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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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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설가 “김훈”은 “불편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은 늘 눈길이 절로 끌리지만 손길은 선뜻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지극히 건조하고 딱딱한 문장들 - 어느 독자는 “하드보일드”한 문체라고 평을 하던데 딱 제격인 표현인 것 같다 - 은 쉬이 읽지 못하고 긴장하며 몇 번씩 곱씹어 읽게 만들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디게 만든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그럼에도 한번 그의 책을 손에 잡으면 도저히 내려놓지 못하고 다 읽을 때까지 꼼짝없이 며칠을 붙들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 바로 그랬다. 책은 진작에 가지고 있었지만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기 위해 책꽂이 가장 외진 곳으로 꼽아놓고 꽤나 읽기를 망설였지만 결국은 꺼내 읽고는 그 책들에 붙들려 며칠 동안은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또한 며칠을 그 여운을 쉽게 떨치지 못했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신작 <흑산(黑山/학고재/2011년 10월)>을 받아 들고서도 역시나 읽기를 꽤나 망설였지만 결국 손에 쥔 이 책, 예감대로 꼬박 3일이나 걸려 더디게 읽고 말았고, 읽고 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머릿 속의 거친 문장들과 책의 배경이 된 “흑산도(黑山島)” 검은 물결과 책 속 수많은 민초(民草)들의 참혹한 시신(屍身)의 영상이 쉽게 가시지 않아 꽤나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소개에 앞서 책의 시대 배경인 “신유박해(辛酉迫害)”에 대해 잠깐 소개해본다. 학창시절 국사(國史) 수업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읽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정조가 죽고 1801년 정월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攝政)을 하게 된 정순대비(貞純大妃)는 사교(邪敎)·서교(西敎)를 엄금·근절하라는 금압령을 내렸고,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의 천주교도와 진보적 사상가가 처형 또는 유배되고, 주문모를 비롯한 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고 약 400명이 유배되었다고 한다. 이 때 유명한 사건이 바로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사건인데,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이 주문모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듣고는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湯士選, Alexandre de Gouvea, ?~1808) 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그런데 그 탄원서에는 조선 천주교 실태와 박해 사실 뿐만 아니라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과 군대 5∼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외세(外勢)를 끌어 들이려 했다는 대역죄(大逆罪)로 간주되어 이 사건 때문에 이후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화를 입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그런 사건이기도 하다(네이버 백과사전 및 지식IN 발췌).

 

 

