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담 잭 런던 걸작선 1
잭 런던 지음, 이성은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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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잭 런던을 처음 접한 계기는 사회주의의 색채가 짙은 『강철군화』였지만, 더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이 대중작가가 심취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자연' 그 자체였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야성의 부름』이라거나 작년에 읽다 말았던 The Mutiny of the Elsinore나 올해 초에 접했던 The Scarlet Plague는 자연의 힘과 놀라움을 보여주는 데에 주목하고, 한편으로는 그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인간을 조명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쯤 되면, '물질은 영원하지 않고, 영혼은 불멸하다'며 유물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별 방랑자』가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요컨대, 잭 런던은 자연주의 작가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잭 런던 걸작선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비포 아담』은 자연주의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편소설이다. 격세유전과 적자생존 등 진화론의 관점에서 원시사회를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나 전생이었던 '큰 이빨'의 이름은 드러나지만, 현재의 '나'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잭 런던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나'의 시점을 빌려 자신이 상상한 원시사회의 풍경을 묘사함과 동시에 그가 생각하는 진화론을 설파한다. <인셉션>에서도 언급된던 '킥', 즉 떨어지는 꿈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본능은 단지 우리의 유전적 형질에 찍힌 습관에 불과하며, 그것이 전부이다. 말한 김에 당신들과 나,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 떨어지는 꿈속에서 우리는 결코 바닥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당신들과 나는 바닥에 부딪히지 않는 자들의 후손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속에서 결코 바닥에 충돌하지 않는다.


 초반부에 제시되는 진화 이론은 실로 흥미롭다. 묘하게 설득이 되는 듯 하다. 하지만 역자도 인정했듯이, 이 소설은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큰 이빨이 속한 동굴 부족과 인근에 위치한 나무 부족과 불부족은 신체의 능력과 지능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특정 인류가 진화하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더 우수한 종족이 무기를 이끌고 다른 부족을 학살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원주민들을 유럽인들이 몰아내는 풍경을 연상케 하는데, 『비포 아담』이 제시하는 최초의 문명이 이러한 비극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자칫하면 더 우수한 종족이 발전하지 않은 종족을 몰아내는 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정당화될 수 있다. 아무리 당시 진화론이 완성되지 않은 형태라고 해도, 익숙한 방식으로 과거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에 읽은 『종의 기원』에 제시된 자연 선택이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포 아담』은 흥미로운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큰 이빨과 늘어진 귀의 모험에서 지혜와 협력을 엿볼 수 있고, 재빠른 것에 대한 끌림, 붉은 눈을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 등은 이 회상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시킨다. 겉모습은 유인원에 가깝고 언어도 발달되지 않았지만, 단지 생존을 향한 욕구 이상의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불을 보고 기뻐하는 표지의 큰 이빨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문명을 축하하는 최초의 축제이다. 비록 동굴부족은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갔지만, 삶을 향한 강한 의지는 수천 세대를 통과하여 유전자에 새겨졌다. 잭 런던은 자신의 작품에 줄곧 등장한 강한 정신력의 인물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헌사를 바치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생존을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그것이 비극으로 끝난다 해도 갈망은 이후의 세대에게 전해진다고.


 자연주의가 오늘날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진화론은 논쟁 속에서 발전과 동시에 비극을 불렀다. 생존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생존본능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이들의 죽음을 합리화했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진화론은 완벽하지 않은 이론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선택이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자연주의를 기꺼이 채택한 작가들의 정신이다. 나 역시 잭 런던의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문명을 비판하는 태도나 자연관은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하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문명보다 우위에 있기에, 자연이 인간을 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명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자연이 인간을 몰아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의 원리는 무정하므로 한 번 시작된 재해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비포 아담이거나, 영원한 아담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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