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세계문학의 시작점이 된 주제 사라마구. 노벨문학상이라는 수식어든,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수식어든 그것들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 『눈먼 자들의 도시』로 시작된 13년여간의 여정은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지만, 방향성은 동일하다. 요즘 들어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그 탐구의 과정에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들은 늘 소환된다. '도시' 시리즈로 시작하여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적인 주제인 '자발적 신성모독'의 정점에 오른 『예수복음』이나 『죽음의 중지』 등의 작품들은 나를 자극하는 원동력이 된다. 포르투갈에서 파문을 당하고 추방자의 길에 올랐지만, 누구보다 조국에 대해 기억하고 회고하는 그의 면모는 제임스 조이스를 연상시킨다. 포르투갈,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는 그에게 애증의 관계인 셈이다. 『돌뗏목』은 주제 사라마구와 포르투갈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책이다. 


 이 서사시는 마치 물수제비처럼, 페드로 오르세가 던진 돌 하나가 반도를 움직이게 했다는 작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마술적 리얼리즘'을 느낄 수 있다. 시간과 물리 법칙을 초월하여 발생한 사건에 대해 세계가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다. 언론은 페드로 오르세를 찾아 나서고 그와 얽힌 인물들, 주제 아나이수와 조아킴 사사 등이 충돌한다. 그의 오랜 독자로서, 이 작품만큼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무척 새로웠다. 


 나는 이야기의 흐름이 주는 흥미로움에 주목하고 싶다. 분리된 반도가 뗏목이 되어 대양을 유랑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보통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 예컨대, 한반도가 분리되어 태평양을 떠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소설가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발생하는 대혼란을 묘사할 것이고 어떤 이야기꾼은 대통합의 기회로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로맨스(romance)'를 다루는 주제 사라마구는 당연히 혼란보다는 통합에 주목한다. 포르투갈은 빠른 속도로 떠다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구의 회전을 느끼지 못하듯 꽤나 일상을 잘 유지한다. 반도의 항해가 멈추었을 때, 그 안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임신하는 것은 거대한 상징이다.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우리는 새롭게 나아갈 것이며 거기에 이르는 과정도 평화로웠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다른 자식이 나오는 불상사도 발생했지만, 이 모든 것이 허구임을 알고 있는 독자는 작가의 메시지에 주목하면 될뿐이다. 일부러 그가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까닭도 다른 작품에서 확보한 보편성을 제거하고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결국 반도는 멈추고, 그 위치와 방향은 바뀌었다. 어떻게 되었든 이 사건은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포르투갈을 넘어서서 각 나라들의 반응과 움직임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는 작가의 솜씨가 매우 탁월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읽기 전, 반도가 움직인 사건의 파괴적인 영향이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같은 감옥 생활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외부의 시선에서는 정치적으로만, 내부의 시선에서는 일상적으로만 분석하여 그러한 상징을 차단한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걷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구호 따위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일들의 집합임을 강조한다. 세계의 해석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포르투갈인들은 그래 왔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 기적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 과바이는 마침내 내일 라코루냐의 정신병원과 연락이 닿으면 어머니가 다른 환자들과 함께 이미 내륙으로 옮겨갔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어떠신데요. 전과 마찬가지로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 답변은 다른 누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들은 땅이 다시 사람들로 복잡해질 때까지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그곳에서 계속 머물며 기다릴 것이다. - P3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