이 책의 등장인물과 이야기 전개를 살펴보면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귀양을 가서 흑산도 근해의 해양생물들의 생태를 기록한 “자산어보(玆山漁譜)”의 저자 “정약전(丁若銓, 1758~1816)”과 정약전과 정약용의 조카 사위이자 앞서 언급한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黃嗣永, 1775~1801.11.)” 두 인물을 축으로 하여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 가던 장면에서 시작하여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있다가 잡혀 처형당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시점 교차가 자주 반복되고, 두 인물 이야기에 같은 시대를 살았고 알음알음 인연을 맺게 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연들을 끼어 넣어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꽤나 긴장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책속 이야기들은 꽤나 절박하고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다. 특히 정약전이 겪었을 귀양살이의 신산(辛酸)함과 조정의 박해를 피해 제천 산골로 숨어들어가야 했던 황사영의 도피길 고생스러움도 안쓰럽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흉년과 가뭄으로 길에서 죽어가야 했던, 시신조차 제대로 매장되지 못하고 갈고리에 찍혀 바다에 쓰레기처럼 버려져야 했던 민초들의 가엾은 삶들을 읽노라면 절로 가슴에 분노와 슬픔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참 절박하고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을 작가는 전작들처럼 분노나 슬픔, 미움 등의 감정선을 철저히 배제한 채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묘사한다. 물론 역사책이 아닌 소설이다 보니 주인공의 성격이나 주변인물, 그리고 사건 정황 구성에는 작가의 상상력과 주관적 관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시대로 날아가 당시 사건들을 옆에서 직접 지켜보며 기술한 것처럼 최대한 객관화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기존의 <남한산성>이 보다 더 역사적 사실의 객관화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위에 소설적 상상력이 좀 더 두껍게 입혔다고나 할까? 이처럼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무미건조한 문장이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는 200여 년 전 신유박해와 민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마치 처음 들어 본 것 마냥 생동감 있게 그리고 하나하나의 사연들을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감 있게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이야기들이나 전작들인 <칼의 노래>의 이순신(李舜臣), <남한산성>의 병자호란(丙子胡亂) 등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들에서 수도 없이 다뤄진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들도 김훈의 펜 끝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되어 독자들에게 전혀 새롭고 심지어 “낯설게”까지 느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왜 뛰어난 역사 소설가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그리고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그의 문장을 곱씹어 읽고, 교차 편집되는 이야기도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나 주의를 기울여 읽었음에도 나는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 감상(感想)글에 담고 싶었던 더 많은 이야기들, 즉 기존의 민중소설(民衆小說)들과 이 책의 차이점, 이 책의 서사 구조, 책 속 등장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 후기(後記)와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작가의 집필 동기, 그리고 나를 긴장시키게 만드는 책 속 문장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이 글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의 글은 한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반복해서 읽을 때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도 이 책과 다른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새겨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여전히 그는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불편한” 작가로 계속 남을 것 같다. 그러나 불쾌하지 않은 기분 좋은 불편함 때문에 앞으로도 그를 계속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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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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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산율 1.21명… 222개국 중 217위(아시아 투데이, 2011-11-17)”

“핵가족에서 소핵가족으로;1인가구도 30년 만에 10배 증가”(천지일보, 2011-11-15)”

“나 홀로 가구 400만 시대(연합뉴스, 2011-12-12)”

“서울의 가장 주된 가구유형은 1인가구로 4인 가족 앞질러(뉴스웨이브, 2011-8-15)”

“[2011 결혼풍속도] 가족 해체의 시대; 新 가족의 탄생(머니투데이, 2011-5-9)”

 

