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레전드 시리즈 1
마리 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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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과 영화로만 본다면 우리 미래는 “반드시” 암울할 것이다. 핵전쟁은 "반드시" 일어나 수십억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온 세상을 방사능과 잿빛 먼지로 뒤덮을 것이고,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지각 변동 등 전(全) 지구적 천재지변(天災地變)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확률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과학자의 예견이 있다하더라도 절대 안심하지 말기를. 왜냐하면 외계인의 침입이나 로봇들의 반란이 그런 재앙을 “반드시”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재앙 이후 지구에는 민주주의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최첨단 기술로 로 국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강력한 독재국가가 “반드시” 출현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청소년들은 참 불쌍하기 이를 데 없다. 소년소녀들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국가가 정해준 반려자와 강제로 결혼해야 하며, 지금의 대학입시는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어렵기 그지없는 국가공인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일생을 노예로 살거나 또는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청소년은 미래의 기둥이라고 했던가. 저항 한번 못하고 죽어 버리는 어른들 대신 미남 미녀에 천부적인 운동신경을 갖춘 청소년들이 강압 통치에 반기를 들어 혁명(革命)을 “반드시” 일으킬 것이다. 무슨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미래 예언 쯤으로 들릴 수 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디스토피아(Distopia)적 미래를 그린 청소년용(YA; Young Adult) 판타지 소설들을 읽은 분들이라면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저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몇 권 읽다 보면 비슷비슷한 설정과 스토리로 금세 식상하게 되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을 도매급으로 매도하기에는 너무 성급한 판단일 것 같다.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 전개,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를 타는 듯한 아찔하고 짜릿한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는 “주옥(珠玉)” 같은 소설들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소설과 영화로 크게 성공한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워낙 독보적인 작품이다 보니 이후 출간된 작품들은 종종 이 <헝거 게임>에 비교 당하곤 하는데, 대부분 <헝거 게임> 보다 못하다는 평가와 함께 금세 잊혀지는 비운(悲運)(?)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스릴과 재미 면에서 <헝거 게임>과 비교해 봐도 좋을 만한 소설을 만났다. 바로 “마리 루”의 <레전드(원제 Legend / 북폴리오 / 2012년 8월)>가 그 책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어느 미래, 한 때 세계경찰국가를 자처하던 미국은 멸망해 버리고 여러 국가로 나뉘어 버린다 - 책에는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 그 중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나라인 “리퍼블릭”은 전 국민이 열 살이 되면 “트라이얼”이라는 국가공인시험을 치러 그 점수에 따라 신분이 나뉘는 독재 국가이다. 이 시험에서 첫 만점을 기록했던 15세 영재 소녀 “준”은 이 나라 최고의 대학인 “드레이크”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데, 학과 성적은 항상 탑을 달리지만 말썽을 곧잘 피워 오빠이자 군인인 “메이셔스” 대위는 종종 학교로 불려오곤 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오빠와 단 둘이서 살고 있는 준은 자신을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돌봐주는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그런 오빠가 병원 근무 중에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바로 리퍼블릭 최고의 현상 수배범으로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이자 자신과 동갑인 15세 소년 “데이”이란 것이다. 준은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여 데이를 잡기 위해 빈민가로 위장 잠입하여 마침내 준 일행을 만나게 된다. 복수심과 증오로 불타오르던 준은 막상 데이를 만나자 마음이 흔들려 버린다. 전염병에 걸린 동생과 그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형과 어머니를 위해 애쓰고 있는 데이의 처지가 자신과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싸구려 와인 탓인지 데이와 키스까지 하면서 애정이 싹터 버리지만 결국 준은 데이를 함정에 빠뜨려 그를 체포한다. 체포과정에서 어머니가 죽는 불행한 일도 벌어졌지만 데이는 그래도 준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준에게 자신은 준의 오빠를 죽이지 않았다고, 그리고 빈민가에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에는 리퍼블릭의 음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준은 그런 데이의 주장을 변명으로 여기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생각에 사고 당시 슬픔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던 오빠의 시신 사진과 오빠가 남긴 일기장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시신의 상처도 그렇고 일기장에는 오빠가 의도적으로 남긴 수수께끼가 있었던 것이다. 