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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김병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1월
평점 :
"노르망디 코리안(Normandy's Korean)"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Red Army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Atlantic Wall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Utah 해안에서"(네이버 지식in 인용)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다시 독일군으로, 결국 미군의 포로가 되어버린, 그 어느 누구보다도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어느 조선인 이야기를 올해 이재익 작가의 <아버지의 길>로 만났다. 소설 속 주인공이 신의주에서 노르망디까지 2만 km에 이르는 지옥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길을 아들에게 다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견뎌낸다는 이야기에 명치 끝이 답답해지고 가슴 한 켠이 저려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 “노르망디 코리안”을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로 만났다. 개봉 예정이라는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의 원작 대본을 소설화한 김병인 작가의 <디 데이(D-Day/열림원/2011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일제(日帝)가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기 한 해 전인 1930년 식민지 조선의 부산, “남작당(男爵堂)”이라고 불리는 “요이치” 집 정원 한 구석에 있는 오두막에 홀어머니와 요이치와 같은 나이인 열살 남자 아이 “대식”,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세 명의 조선인 가족이 이사를 온다. 친구들과의 아지트를 낯선 조선인 가족에게 빼앗겨버려 심통이 난 요이치는 결국 자신을 찾아온 대식을 친구들과 함께 쥐어 패버리고 만다. 그로부터 8년 후 손기정 선수처럼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서 가족을 남작당에서 데리고 나오겠다고 결심한 대식은 달리기 연습에 여념이 없다. 대식은 라이벌인 요이치와의 시합에서 승리하지만 자신 때문에 코치직에서 쫓겨나게 된 선생님 때문에 격분한 나머지 교장실을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다가 그만 구치소에 수감되고 퇴학 당할 처지에 몰려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 그에게 교장 선생은 군대에 입대하면 퇴학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해오고 대식은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한편 대식과의 시합에 져서 실의(失意)에 빠진 요이치 또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 하고, 요이치의 아버지는 대식에게 요이치를 부탁하며 같은 부대에 배속될 수 있도록 힘을 써서 둘은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다. 소련과 몽골 국경 접경지역인 “노몬한” 지역 전투에 투입된 둘은 일본군이 대패하면서 소련군에게 붙잡히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수용소 “굴라크”로 끌려가게 된다. 고국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생스러운 포로생활을 견뎌내던 둘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오자 일본의 우방국인 독일군에 항복하면 일본으로 귀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소련군에 자원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군에게 항복하고 베를린으로 건너온다.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보지만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지라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이 여의치 않게 되자 베를린에 머물던 둘은 독일군으로 노르망디 지역에 군복무를 하다가 일본 잠수함이 오게 되면 그 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본 대사의 제안으로 다시 한번 독일군복을 입게 된다. 드디어 일본 잠수함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귀환의 꿈에 가슴 설레이지만 이틀을 앞두고 그 유명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책의 제목인 “디 데이”가 바로 상륙 작전이 일어나는 날이다 - 이 시작되고 둘은 해안 포대에서 연합군을 저지하다가 다시 한번 탈출을 하기에 이른다. 책 표지처럼 두 손을 맞잡고 전장을 벗어나 달리는 두 남자, 그들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의 길>, 그리고 이 책, 두 작품 모두 작가가 공을 들여 쓴 작품이라 작품의 우열을 가름할 수 는 없겠지만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작품이라 설정과 이야기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혹 두 작품을 비교하는데 작가들이 불쾌하게 느낀다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먼저 <아버지의 길>에서는 주인공 “길수”가 일본 장교에 의해 강제로 징용되어 끌려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데 비해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자의에 의해 입대를 한다는 점이 다를 수 있겠다. 두 책의 주인공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만큼은 다르지 않지만 올림픽에 출전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겠다는 대식이나 대식의 여동생과의 사랑을 소망하는 요이치의 사연보다는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을 위해서인 길수의 부성애가 좀 더 절박하고 애절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버지의 길>에서는 정신대 문제와 양민 학살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울분과 분노를 느낄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 반해, 이 책에서는 그런 문제들은 생략된 채 두 남자의 우정(友情)에 더 초점을 맞춘다.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과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과거사에서 가장 불운했던 사건인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침탈 때문에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자 타도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온 일본과의 관계를 이제는 화해와 동반자적 관계로 새롭게 설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길>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잔인했던 일본의 만행들은 가급적 피한 채 두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한정시켜 이야기를 전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의 길>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온갖 고초에 울분과 분노를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애끓는 부정(父情)에 가슴이 아파오는 극적인 재미와 감동이 꽤나 강렬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강렬한 느낌은 없지만 대신 두 남자의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을 밝힐 수 는 없지만 마지막 약속인 “바통 터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하기 힘든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삶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가슴 한 켠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한 책은 좀 더 절박하고 감성적으로, 다른 책은 다소 밋밋하지만 잔잔하게 풀어낸 점이 큰 차이라고 할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비교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이야기 - 작가의 말에는 영화화 과정에서의 사연들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소개를 생략한다 - 로 그려낼 영화 <마이 웨이>는 어떨 런지 궁금해진다. 다만 상업적인 흥행을 목적으로 애국심을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또는 <아버지의 길>의 부성애든, 아니면 <디데이>의 우정이든 어느 하나를 올곧이 그려내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