뉴스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식이 부모를 부양(扶養)하고 3대가 함께 사는 전통적인 “가족(家族)”의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그런 시대가 된 것 같다. 주된 이유가 결혼 자체가 감소하고, 결혼 연령도 자꾸만 늦어지는 만혼(晩婚) - 2010년 결혼 평균 연령이 남성이 31.8세, 여성이 28.9세로 지난 2000년보다 2.5세가 상승했다고 한다 - 이 늘고 있으며, 이혼과 저출산, 인구 고령화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청년실업과 고용불안, 그리고 갈수록 팍팍해져 가는 하는 살림살이도 주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가족이 없다면 사람들이 딛고 설 바탕이, 안전한 버팀대가 없겠지. 병이 난 후 그 점이 더 분명해졌네” 라는 글귀처럼 가족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고 보다 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디딤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 최소 단위의 구성인 가족의 해체는 사회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결국 사회의 붕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렇다면 지금보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훨씬 더 강했고 결속력 또한 대단했던 한 시대 전의 “조선(朝鮮)” 시대의 가족은 지금 우리가 되살려 볼 만한 그런 모습이었을까? 그동안 보아온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봐온 것처럼 여필종부(女必從夫)와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대변되는 철저한 가부장제(家父長制), 그리고 정실(正室)과 첩(妾), 장남(長男)과 서자(庶子), 적자(嫡子)와 서얼(庶孼) 등 가족 내에서도 신분에 따라 차별받던, 지금 시대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가족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성사와 가족사를 전공하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으로 재직 중인 “이순구” 작가는 역사에세이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에서 성리학이 사회 지배 이념이 된 조선 중반 이후에는 그런 면도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조선 시대 초·중반까지는 우리가 알던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그런 모습이었으며 사회 운영의 일정 부분을 일임 받았을 정도로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우선 작가는 조선 시대 특히 16세기까지 혼인은 대체로 남자 쪽이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고 말한다. 혼인을 하면 여자는 그냥 자기 집에 그대로 살고, 남자가 정기적으로 자신의 집과 여자 집을 오가든지 아니면 아예 여자 집에서 눌러 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장가(丈家)” 간다는 말이 바로 “장인 집에 들어간다”는, 즉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남자가 신부가 될 여자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른 뒤 그대로 처가에서 살다가 자녀를 낳아 자녀가 성장하면 본가로 돌아오는 한국 고유의 혼인 풍속의 하나.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 책에서 수십번도 언급하는 단어이다 보니 이 책의 핵심 단어라 할 수 있겠다 - 이라는 우리 고유의 풍속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관습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20세기 초에 이른바 “해묵이”라 하여 신부가 결혼해도 해를 넘겨 친정에 있다 오는 것도 예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장가”가고 “시집” 온다는 표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달묵이”란 단어도 있는데, 달(月)을 넘겨 오는 것이란다. 해묵이와 달묵이, 참 재미있는 단어이다. 이런 전통은 결혼이 딸을 아들 있는 집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족을 “공유”하고 가족끼리 대등하게 결합한다는 개념에서 생겼다고 하는데, 그렇다 보니 아들과 딸의 권리와 의무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어 재산을 상속받는 권리도 아들과 딸이 균등히 가지고 있었으며(자녀균분상속,子女均分相續), 제사를 지내는 의무도 “윤회봉사(輪回封祀)”, “외손봉사(外孫封祀)”, “분할봉사(分割封祀)”라 하여 아들과 딸에게 비교적 균등하게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오늘날 명절만 되면 주부들이 차례 음식 마련과 손님 접객에 허리가 아프고 근육통을 호소하는 이른바 “명절증후군”으로 고생들을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 여자들의 제사에 대한 느낌은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남”이나 마찬가지인 시집 조상들이나 부모님이 아닌 자신의 친정어머니 제사를 지내면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전통이 바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 중후기에 들어 “성리학(性理學)”이 조선의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스템”에 변화가 왔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의 가족과 친족제도는 유교의 성(性)/남녀(男女), 연령/장유(長幼), 혈통/종지(宗支), 신분계층/반상(班常) 등에 의한 위계질서가 조화로운 사회를 이상적인 공동체로 추구하는 종법제도(宗法制度)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부계(父系)의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혈통 계승을 중요시하게 되고 재산 상속뿐만 아니라 지위 계승, 제사상속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장자를 우선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시기부터 