오빠가 남긴 수수께끼를 푼 준은 오빠가 자신에게 남긴 비밀 메시지를 읽고는 마침내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이처럼 설정과 줄거리, 그리고 소년소녀라는 주인공만 놓고 보면 앞에서 언급한 범주에 모두 부합되는, 어쩌면 식상할 수 도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책을 받고서는 그동안 읽었던 여느 소설들과 다를 바 없겠지, 거기에 <헝거 게임>과 유사한 책 표지 문양이라니 기껏해야 <헝거 게임>의 아류(亞流)에 불과하겠구나 하는 마음에 별 기대 없이 - 정확히는 실망할 준비를 미리 하고 재미없으면 중도에 읽다 말 생각까지 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기대 이상으로 재미가 있지 아닌가. <헝거 게임>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여러모로 다른 재미와 스릴이 느껴져 책 읽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이 책 만의 재미와 스릴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추리소설적인 이야기 전개를 들 수 있겠다. 책에서 주요 사건은 주인공 “준”의 오빠인 “메이셔스” 대위의 죽음과 또 다른 주인공 “데이”의 동생이 앓고 있는 전염병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단순한 살인 사건과 그저 흔한 전염병 인줄 알았던 두 사건은 중반 이후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는데, 오빠의 시신을 찍은 사진 몇 장 - 그것도 상처 부위가 잘 드러나지 않도록 각도를 왜곡하여 찍은 사진들 - 과 오빠의 일기장에 남긴 수수께끼 - 오빠를 잘 아는 준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하게 숨겨놓은 -, 그리고 데이가 우연찮게 발견했지만 그냥 지나쳐버린 이상한 시설물 등의 단서를 통해 감춰진 비밀들이 그 베일을 벗고, 전혀 별개의 사건인 줄 알았던 두 사건이 하나의 접점에서 만난다는 결말이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처지에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닮아 있는 두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인 만남과 서로에 대한 이끌림, 오해, 화해, 그리고 사랑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뜻 로미오와 줄리엣 식 식상한 관계 설정으로 볼 수 있지만 만남과 갈등, 사랑에 이르는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진행 과정이 꽤나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감정이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이런 로맨스 판타지 소설 자체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고 특히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종종 손발이 오그라들고 하는 그런 중년의 남성인 내가 읽어도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런 식의 청춘남녀의 만남과 사랑도 꽤나 매력적이겠구나 할 정도라면 적어도 나에게만은 성공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말이다^^ 책의 부제인 "두 개의 심장 하나의 불꽃"이라는 문구가 딱 어울리는 그런 로맨스였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데이가 체포되었다가 사형 집행 바로 전에 탈출해서 준과 함께 하는 일련의 과정 -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시리즈 첫 번째 권이니 주인공이 제대로 사랑 한 번 못해 보고 첫 권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다 할 수 있기에 그냥 결말을 써 본다^^ - 들이 여느 스릴러 액션 소설 못지 않게 박진감 넘치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잡아끌게 만든다. 물론 다른 소설들도 이런 면들이 없진 않지만 작가의 결코 녹록치 않은 이야기 구성력과 글솜씨가 전혀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요리에서 같은 식재료와 조미료라고 하더라도 요리사의 솜씨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모양의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그런 같은 재료와 조미료로 만들었기에 모양은 비슷할 지 모르지만 그 맛은 훨씬 뛰어난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역시 이 책에서도 미래 사회를 빗대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꼬집고 있다는 메시지를 끌어내 볼 수 있지만 애써 주제의식을 찾아보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 자체의 재미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과 기존 사회 질서와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될 2권과 <트와일라잇> 시리즈 제작진이 제작한다는 영화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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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게임 2 : 종극 - 소설
카나자와 노부아키 지음, 천선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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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새는 유치하고 식상하다고 잘 하지 않지만 예전에 미팅이나 술자리를 가면 한번쯤은 꼭 하게 되는 게임이 바로 “왕 게임”이었다. “왕”으로 선정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참 단순한 게임으로 처음에는 가벼운 명령이나 벌칙을 내리지만 분위기가 고조될 수 록 점점 더 강하고 민망한 벌칙들이 내려지는 상황이 바로 재미의 포인트인데, 대부분 그저 웃고 넘기지만 때로는 감정이 상해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단순히 모임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유흥거리가 아니라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면 어떨까? 만화나 소설 속에서 볼 법한 유치한 상상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이걸 소재로 한 소설이 있었다. 바로 일본 작가 “카나자와 노부아키”의 <왕게임>이 바로 그 소설인데 일본에서는 300 만 부 이상 팔렸고, 만화와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말 그대로 “빅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글을 보면서 유치한 장난까지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상품화하는, 한편으로는 게임에서의 “왕”이 초자연적인 존재로 죽음을 명령한다면 꽤나 기막히고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설로 영화로 만들어 내는 일본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 이 <왕 게임>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인 <왕게임 2- 종극(終極)(AK커뮤니케인즈/2012년 7월)>을 읽었다. 2012년 여름 피서(避暑)용(?) 공포 소설 읽기 시리즈로는 마지막 편인 셈이다.

