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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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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설가 “김훈”은 “불편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은 늘 눈길이 절로 끌리지만 손길은 선뜻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지극히 건조하고 딱딱한 문장들 - 어느 독자는 “하드보일드”한 문체라고 평을 하던데 딱 제격인 표현인 것 같다 - 은 쉬이 읽지 못하고 긴장하며 몇 번씩 곱씹어 읽게 만들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디게 만든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그럼에도 한번 그의 책을 손에 잡으면 도저히 내려놓지 못하고 다 읽을 때까지 꼼짝없이 며칠을 붙들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 바로 그랬다. 책은 진작에 가지고 있었지만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기 위해 책꽂이 가장 외진 곳으로 꼽아놓고 꽤나 읽기를 망설였지만 결국은 꺼내 읽고는 그 책들에 붙들려 며칠 동안은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또한 며칠을 그 여운을 쉽게 떨치지 못했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신작 <흑산(黑山/학고재/2011년 10월)>을 받아 들고서도 역시나 읽기를 꽤나 망설였지만 결국 손에 쥔 이 책, 예감대로 꼬박 3일이나 걸려 더디게 읽고 말았고, 읽고 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머릿 속의 거친 문장들과 책의 배경이 된 “흑산도(黑山島)” 검은 물결과 책 속 수많은 민초(民草)들의 참혹한 시신(屍身)의 영상이 쉽게 가시지 않아 꽤나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소개에 앞서 책의 시대 배경인 “신유박해(辛酉迫害)”에 대해 잠깐 소개해본다. 학창시절 국사(國史) 수업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읽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정조가 죽고 1801년 정월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攝政)을 하게 된 정순대비(貞純大妃)는 사교(邪敎)·서교(西敎)를 엄금·근절하라는 금압령을 내렸고,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의 천주교도와 진보적 사상가가 처형 또는 유배되고, 주문모를 비롯한 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고 약 400명이 유배되었다고 한다. 이 때 유명한 사건이 바로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사건인데,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이 주문모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듣고는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湯士選, Alexandre de Gouvea, ?~1808) 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그런데 그 탄원서에는 조선 천주교 실태와 박해 사실 뿐만 아니라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과 군대 5∼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외세(外勢)를 끌어 들이려 했다는 대역죄(大逆罪)로 간주되어 이 사건 때문에 이후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화를 입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그런 사건이기도 하다(네이버 백과사전 및 지식IN 발췌).

 

 

이 책의 등장인물과 이야기 전개를 살펴보면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귀양을 가서 흑산도 근해의 해양생물들의 생태를 기록한 “자산어보(玆山漁譜)”의 저자 “정약전(丁若銓, 1758~1816)”과 정약전과 정약용의 조카 사위이자 앞서 언급한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黃嗣永, 1775~1801.11.)” 두 인물을 축으로 하여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 가던 장면에서 시작하여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있다가 잡혀 처형당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시점 교차가 자주 반복되고, 두 인물 이야기에 같은 시대를 살았고 알음알음 인연을 맺게 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연들을 끼어 넣어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꽤나 긴장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책속 이야기들은 꽤나 절박하고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다. 특히 정약전이 겪었을 귀양살이의 신산(辛酸)함과 조정의 박해를 피해 제천 산골로 숨어들어가야 했던 황사영의 도피길 고생스러움도 안쓰럽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흉년과 가뭄으로 길에서 죽어가야 했던, 시신조차 제대로 매장되지 못하고 갈고리에 찍혀 바다에 쓰레기처럼 버려져야 했던 민초들의 가엾은 삶들을 읽노라면 절로 가슴에 분노와 슬픔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참 절박하고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을 작가는 전작들처럼 분노나 슬픔, 미움 등의 감정선을 철저히 배제한 채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묘사한다. 물론 역사책이 아닌 소설이다 보니 주인공의 성격이나 주변인물, 그리고 사건 정황 구성에는 작가의 상상력과 주관적 관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시대로 날아가 당시 사건들을 옆에서 직접 지켜보며 기술한 것처럼 최대한 객관화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기존의 <남한산성>이 보다 더 역사적 사실의 객관화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위에 소설적 상상력이 좀 더 두껍게 입혔다고나 할까? 이처럼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무미건조한 문장이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는 200여 년 전 신유박해와 민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마치 처음 들어 본 것 마냥 생동감 있게 그리고 하나하나의 사연들을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감 있게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이야기들이나 전작들인 <칼의 노래>의 이순신(李舜臣), <남한산성>의 병자호란(丙子胡亂) 등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들에서 수도 없이 다뤄진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들도 김훈의 펜 끝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되어 독자들에게 전혀 새롭고 심지어 “낯설게”까지 느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왜 뛰어난 역사 소설가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그리고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그의 문장을 곱씹어 읽고, 교차 편집되는 이야기도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나 주의를 기울여 읽었음에도 나는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 감상(感想)글에 담고 싶었던 더 많은 이야기들, 즉 기존의 민중소설(民衆小說)들과 이 책의 차이점, 이 책의 서사 구조, 책 속 등장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 후기(後記)와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작가의 집필 동기, 그리고 나를 긴장시키게 만드는 책 속 문장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이 글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의 글은 한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반복해서 읽을 때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도 이 책과 다른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새겨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여전히 그는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불편한” 작가로 계속 남을 것 같다. 그러나 불쾌하지 않은 기분 좋은 불편함 때문에 앞으로도 그를 계속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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