조선의 여성들은 딸에서 며느리로 주된 정체성이 바뀌게 되어 여성들은 ‘시잡살이’를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딸로서의 권리를 잃어갔지만, 반면 며느리나 적처로서의 권리와 위치는 더 강하게 보장받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알려진 일곱 가지 이혼 사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이 때문에 부인이 쫓겨난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그 중 하나인 “자식 못 낳는 죄”도 적처와 총부(冢婦; 남편이 죽고 없는 맏며느리)들이 제사권(祭祀權)을 유지 - 제사권이 상속권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 하기 위해 양자(養子)들이기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강수연 주연의 영화 “씨받이”에서도 며느리를 내쫓지는 않았던 것을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이렇게 조선시대의 가족들의 모습을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성 우월의 가부장적이기만 하고 신분 차별의 가족 관계였던 줄 알았던 조선 사회가 그런 모습은 조선 후반에나 나타날 뿐 조선 중반까지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대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가족 관계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안 한다”고 할 정도로 남자들에게는 치욕으로까지 여기는 처가살이 기피 현상이나 처부모 부양 문제, 수많은 논란과 갈등 끝에 결국 폐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호주제(戶主制)” 폐지, 명절 때마다 겪게 되는 명절증후군 들도 우리 전통 결혼 풍습과 관념에서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도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라고나 할까? 물론 가족 해체 현상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하니, 그리고 사회발달구조 상 예전처럼 대가족제도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구조까지 와 있는 이상 과거로의 “회귀(回歸)”는 발전이 아닌 퇴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아들과 딸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처가(妻家) 식구들을 귀히 여겼던 조선시대의 가족관(家族觀) 만큼은 오늘날에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그런 생각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책, 그렇다고 가족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겠다며 정색을 하고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각종 역사 에피소드만 해도 충분히 신기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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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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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형 서점 추리소설 코너를 넘어 이제는 소설 전체 코너를 점령할 기세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은 정교한 트릭과 플롯,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허를 찌르는 반전 등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한껏 살린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전 미스터리”, “사회파”, “신본격파”, “서술 트릭”, “코지 미스터리”, “여행 미스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장르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중 현실의 사회를 무게 있게 다루는 장르를 “사회파” 추리라고 하는데,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사회적인 문제를 테마로 삼고, 탐정보다는 주로 형사가 사건을 수사하며,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 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또한 충격적인 반전보다는 치밀한 수사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미스터리가 해결되며, 범인들은 오히려 피해자로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과거에 당한 각종 폭력과 핍박을 복수하기 위해 범죄를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오랜 기간에 걸쳐 주류를 이뤄왔다는 사회파 추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이유>,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등 수많은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를 제일 먼저 꼽는다고 한다. 1950년에 등단해 40여 년 동안 1,000편에 이르는 작품을 선보여온 일본 문학계의 거물이자 그의 등장 전·후로 일본 추리 문학계가 구분될 정도이며, 작금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꼽을 정도라니 일본 추리 문학계에서의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가 있을 것이다. 일본 추리 소설을 즐겨 읽다 보니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아직 그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 인터넷 서점에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니 수입서적이 대부분이고 번역된 작품은 단편선과 장편 몇 권 정도이다 - 드디어 이번에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제로의 초점(원제 ゼロの焦点 / 이상북스 / 2011년 11월)>이 그 책이다.