 

전 편의 처절하고 잔혹한 왕 게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부아키”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하게 된다. 간신히 공포스러운 기억을 달래며 새 학교에 적응해나갈 무렵 핸드폰으로 새로운 <왕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문자가 날아온다. 벌칙을 수행 못하면 죽음이고 거부해도 죽음인 오로지 “죽음” 뿐인 왕 게임이 시작되지만 노부아키의 반 친구들은 단순히 스팸 메시지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문자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친구들이 죽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명령이 계속 날아들면서 아이들의 죽음 또한 계속 이어지고, 노부아키는 이 왕 게임이 자신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으며, 반 친구 중에 자신처럼 다른 왕 게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아이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다. 서로에 대한 반목과 질시, 그리고 우정과 사랑이 교차되는 가운데 왕 게임은 정점에 다다르고 이제 몇 남지 않은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과연 노부아키는 저번처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왕 게임을 벌이는 의문의 존재는 과연 그 정체가 밝혀질까?

 

350 여 페이지의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편집이 작은 판 형에 넓은 줄 간격, 비교적 큰 글씨체인 데다가 게임이 진행되면서 사건과 죽음이 연달아 발생하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이야기 전개 때문인지 책은 금세 읽히고 재미와 몰입감 또한 상당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격언도 있지만 이 왕 게임은 피할 수 도 거부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즐길 수 도 없는, 죽기 싫으면 친한 친구라도 죽여야 하는, 참 불공평하고 무자비한 게임이다. 게임에 참가하게 된 아이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아이들은 게임을 불러들인 된 노부아키를 작당모의해서 죽이려고 하고, 한편 어떤 아이들은 게임의 진행을 막으려는 노부아키를 도우려고 하며, 그 와중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는 나름 가슴 아픈 로맨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은 이런 사정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목처럼 종극을 향해 치닫고 명령을 지키지 못하거나 또는 거부했던 아이들은 어김없이 죽고야 만다. 바로 이처럼 게임이 진행되면서 저마다의 사연과 상황을 가진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이 이 책의 재미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마지막 생존자는 누구이며 왕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에 책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나름 재미가 있지만 이야기는 유치하고 거기에 허술하기까지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를 너무 빠르게 몰아치다 보니 군데군데가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렇다 보니 몇 몇 상황들은 연결이 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게 느껴진다. 이런 생존 게임류의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고 반목하면서도 그런 갈등을 해소되면서 돈독한 우정으로 공동의 적과 맞서고 때로는 애절한 사랑을 펼치는 장면들이 재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재미는 있을 지 몰라도 공감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노부아키와 함께 왕 게임을 경험해본 생존자이자 대적자였던 캐릭터는 제법 음모를 꾸미고 친구도 배신하는 악역의 면모를 보여 주지만 단순한 악역에 그칠 뿐 캐릭터의 설정이나 사연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고, 공감할 정도로 절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또한 노부아키가 한때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전 주민들이 왕 게임에 참가하는 바람에 이제는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찾아낸 왕 게임 비밀의 단서들도 명확하지 않고 애매하기만 해서 괜히 비밀을 결말까지 감춰 두려는 장치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고, 결말에 이르러 밝혀지는 왕 게임의 정체나 최후의 생존자에 대한 설정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혀두지 않는다^^ - 또한 꽤나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설정은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이야기는 치밀하지 못하고 허술하기까지 한, 원래는 이렇게 시리즈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단 권으로 끝났을 텐데 1권이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자 고무된 나머지 2권을 급조해서 만든 느낌이라고나 할까?

