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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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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년대 초반 영국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들이 창립했다는 ‘영국 탐정소설 작가 클럽(The Detection Club)’은 가입자에게 추리소설의 원칙들을 문답 형식으로 서약하도록 했다고 한다. 규칙은 깨지기 위해 있다고 했던가. 클럽 멤버였던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 클럽의 규칙을 깨버리는 일대 파격을 선보여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공정성(Unfair)한" 추리소설의 대표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쓰인 트릭이 등장인물의 말투, 이름, 성별, 연령 뿐만 아니라 사건의 교차 배치나 시간 순서를 바꿔 독자들을 오인시키는 “서술 트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이 서술 트릭의 시초(始初)인지 알 순 없지만 서술 트릭을 이용한 가장 유명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서술 트릭은 일본 추리 소설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충격적인 반전(反轉)으로 독자들을 경악케 했던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슈노 마사유키”의 <가위남>과 함께 일본 서술트릭 3대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 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 올드팬들에게서 ‘환상의 걸작’, ‘전설의 명작’으로 알려졌다는, 서술 트릭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낸 작품을 만났다.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원제 弁護側の證人/검은숲/ 2011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클럽 레노’의 전속 스트립 댄서였던 “야시마 나미코”는 클럽 손님이자 굴지의 재벌 “야시마 산업”의 후계자인 “스기히코”와 결혼해서 대저택의 안방마님이 된다. 별채에 기거하고 있는 시아버지와 고용인들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지만 나름 씩씩하게 잘 견뎌낸다. 그런데 시누이 내외가 와서 하루 묵어가던 날 밤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별채의 시아버지가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 것이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현장의 지문들과 정황적 증거를 바탕으로 “누구”를 범인으로 긴급 체포하고 그 누구는 1심 재판에서 사형(死刑)이 선고된다. 그런데 2심에서 새로운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면서 판결은 뒤집혀 버리고 놀라운 반전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줄거리를 더 소개하고 싶지만 오히려 자세한 소개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서 줄여야겠다.

 

 

300 여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인데다가 술술 잘 읽혀 불과 두 세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족이 될 만한 심리묘사나 복잡한 배경을 과감히 삭제하여 독자에게 직구를 날리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출판사 소개글처럼 이야기 구조는 참 단순한 편이며 메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살인사건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책 종반까지 “범인”인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의 가상한 노력 쯤으로 여기며 읽다가 “종장(終章)”을 하나 앞둔 “11장 증인” 편에서 반전을 만나게 되고, 역시나 다른 서술 트릭 책들처럼 내가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 다시 앞 페이지들을 펼쳐 보면서 내가 놓친 단서는 없는지 살펴보니 그제야 몇 몇 단서들이 눈에 띄인다. 이 책, 서술트릭이 사용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책 말미에 실린 “미치오 슈스케”의 서평도 일부러 읽지 않고 나름 주의 깊게 읽었음에도 작가의 속임수에 깜빡 속고야 말았으니 제대로 뒷통수 한방 맞았다고나 할까? 추리소설이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작정을 하고 속인다면 독자는 항상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었다.

 

 

서술트릭은 "사기(詐欺)”라고 비판하는 독자들도 있지만 불쾌하지 않은,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한 그런 사기이니 용서해줄 만 하다. 그리고 서술트릭 추리소설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읽을 때는 참 기발하고 재미있는데 서평쓰기가 참 어렵다. 자세히 소개하려니 바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서평 쓰기가 꽤나 조심스럽고, 마지막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애써 참아야 하는 고통(?)이 꽤나 크기 때문이다. 결국 풀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던 어느 이발사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도 소리쳐야겠다.  “이 작품의 트릭은 XXX다!(자체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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