 

아직 전흔(戰痕)이 채 가시지 않은 1957년, 올해 스물 여섯 살의 미혼 여성인 “이타네 데이코”는 서른 여섯 살의 A광고회사 호쿠리쿠(北陸) 지점장인 “우하라 겐이치”와 그 해 가을에 선(先)으로 만나 11월에 결혼을 한다. 선을 보고 결혼하기까지 시간 여유가 별로 없어서 그와 데이트 한번 제대로 못해봤고, 일에 대한 것도 그렇고 형님 집에 같이 살았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불안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결혼이란 상대에 대한 그런 정도의 막연한 이해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기며 결혼을 승낙한다. 신혼 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와 일주일이 지난 후 남편은 본사 발령이 떨어져 자신이 근무했던 “가나자와(金澤)”로 돌아가 사무실 인수인계와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말하며 기차에 오른다. 일주일 후 데이코는 집에서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지만 남편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기차역에서 기차에 오르던 남편의 모습이 바로 데이코가 본 우하라 겐이치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이다. 데이코는 남편의 사무실이 있던 가나자와로 찾아가 남편의 후임인 “혼다”의 도움으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역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남편의 과거에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남편의 짐 속 법률 책에 꽂혀 있던, 양옥집과 낡은 집을 찍은 두 장의 사진도 그렇고 회사 사무실 어느 직원도 남편이 기거하고 있는 숙소를 모른다는 점도 그렇다. 데이코는 양옥집 사진이 남편과 절친했던 거래처 사장 “무타로”의 집임을 알게 되지만 허름한 집 사진에서는 남편과 어느 여인과의 끈이 있음을 예감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남편의 행방 수소문이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드디어 큰 일이 벌어진다. 역시 남편의 행방을 조사하러 가나자와에 온 남편의 형인 “쇼타로”가 청산가리가 든 술을 마시고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데이코를 도왔던 “혼다”도 도쿄에서 의문의 여인을 조사하다가 독살당한 채로 발견되고, 의문의 여인이자 쇼타로와 혼다를 독살한 범인으로 여겨지는 “히사코” 또한 의문의 추락사를 당하고야 만다. 데이코는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의 내막을 어느 정도 추리해내지만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만큼은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하지만 우연히 방송을 보다가 진정한 정체를 깨닫게 된다. 과연 남편의 실종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누구일까?