 

재미는 있지만 소설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말 그대로 “시간 때우기(Killing Time)”용 소설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번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피서용 공포소설로써는 역부족이었던 그런 책이 되었다. 특히 같은 국적의 시리즈 공포 소설로 소재의 기발함과 소설적인 완성도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헐리우드에서도 영화로 제작되어 큰 흥행을 거두었던 “스즈키 코지”의 <링(Ring)> 시리즈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꽤나 실망스러웠을 작품이었다. 1권도 2권과 별반 다를 것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3권에서는 왕 게임의 규모가 전국으로 확대된다니 기대가 되고, 2011년에 제작되었다는 영화 또한 비쥬얼(visiual)적인 측면에서는 어떻게 그려냈을까 궁금함이 든다. 그러고 보면 책의 완성도를 떠나 “왕 게임”이라는 소재 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소재 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3권에서는 좀 더 치밀하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만나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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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 빅엿’ 양심 판사, 사법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
서기호.김용국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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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을 보다 보면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MC, 국민 여동생 등 “국민”을 수식어로 붙여진 연예인들을 여럿 보게 된다. 그만큼 세대를 불문하고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뜻일 텐데, 수긍이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고개가 갸우뚱대는 것을 보니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 수식어인 것 같다. 그런데 연예인이 아닌 데도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것도 우리랑은 전혀 별개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법조인 “판사(判事)” - 물론 지금은 전직(前職) 판사이지만 - 에게 말이다. 법조인들 중 “국민”이란 호칭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면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유일한 분일 텐데 감히(?) 누가 이런 호칭을 받고 있는 걸까? 바로 트위터(twitter)에 “가카 빅엿”이라는 글을 올려 유명했던, 그리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法服)을 벗고 지금은 야당 국회의원이 된 “서기호” 의원이 그이다. 트위터 사건 때부터 그 분의 아이디를 팔로잉해오고 있고, 인터뷰 기사와 사건 해설 기사들을 찾아 읽어서 내막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과연 이 분이 국민 판사로 불릴 정도로 업적이나 또는 사법개혁에 대한 어떤 복안이나 의지가 있는 지는 잘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바로 <국민 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 빅엿 양심 판사, 사법 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오마이북/2012년 7월)> 라는 책 말이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서 총선(總選)은 진작에 끝났는데, 정치인 책들치고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의아해서 살펴보니 출판사 소개글에 이 책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서기호 판사와 김용국 「오마이뉴스」시민기자가 직접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긴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나온다. 즉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자서전이 아니라 비교적 오랜 시간 인터뷰를 통해서 만들어낸 책인 것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인 “서기호” 전(前) 판사 - 국회의원이니 의원으로 호칭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인터뷰를 진행했을 당시에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또한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자신의 인생사와 판사시절에 대한 회고(回顧)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호칭은 “전(前) 판사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 는 “서기호의 이야기; 국민판사로 새 인생을 시작하다”에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날이라는, 사법부의 판사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법원 직원들과 공무원노조가 자발적으로 마련해준 “국민과 소통하는 사법부의 양심 서기호 판사 퇴임식”이 열렸던 “2012년 2월 17일”에 얽힌 전후 사정들과 자신이 야당의 비례대표로 선거에 나선 이유를 들려준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은 법률 전문가의 시각에서 어렵게 쓴 이론서가 아니라 비전문가인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소통의 관점에서 기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가카 빅엿’, 재임용 탐락 등의 사건들이 한 때의 치기나 유명세에 기댄 것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시류에 휩쓸려 우발적으로 한 행동들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해왔으며, 이 책이 단순한 자기변명이나 혹은 정치판에 뛰어들기 위한 출사표(出師表)은 아니라는 말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본문에 들어서면 1,2장에서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함께 판사로서 지난 10년 간 겪어온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사(個人史)이긴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거셌던 80, 90년대를 함께 살아온 동시대의 청년으로서 시대에 대한 고민과 일반인들에게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만 느껴지는 판사로 재직하면서 피의자들이나 주변 법조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다른” 판사가 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3장에서부터 그를 세상에 알리게 한 사건들, 즉 촛불재판 파동, 사법주권을 위협하는 한미 FTA, “가카 빅엿”으로 유명했던 트위터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업무 성적 낙제 판사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 쓰고 판사직을 그만 두어야 했던 사건의 전후 사정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마지막 5장에서는 사법개혁을 위한 자신의 소신을 하나하나 밝힌다. 