의해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다는 인식, 그렇기에 미래나 과거에 대한 감상에 젖지 않고 지금의 상황에 충실하는 모습 등은 나에게 몇 가지 영감을 준다. 그래서 내가 작가들이 취하는 입장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약자에게 한없이 냉혹한 것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복지의 체계화로 설명할 수 없는, 가난하고 약한 자를 외면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에 힘을 얻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가끔은 기꺼이 손해 보고, 기꺼이 실패해도 괜찮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 손을 뻗어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손을 뻗어야겠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이들은 시스터 캐리와 마찬가지로 공허한 결말을 맞이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허스트우드보다 더 비극적인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