 

(이하 감상에서는 스포일러가 일부 노출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한 아내의 여정(旅程) 속에 만나게 되는 미스터리 쯤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사회파” 추리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적 문제”는 종전(終戰)후 일본의 여성들이 “점령군”이었던 미군들과 자의에 의해 또는 생존을 위해 매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의 상흔이 어느 정도 가시고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갈 무렵이었던 1950년대 후반, 매춘을 했던 그 많은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여인들은 <주홍글씨>처럼 사회의 온갖 멸시와 혐오를 온 몸으로 견뎌내며 음지(陰地)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지만, 어떤 여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양지(陽地)에서 새로운 이름과 신분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녀의 과거를 알아보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마주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런데........그 바람은 산산이 부서진다. 바로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애써 감춰온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그동안의 모든 행복이 산산조각 나버릴 상황에서 범인은 자신의 행복을 지켜내기로 결심한다. 바로 끔찍한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범인의 애닯픈 몸부림에 일견 동정이 가는 이유도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견뎌낸 피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책에는 탐정이 등장하지 않고 여주인공인 데이코가 남편의 행적을 추적하며 얻은 자료를 통해서 사건 전말을 추리해내는 역할 - 물론 경찰도 등장하지만 그다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 을 하면서 계속되는 수소문과 조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미스터리가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등 사회파 추리의 전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다면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어떨까? 사실 데이코가 남편의 행방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며, 시아주버니의 죽음과 연이어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도 치밀하게 계산된 트릭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저 비밀을 감추기 위해 우발적으로 저질러지는 살인의 “연속” - 고전 추리소설들을 보면 첫 살인은 계획에 의한 것이지만 이어지는 살인들은 그 살인을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경향의 작품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이 작품도 그와 비슷한 경향을 선보인다 - 에 지나지 않으며, 결말에서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가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밋밋하다고 할 수 있어 재미 면에서는 소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파 추리 소설 작품들이 사회파 추리소설의 전형을 올곧이 따르지 않고 서술 트릭이나 다른 추리기법과의 혼합 작품들이 많아 사회파 추리소설의 참맛을 맛보기가 어렵다면 이 작품은 사회파 추리 소설 태동기의 원형(原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파 추리가 어떤 장르인지 알고 싶다면, 또한 “마쓰모토 세이치”가 왜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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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측 증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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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년대 초반 영국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들이 창립했다는 ‘영국 탐정소설 작가 클럽(The Detection Club)’은 가입자에게 추리소설의 원칙들을 문답 형식으로 서약하도록 했다고 한다. 규칙은 깨지기 위해 있다고 했던가. 클럽 멤버였던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 클럽의 규칙을 깨버리는 일대 파격을 선보여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공정성(Unfair)한" 추리소설의 대표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쓰인 트릭이 등장인물의 말투, 이름, 성별, 연령 뿐만 아니라 사건의 교차 배치나 시간 순서를 바꿔 독자들을 오인시키는 “서술 트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이 서술 트릭의 시초(始初)인지 알 순 없지만 서술 트릭을 이용한 가장 유명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서술 트릭은 일본 추리 소설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충격적인 반전(反轉)으로 독자들을 경악케 했던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슈노 마사유키”의 <가위남>과 함께 일본 서술트릭 3대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 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 올드팬들에게서 ‘환상의 걸작’, ‘전설의 명작’으로 알려졌다는, 서술 트릭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낸 작품을 만났다.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원제 弁護側の證人/검은숲/ 2011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클럽 레노’의 전속 스트립 댄서였던 “야시마 나미코”는 클럽 손님이자 굴지의 재벌 “야시마 산업”의 후계자인 “스기히코”와 결혼해서 대저택의 안방마님이 된다. 별채에 기거하고 있는 시아버지와 고용인들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지만 나름 씩씩하게 잘 견뎌낸다. 그런데 시누이 내외가 와서 하루 묵어가던 날 밤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별채의 시아버지가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 것이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현장의 지문들과 정황적 증거를 바탕으로 “누구”를 범인으로 긴급 체포하고 그 누구는 1심 재판에서 사형(死刑)이 선고된다. 그런데 2심에서 새로운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면서 판결은 뒤집혀 버리고 놀라운 반전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줄거리를 더 소개하고 싶지만 오히려 자세한 소개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서 줄여야겠다.