어쩌면 이 책의 핵심이 바로 이 5장라고 할 수 있는데, 서 전 판사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냈지만 아쉬운 부분과 부족한 점이 계속 눈에 보인다며 앞으로 더 많은 경험과 연구,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서장에서 솔직하게 밝히며, 아울러 ‘국민판사 서기호’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지런히 실천하고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이 책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서 전 판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판사도 자유로운 표현을 할 권리가 있으며, 사법개혁은 “소통”을 통해서라는 이 두가지 일 것이다. 서 전 판사는 판사도 인간이기에 1인 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권리가 있으며, 특정 언론과 대법원의 눈치 때문에 매우 위축되고 불편하고 찜찜해서는 안 되며, 일반인들 뿐 아니라 판사에게도 사생활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라고 말한다. 또한 사법개혁의 핵심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관료 시스템을 깨는 것인데, 이건 국민과 함께 해야 하며, 자신은 비록 10년간 법복을 입다가 강제로 벗게 됐지만, 이제는 더 멋있는 국민법복을 입었기 때문에 훨씬 든든하다고 말한다. 또한 법원이 국민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대법원과 평판사 사이, 대법원과 일반 직원 사이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법원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부분은 이른바 밑바닥 민심과 관계가 없으며, 밑바닥 민심은 결국 직접 맞부딪치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법원의 구성원인 평판사, 일반 직원과 대법원이 제대로 소통한다면 이 사람들을 통해 자연스레 국민과의 소통이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처음에는 권위적이고 호통 치는 판사였지만 “비폭력 대화”에 대한 교육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오래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었으며, 또한 권위 의식을 벗고 진심으로 피의자들이나 재판 참여인들과 소통을 나누게 되었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법관 파면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려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린 연임심사와 대통령의 임명으로 결국 권력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대법원장 임명 제도, 도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배석판사제도 등등 현 사법제도의 모순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개혁방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 분량 자체가 300 여 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쉽게 쓴 이야기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다만 서 전 판사도 아쉬워했듯이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법개혁”의 진정한 의미와 개혁 방법들은 실천적이고 구체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이 책 만으로는 서 전 판사의 사법개혁에 대해서 동의나 반대 등 특정 입장을 표방하기엔 부족할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심정적으로 그의 생각에 공감을 하지만 공론화되기에는 좀 더 다듬고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사법개혁에 대한 방향 제시로서의 가치보다는 서기호 전 판사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수준 정도로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수구언론의 적대적인 기사들이나 또는 일방적인 옹호 기사들로만 그를 접해본 분들과 그의 정치 행보를 삐따닥하게 바라보는 분들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서 전 판사의 진정성과 품성을 알게 되고는 그에 대한 오해는 이제 말끔히 씻어낸 것 같다. 그러나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이상 과거의 진정성으로 그를 평가하기에는 역시나 부족할 것 같다. 그동안 국민의 종이 되겠다느니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느니 낮은 자들의 벗이 되겠다느니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선배 정치인들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복마전(伏魔殿)보다 더 하다는 정치판에 나선 이상 이제 그는 공감과 응원의 대상이 아닌 그가 보여준 진정성이 과연 지켜질 지 계속 지켜봐야 할 감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국민 판사라는 수식어를 뛰어넘어 “국민 정치인”이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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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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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록(Rock) 밴드나 헤비메탈(Heavy Metal) 밴드 공연에 가 보면 이상한 모양의 손짓을 자주 볼 수 있다. 검지, 새끼손가락은 치켜세우고 나머지 엄지, 중지, 약지손가락은 굽혀 손바닥에 대는 모양의 손짓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해방”,“일탈”,“자유”라는 “록 정신(Rock Spirit)”이나 “놀아보자”라는 의미의 “Rock On"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는 아무 의미 없는 손짓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치켜세운 검지와 새끼손가락이 사탄의 상징인 염소의 뿔을 의미하기 때문에 록과 헤비메탈은 악마의 음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록과 헤비메탈의 직설적이고 강렬한 가사와 연주,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너무 과장되게 의미 부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뭏튼 소, 염소, 사슴 등 동물에게는 흔하지만 사람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뿔”을 악마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는 정말 뿔이 없을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머리에 뿔 난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뿔이 난 사람들 사진이 실려 있는 어느 블로그 글에서는 이웃 중국에는 고령층의 노인들 중에 뿔이 난 사람들의 사례가 여럿 있으며, 예멘에서는 102살 먹은 노인의 머리에 45cm가 넘는 큰 뿔이 달려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뿔이 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화에 따른 피부 변형으로 여겨진다고 하며, 보기가 흉한 것 외에는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런 노화나 피부 질환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머리에 뿔이 자라나 있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속내(眞心)를 털어놓게 만드는 악마적인 능력이 생긴다면 과연 어떨까? 언뜻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뭔가 기이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왠지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지금부터 소개할 “조 힐(Joe Hill)”의 <뿔(원제 Horns / 비채 / 2012년 8월)>이 바로 이런 상상을 활자로 담아낸 소설이다.

