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의 교육 - 개정판 한길그레이트북스 135
크세노폰 지음, 이동수 옮김, 정기문 감수 / 한길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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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키루스가 이름값 있는 스승으로부터 지혜를 전수받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황제 키루스가 제국을 세우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플라톤의 입김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크세노폰과 알렉산더 제왕의 명성에 드리워진 키루스는 역사 속에서 한결된 이야기를 전한다. 그속에 시대를 뛰어넘은 가르침이 숨겨져 있다. 


 물론 키루스의 전술 및 대형 배치 등은 전쟁학자나 고고학자에게 꽤나 유용한 정보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전쟁과는 거리가 먼 일반 독자로서 『키루스의 교육』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군주 키루스가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는지, 그의 성장 과정을 차근차근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정도의 위대한 학자를 스승으로 둔 적이 없었다. 따라서 키루스는 스스로 배워야 했다. 직접 전투를 지휘하고, 전투에서 패배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기도 한다. 독자는 키루스가 황제로 거듭남과 동시에 어엿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전체적인 인상을 계속 논하기보다는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 구절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가 깨달았던 내용이 곧 미래의 독자에게 전해진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완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키루스가 남긴 단상은 나름대로의 보편성을 확보한다. 키루스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아라스파스로부터 수사인 아브라다타스의 아내에 대한 말을 듣는다. 그 여자는 다른 시녀들과 똑같은 옷을 입었지만, 아라스파스는 천막에 들어가는 순간 귀부인의 미모와 기품으로 그녀를 알아본다. 그리고는 키루스에게 반드시 아브라다타스의 아내를 직접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키루스가 그것을 거절하자, 아라스파스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사랑을 결정할 수 있으니 일단 보고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그러자 키루스가 대답한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자유의지의 문제라면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사랑을 그만두는 것도 가능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노예처럼 얽매이는 경우를 자주 본다네.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그런 얽매임이 아주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말이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쉽게 내놓기 어려운 많은 물건을 상대방에게 선물하는 것을 보았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마치 다른 질병에 걸렸을 떄처럼 사랑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네. 그럼에도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쇠사슬에 묶인 것보다 더 강한 필연으로 묶여버리고 말지. (p. 252)


 여기서는 그가 목격했던 사람들로부터 얻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렇지 않게 된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만, 결국은 사랑의 구속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기뻐한다. 이 신비한 원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러한 구절을 고대 역사서에서 발견한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키루스의 인간성이 드러나는 대목은 후반부에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 중 대표적인 부분이 가다타스를 돕자고 동맹국의 장교를 불러놓아 설득하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나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가다타스에게 우리가 진심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오. 그것은 우리가 감사의 빚을 갚는 일인 동시에 올바른 일이기도 하오. 게다가 그 일은 우리 자신들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일이기도 하오.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 피해를 배로 되갚아준다면, 또한 우리에게 은혜를 준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 은혜를 배로 되돌려준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려고 하지 우리의 적이 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오. (p. 273)


 이후 제국을 세우는 과정, 그리고 제국을 유지하는 정책 등에서 키루스의 지혜가 드러난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희생시키기보다 모두가 잠시 힘들더라도 함께 과업을 이루는 방식을 추구했다. 역사상 황제들이 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주 택했던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방식을 그는 거부한다. 그가 행군에 대비해 병사들을 적응시키고 보급품을 일일이 챙기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실용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인지 보여준다. 후에 방대한 제국을 세우고 나서는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말이 최대로 갈 수 있는 지점마다 역을 설치하고 관리자를 배치한다. 이렇게 볼 때는 참으로 근대적인 발상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업을 이룬 키루스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키루스는 자신이 겪었던 고충과 실패를 모두 지혜로 전수하는 데에 힘쓴다. 과연 그에게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었다. 내가 이렇게 앉아서 키루스가 들려주는 인생 수업을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캄비세스, 너는 너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이 황금 왕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군주가 가진 가장 참되고 확실한 왕홀은 바로 충직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적으로 충직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또 우리 모두가 자연의 다른 속성이 늘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같은 사람이 항상 충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네 친구들이 스스로 충직하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친구를 얻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친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단다. (p. 439)


 훌륭한 경영자는 직접 부딪히기도 하고, 고전을 읽음으로써 교훈을 적용한다. 왜 우리가 몰락한 나라의 군주들을 보아야 하는가? 때로는 우리가 누군가를 다스려야 하고,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다른 영역에서 그러한 순간이 온다. 키루스가 제국을 세운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은 어렵다. 사랑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도 여전히 불가능하다. 독서가 간접 경험이라고 입이 닳도록 듣지 않았나. 그리고 모두에게 경험은 최고의 교육이지 않던가? 새삼스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다니, 어색한 기분이 든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 "상대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나는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경험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인생은 끝없이 즐거운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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