 

 

300 여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인데다가 술술 잘 읽혀 불과 두 세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족이 될 만한 심리묘사나 복잡한 배경을 과감히 삭제하여 독자에게 직구를 날리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출판사 소개글처럼 이야기 구조는 참 단순한 편이며 메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살인사건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책 종반까지 “범인”인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의 가상한 노력 쯤으로 여기며 읽다가 “종장(終章)”을 하나 앞둔 “11장 증인” 편에서 반전을 만나게 되고, 역시나 다른 서술 트릭 책들처럼 내가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 다시 앞 페이지들을 펼쳐 보면서 내가 놓친 단서는 없는지 살펴보니 그제야 몇 몇 단서들이 눈에 띄인다. 이 책, 서술트릭이 사용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책 말미에 실린 “미치오 슈스케”의 서평도 일부러 읽지 않고 나름 주의 깊게 읽었음에도 작가의 속임수에 깜빡 속고야 말았으니 제대로 뒷통수 한방 맞았다고나 할까? 추리소설이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작정을 하고 속인다면 독자는 항상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었다.

 

 

서술트릭은 "사기(詐欺)”라고 비판하는 독자들도 있지만 불쾌하지 않은,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한 그런 사기이니 용서해줄 만 하다. 그리고 서술트릭 추리소설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읽을 때는 참 기발하고 재미있는데 서평쓰기가 참 어렵다. 자세히 소개하려니 바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서평 쓰기가 꽤나 조심스럽고, 마지막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애써 참아야 하는 고통(?)이 꽤나 크기 때문이다. 결국 풀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던 어느 이발사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도 소리쳐야겠다.  “이 작품의 트릭은 XXX다!(자체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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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김병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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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코리안(Normandy's Korean)"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Red Army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Atlantic Wall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Utah 해안에서"(네이버 지식in 인용)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다시 독일군으로, 결국 미군의 포로가 되어버린, 그 어느 누구보다도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어느 조선인 이야기를 올해 이재익 작가의 <아버지의 길>로 만났다. 소설 속 주인공이 신의주에서 노르망디까지 2만 km에 이르는 지옥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길을 아들에게 다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견뎌낸다는 이야기에 명치 끝이 답답해지고 가슴 한 켠이 저려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 “노르망디 코리안”을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로 만났다. 개봉 예정이라는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의 원작 대본을 소설화한 김병인 작가의 <디 데이(D-Day/열림원/2011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일제(日帝)가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기 한 해 전인 1930년 식민지 조선의 부산, “남작당(男爵堂)”이라고 불리는 “요이치” 집 정원 한 구석에 있는 오두막에 홀어머니와 요이치와 같은 나이인 열살 남자 아이 “대식”,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세 명의 조선인 가족이 이사를 온다. 친구들과의 아지트를 낯선 조선인 가족에게 빼앗겨버려 심통이 난 요이치는 결국 자신을 찾아온 대식을 친구들과 함께 쥐어 패버리고 만다. 그로부터 8년 후 손기정 선수처럼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서 가족을 남작당에서 데리고 나오겠다고 결심한 대식은 달리기 연습에 여념이 없다. 대식은 라이벌인 요이치와의 시합에서 승리하지만 자신 때문에 코치직에서 쫓겨나게 된 선생님 때문에 격분한 나머지 교장실을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다가 그만 구치소에 수감되고 퇴학 당할 처지에 몰려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 그에게 교장 선생은 군대에 입대하면 퇴학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해오고 대식은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한편 대식과의 시합에 져서 실의(失意)에 빠진 요이치 또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 하고, 요이치의 아버지는 대식에게 요이치를 부탁하며 같은 부대에 배속될 수 있도록 힘을 써서 둘은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다. 소련과 몽골 국경 접경지역인 “노몬한” 지역 전투에 투입된 둘은 일본군이 대패하면서 소련군에게 붙잡히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수용소 “굴라크”로 끌려가게 된다. 고국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생스러운 포로생활을 견뎌내던 둘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오자 일본의 우방국인 독일군에 항복하면 일본으로 귀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소련군에 자원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군에게 항복하고 베를린으로 건너온다.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보지만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지라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이 여의치 않게 되자 베를린에 머물던 둘은 독일군으로 노르망디 지역에 군복무를 하다가 일본 잠수함이 오게 되면 그 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본 대사의 제안으로 다시 한번 독일군복을 입게 된다. 드디어 일본 잠수함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귀환의 꿈에 가슴 설레이지만 이틀을 앞두고 그 유명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책의 제목인 “디 데이”가 바로 상륙 작전이 일어나는 날이다 - 이 시작되고 둘은 해안 포대에서 연합군을 저지하다가 다시 한번 탈출을 하기에 이른다. 책 표지처럼 두 손을 맞잡고 전장을 벗어나 달리는 두 남자, 그들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의 길>, 그리고 이 책, 두 작품 모두 작가가 공을 들여 쓴 작품이라 작품의 우열을 가름할 수 는 없겠지만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작품이라 설정과 이야기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혹 두 작품을 비교하는데 작가들이 불쾌하게 느낀다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먼저 <아버지의 길>에서는 주인공 “길수”가 일본 장교에 의해 강제로 징용되어 끌려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데 비해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자의에 의해 입대를 한다는 점이 다를 수 있겠다. 두 책의 주인공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만큼은 다르지 않지만 올림픽에 출전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겠다는 대식이나 대식의 여동생과의 사랑을 소망하는 요이치의 사연보다는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을 위해서인 길수의 부성애가 좀 더 절박하고 애절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버지의 길>에서는 정신대 문제와 양민 학살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울분과 분노를 느낄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 반해, 이 책에서는 그런 문제들은 생략된 채 두 남자의 우정(友情)에 더 초점을 맞춘다.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과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과거사에서 가장 불운했던 사건인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침탈 때문에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자 타도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온 일본과의 관계를 이제는 화해와 동반자적 관계로 새롭게 설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길>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잔인했던 일본의 만행들은 가급적 피한 채 두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한정시켜 이야기를 전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의 길>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온갖 고초에 울분과 분노를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애끓는 부정(父情)에 가슴이 아파오는 극적인 재미와 감동이 꽤나 강렬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강렬한 느낌은 없지만 대신 두 남자의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을 밝힐 수 는 없지만 마지막 약속인 “바통 터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하기 힘든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삶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가슴 한 켠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한 책은 좀 더 절박하고 감성적으로, 다른 책은 다소 밋밋하지만 잔잔하게 풀어낸 점이 큰 차이라고 할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비교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이야기 - 작가의 말에는 영화화 과정에서의 사연들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소개를 생략한다 - 로 그려낼 영화 <마이 웨이>는 어떨 런지 궁금해진다.  다만 상업적인 흥행을 목적으로 애국심을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또는 <아버지의 길>의 부성애든, 아니면 <디데이>의 우정이든 어느 하나를 올곧이 그려내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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