 

 밤늦게까지 술을 진탕 마셔대고는 1년 전 애인인 “메린 윌리엄스”가 살해된 곳인 주물공장 너머 숲 속에 가서 누군가가 추모하기 위해 세워 둔 십자가와 성모상을 짓밟고 오줌까지 눠 버리는 온갖 추태를 부린 “이그”는 아침에 일어나 변기 앞에 놓인 세면대 거울을 보고 그만 움찔하고 만다. 관자놀이에 두 개의 뿔이 자라나 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 밤에 한 짓 때문에 벌어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 이그는 같이 동거하고 있는 “글레나”에게 얘기해보지만, 글레나는 도넛만 먹어대며 자신의 친구인 “리”와 주차장 한복판에서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벌였다고 횡설수설해대기만 한다. 그런 글레나를 뒤로 하고 머리에 난 뿔 때문에 병원에 가보지만 대기실 앞 접수원은 자신의 뿔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기실에서 울부짖는 아이와 엄마를 심하게 욕해대고, 아이의 엄마나 진찰하는 의사와 간호사도 묻지도 않았는데도 자신의 불륜 행각이나 마약 복용 등 감히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속내들을 이그에게 술술 털어놓고 시시콜콜히 털어놓으며, 손끝만 스쳤는데도 과거의 행각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사실 이그는 1년 전 메린을 살해한 범인으로 오해를 받아 구속까지 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었는데, 메린을 잃은 슬픔과 자신에 대한 따가운 눈총을 견디지 못해 어젯밤에 그렇게 과음하고 추태를 벌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과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이 메린을 죽였다고 대놓고 말하고, 심지어 자신의 무죄를 믿어줄 줄 알았던 할머니와 부모님마저 이그가 죽였을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가족들의 말에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그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던 형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메린이 죽던 날 밤 형은 그 현장에 있었으며, 범인의 정체가 다름 아닌 이그와 가장 가까운 “누구”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돋아난 두 개의 뿔의 악마적인 능력으로 메린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고 이그는 메린이 죽었던 옛 주물공장 창고에서 범인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에 두 개의 뿔이 갑작스레 자라나 있다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호러, 추리(스릴러), 판타지, 연애소설, 성장소설, 거기에 간간히 터져 나오는 유머에 이르기까지 대중소설의 모든 요소와 장점들이 잘 혼합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악마의 상징인 “뿔”이 머리에 돋아나면서 주인공은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능력을 펼쳐 보이는 데, 사람들의 속내를 털어놓게 하고 신체 접촉만으로 과거의 일들을 알아내며, 태곳적부터 악마의 시종으로 잘 알려진 “뱀” -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던 악마가 바로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들을 불러 모으고, 역시나 악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불(火)”에 휩싸여서도 어디 한 곳 화상 하나 입지 않고 입었던 상처마저 깔끔하게 치유되는 능력을 선보인다. 즉 앞서 록 공연에서의 손짓은 오해이겠지만 여기서 뿔은 악마의 상징, 그 자체인 셈이다. 작가는 이런 호러와 판타지 소설적 요소를 주요 뼈대로 하되, 주인공의 애인인 메린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추리 소설적 요소와 이그와 메린, 리의 첫 만남과 성장과정,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성장소설과 연애소설적 요소를 가미하고, 주인공에게 자신의 비밀을 술술 털어놓는 주변 인물들의 장면들에서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의 유머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요소들을 억지로 끌어 맞추다 보면 요소들끼리 겉돌아서 이야기가 들 떠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전혀 그런 억지스러움과 부조화를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각 요소들과 이야기를 절묘하게 융합시켜 여느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참 독특하고 이색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개인적으로 이런 독특함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공포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인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 “조 힐”이 바로 스티븐 킹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읽은 것이 아니라 다 읽고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작가 소개글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스티븐 킹 소설과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던 내 느낌이 그대로 맞아 떨어져 마치 반전(反轉)을 맛보는 것처럼 놀라고야 말았다. 작가는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 힐이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런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 이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독특한 소재와 상상력 만큼은 결코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책은 5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책인데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이 책의 가장 큰 소재인 “뿔”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기대했던 것 보다는 밋밋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주인공이 각성(覺性)하면서 점점 능력이 커지기는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정도의 능력에 그치고 말고, 특히 범인과의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는 오컬트(Occult) 영화에서 볼 법한 불가사의하고 공포스러운 위력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영 싱겁게만 느껴졌다. 