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가끔 나는 어떠한 흥미 없이, 사전 정보 없이 작품 속에 들이닥치곤 한다. 영화든, 소설이든 그러한 경험은 예상 밖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감상 여행』의 두께는 얇았고, 나는 시도해 볼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작가였으며, 수록된 단편들(단편집인지도 몰랐다)이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반영임을 뒤늦게 알았다. 일본 문학에 대한 나의 무관심 때문인지 몰라도, 세 편의 이야기는 꽤 현대적으로 다가왔다. 


 다나베 세이코가 펼치는 이야기들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주로 남녀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일상의 조각들 속에서 독자는 피식 웃음을 짓고, 가끔은 송곳처럼 돋아난 씁쓸한 현실을 직시한다. 요지는 이런 것이다. 「감상 여행」속 유이코와 히로시는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지만, 결국 방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발견한 부조리함을 느꼈다. 다만 그들의 정체는 가야 할 곳을 모르는 것이 아닌, 무기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활자 너머로 먼지가 잠겨 있었고, 끝에 가서야 그들은 겨우 먼지를 털어낼 뿐이다. 


 「당신이 대장」은 작가의 특성이 가장 잘 표현된 단편이 아닐까 싶었다. 다츠노의 시선으로 본 에이코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변화와, 서서히 드러나는 다츠노의 무기력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작가는 어떤 한쪽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가족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유쾌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평생 직장이라 믿었던 파트 타임에서 잘리고 난 후 울고 있는 아내를 향해 "이번엔 아내가 이성을 잃고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아내가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라니. 제3자인 독자가 보기에는 한 편의 희극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그렇게 세상을 배웠겠거니 자부한 다츠노를 비웃듯 더 나은 직장에 채용된 에이코의 모습을 보여주며 두 현대인의 달콤씁쓸한 생활기를 마무리짓는다. 


 마지막 단편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는 상당히 자조적으로 변한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독신으로 늙어갈 각오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늙은 루리의 생활을 보여주고, 츠카다를 만나 마음을 여는 과정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무기력함과 블랙 유머를 거쳐 건조한 겨울의 시선으로 작품집을 끝내는 구성은 독자들에게 감상 여행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곳곳에 보이는 달콤씁쓸한 일상의 파편들이 우리에게 쏟아진다. 일상의 기록은 대중문학과 순문학 중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그 경계는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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