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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순 - 2014년 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평점 :
우선 2014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돋보이는 '상상력'의 확장에 칭찬을 표하고 싶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몇 편 읽어왔는데, 전체적으로 '난해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물론 이번 수상작들이 읽기 쉽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이전의 일부 수상작들에서 발견된 지나친 단조로움은 상당히 제거되었다. 나는 『몬순』을 통해 한국 단편문학의 지평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 현대 단편소설을 읽을 때 조금 더 많은 기대를 품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작품이 가장 우수했느냐는 심사위원의 견해일 뿐이다. 대상 수상작은 물론이요 유력한 후보작이었던「빛의 호위」나 「쿤의 여행」도 뛰어난 상징과 창의력이 돋보였으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프레디의 사생아」와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도 뛰어났다. 전체적으로 소재에 대한 작가들의 이해도가 높음도 알 수 있었다. 기린불, 헬게 한센, 파충류의 유전자 등에 대한 내용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만큼 섬세했다. 작가들은 가상의 존재를 창조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실처럼 잘 구현해 내었으며 소설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시켰다.
아홉 작품 속에서 나를 가장 매혹시킨 단편은 김숨의 「법 앞에서」였다. 이 작품은 위에서 설명한 수상작들의 장점이 한데 모여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과 열 손가락,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기로에 선 '나'는 '357'의 홀수와 '10'의 짝수 사이에 놓인 처지였다. 거의 대부분이 '나'의 의식의 빗발치는 흐름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 내가 한국의 현대문학에서 느꼈던 인상을 새롭게 보여준다. 문장을 끝맺지 않으려는 의지와 기묘한 반복, 그리고 언어의 사소한 유희가 선을 넘지 않게 조절되어 있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는 작가의 집요한 상상력 덕분에 작품을 읽는 내내 나도 주인공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법'과 '사회'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법 앞에서 '나'의 부부에겐 '1'이었던 아이(유일한 자식)가 '5'의 아이(다섯 번째 가해자)로 변한다. 4701개의 레고는 16개가 결여되어 있다. 1인시위자가 대규모 군중으로 변한다. 홀수는 위치를 바꾸고, 시계의 숫자는 시시각각 변해간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드러난다.
세는 것과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깊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그에게는 없다. 아들이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그러한 것까지. 그렇지만 어항 속 금붕어의 개수를 세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한 주먹 움켜쥔 동전의 개수를 세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죽어가는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 개수를 세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같으면서 얼마나 다른가. (p.115)
「몬순」과 「법 앞에서」는 주제에 있어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좌절이다.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 닥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구현된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킨다. 인간이 만물을 설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특정한 숫자로 설명하려 하기보다, 말로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하는 일보다 침묵을 지키는 일도 필요하다. 법 앞에서 가해자는 몇 년이라는 숫자를 구형받게 될까? 아니, 그보다 그 자는 제자리에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제자리를 통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