이왕 사실성을 버린 판타지적인 설정이었다면 악마적인 능력으로써 뭔가 좀 더 거창하고 치명적인 능력을 선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뿔이 돋아난 현재와 주인공들이 처음 만났던 청소년 시절, 메린이 죽던 날의 상황 등 빈번한 시점 변환 등은 각각의 상황과 내막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효과가 있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갈등이 막을 내리고 이제 악마가 되어 버린 주인공이 사라져 버리는 결말 또한 불명확하고 모호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 선한 품성과 함께 마음 속 깊이 잠재되어 있는 악마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본질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 등 이 책의 주제 의식들도 책의 재미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들이라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글이 쓸데 없이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이 글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이런 주제의식들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독특하고 이색적인 소재, 대중 소설의 재미와 장점들의 적절하고 절묘한 조화, 극적인 이야기 전개와 결말 등 이 책, 분명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재미있는 책이다. 요즈음 스티븐 킹이 전성기 때만큼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아쉽게까지 느껴지는데, 이제 아들이 이 정도 성취와 재미를 선보이고 있다니 한때 스티븐 킹 식 공포와 상상력에 푹 빠졌었던 나로써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재미 면에서는  분명 훌륭하지만 약간은 아쉬운 점도 있어 별점을 어떻게 평가할 까 살짝 망설였는데 아버지를 능가하는 조 힐 만의 공포와 재미를 선보일 그의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기꺼이 별 다섯개 만점을 준다 . 작가 이력을 보니 이미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에 올린 작품도 여럿인 작가의 미래를 위한다니 영 멋쩍기만 하지만^^ 아뭏튼 조 힐, 분명 이름을 기억해 둘 작가 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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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픽션 호러픽션 1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8월 중순 들어 비가 잦아지면서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2012년 여름은 그 어느 해 여름보다 덥고 힘들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산, 바다, 계곡 등 피서지(避暑地)마다 사람들로 넘쳐 났다고 하는데 시간과 돈의 제약 때문에 이번 여름휴가도 결국 집에서 보내고 말았다. 에어컨, 선풍기, 수박 등 더위를 식혀줄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해보지만 그때만 잠시 시원할 뿐이고, 이런 방법들도 결국 돈이 필요- 에어컨과 선풍기를 연일 틀어댔던 터라 벌써부터 전기요금 고지서가 두려워진다 - 한 방법들이니 알뜰족 들에게는 부담되는 방법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값싸면서도 효과가 확실한 피서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 소설과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여름은 공포 영화와 소설의 계절이라고 잘 만든 공포 소설과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그 무서움 때문에도 그렇고 여느 장르 소설들보다 강력한 재미와 몰입감 때문에 더위를 싹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장이 옥죄어 들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책에 고개를 쳐박고 눈길을 절대 돌릴 수 없게 만드는 공포소설만의 치명적인 “마력(魔力)”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 성격이라 공포 소설을 읽으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여서 꺼려하긴 하지만 올여름은 공포소설이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무더워서 올여름에는 일부러 공포소설 몇 권을 선택해 읽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인 <호러픽션(양국일, 양국명 공저 / 청어 / 2012년 7월)도 그래서 선택한 책으로 올여름 읽은 공포소설 중에서는 세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우연찮게도 세 권 모두 한국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앞서 두 권 중 한 권은 은근하고 오싹한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긴 했지만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진 않았고 다른 한 권은 공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무서움의 정도가 너무 밋밋했던, 두 권 모두 “공포소설”로만 한정짓는 다면 다소 실망스러웠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작가들이 10년 가까이 공포소설을 집필해 온 중견 작가들인데다가 제목부터 아예 “공포(Horror)"를 표방하고 나온 작품이니 만큼 극한의 공포로 무더위를 확 날려줄 것으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어서 책을 받자마자 공포소설답게 음산한 표지를 열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종종 공포소설들을 보면 작가들이 책 속 글귀를 통해서 공포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서문인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들의 생각을 먼저 밝히고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고 있다. 작가는 공포소설에는 기존의 모든 것을 뒤엎고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거대한 힘이 있으며, 자신이 공포소설을 쓰는 이유를 공포는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늘 함께 하는 “동반자”와도 같은 것이기에 공포라는 장르로 구축할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으며, 공포라는 장르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도 무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공포소설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열편의 작품이 한데 묶었으며, 자신의 공포소설에 대한 꿈과 열망, 도전으로 탄생한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공포와 재미 면에서 자신 있다는 얘기일 텐데 과연 속 내용은 어떨까?

 

 

책에는 열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변형된 인간들이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을 공격하고(<침입자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는 괴물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일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으며(<괴물이 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할머니는 관 속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제사상을 바라보고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사자와의 하룻밤)>, 한편 성폭행 당해 죽은 누이를 대신하여 형제가 만월(滿月)이 뜨는 밤이면 성폭행범들을 살인하고(<만월의 살인귀>), 악명 높았던 전직 건달은 자신이 운영하는 모텔 지하에서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잘라내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며(<묵도의 밤>), 부산 해운대로 MT를 간 대학생들은 인근의 흉가(凶家)에 들어갔다가 그 집에서 숨어 살고 있던 연쇄살인범을 맞닥뜨리게 된다(<유령의 집에서>). 또한 사업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생각하는 한 남자는 일주일전 자신의 살인을 의뢰했다며 파란 옷을 입은 자살 주식회사의 킬러들에게 쫓기고(<자살 주식회사>), 예지몽을 꾸는 한 남자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호텔의 한 여자 투숙객이 자살하는 장면을 꿈꾸고는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서며(<꿈속의 그녀>), 한 여학생은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학생을 떼어내기 위해 이리떼가 출몰하는 산 속 깊은 곳으로 있지도 않은 장미를 꺾어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지만 아침에 자신의 우체통에 꽂혀있는 핏빛 붉은 장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붉은 장미>).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원귀(寃鬼)들이 흉가에 출몰하여 사람들을 살해하는 작품(<향전>)도 있다. 이처럼 작가는 서로 다른 상황과 느낌의 열 편의 단편들을 통해 다채로운 공포의 향연(饗宴)을 펼쳐 보이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꽤나 이색적이고 상황과 이야기도 꽤 무섭지만 20~30 페이지의 너무 짧은 분량에 상황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모두 담아내려고 한 탓인지 무서울 만 하면 바로 끝이 나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역시 공포소설은 중반까지 세세하고 치밀한 심리와 상황 묘사를 통해서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중반 이후 속도가 급 빨라지면서 종반에 확 몰아치며 결말 나버리는 공포소설만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재미일 텐데, 이 책 에서는 분위기 조성이 생략된 채 주로 사건의 전개와 결말 위주로만 진행되고 있어 그런 공포 분위기를 한껏 맛보기에는 그 분량이 너무 짧았다. 편 수 를 줄이고 좀 더 살을 붙여서 대 여섯 편 만 실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좀비 소설을 연상시키는 <침입자들>이 그런 면에서 참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이렇게 단편으로 끝낼 께 아니라 좀 더 긴 호흡과 상황 설정으로 장편으로 펼쳐 낸다면 여느 외국 좀비 소설 못지 않은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블랙 유머가 가미된 <자살 주식회사>와 사이코 패스 연쇄살인범이 인상적인 <묵도의 밤> - 잔인한 장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긴 하지만 -, 갈수록 늘고 있는 여중고생 성폭행 사건과 함께 미성년자 범행에 대한 법적 모순을 짚어낸 <만월의 살인귀>,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고전적인 공포의 진수를 보여준 <향전> 만큼은 소재와 공포 분위기 면에서 기발하고 색다른 공포를 맛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선하고 기발한 공포와 재미를 맛볼 수 있었고, 앞서 읽은 두 책 보다 확실히 무섭기는 했지만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은 아닌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 작품이었다. 물론 예전보다 어지간한 공포스러움에는 무뎌진 내 개인적인 취향 탓일 테고 꽤 무서웠다는 평들도 있으니 무서움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은 이상 공포 소설 몇 권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단 한 밤 중에 읽으면 더위와 함께 그날 밤 꿈자리(熟眠)도 날아갈 판이니 환한 대낮에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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