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픽션 호러픽션 1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8월 중순 들어 비가 잦아지면서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2012년 여름은 그 어느 해 여름보다 덥고 힘들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산, 바다, 계곡 등 피서지(避暑地)마다 사람들로 넘쳐 났다고 하는데 시간과 돈의 제약 때문에 이번 여름휴가도 결국 집에서 보내고 말았다. 에어컨, 선풍기, 수박 등 더위를 식혀줄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해보지만 그때만 잠시 시원할 뿐이고, 이런 방법들도 결국 돈이 필요- 에어컨과 선풍기를 연일 틀어댔던 터라 벌써부터 전기요금 고지서가 두려워진다 - 한 방법들이니 알뜰족 들에게는 부담되는 방법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값싸면서도 효과가 확실한 피서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 소설과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여름은 공포 영화와 소설의 계절이라고 잘 만든 공포 소설과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그 무서움 때문에도 그렇고 여느 장르 소설들보다 강력한 재미와 몰입감 때문에 더위를 싹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장이 옥죄어 들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책에 고개를 쳐박고 눈길을 절대 돌릴 수 없게 만드는 공포소설만의 치명적인 “마력(魔力)”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 성격이라 공포 소설을 읽으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여서 꺼려하긴 하지만 올여름은 공포소설이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무더워서 올여름에는 일부러 공포소설 몇 권을 선택해 읽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인 <호러픽션(양국일, 양국명 공저 / 청어 / 2012년 7월)도 그래서 선택한 책으로 올여름 읽은 공포소설 중에서는 세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우연찮게도 세 권 모두 한국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앞서 두 권 중 한 권은 은근하고 오싹한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긴 했지만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진 않았고 다른 한 권은 공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무서움의 정도가 너무 밋밋했던, 두 권 모두 “공포소설”로만 한정짓는 다면 다소 실망스러웠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작가들이 10년 가까이 공포소설을 집필해 온 중견 작가들인데다가 제목부터 아예 “공포(Horror)"를 표방하고 나온 작품이니 만큼 극한의 공포로 무더위를 확 날려줄 것으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어서 책을 받자마자 공포소설답게 음산한 표지를 열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종종 공포소설들을 보면 작가들이 책 속 글귀를 통해서 공포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서문인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들의 생각을 먼저 밝히고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고 있다. 작가는 공포소설에는 기존의 모든 것을 뒤엎고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거대한 힘이 있으며, 자신이 공포소설을 쓰는 이유를 공포는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늘 함께 하는 “동반자”와도 같은 것이기에 공포라는 장르로 구축할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으며, 공포라는 장르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도 무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공포소설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열편의 작품이 한데 묶었으며, 자신의 공포소설에 대한 꿈과 열망, 도전으로 탄생한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공포와 재미 면에서 자신 있다는 얘기일 텐데 과연 속 내용은 어떨까?

 

 

책에는 열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변형된 인간들이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을 공격하고(<침입자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는 괴물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일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으며(<괴물이 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할머니는 관 속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제사상을 바라보고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사자와의 하룻밤)>, 한편 성폭행 당해 죽은 누이를 대신하여 형제가 만월(滿月)이 뜨는 밤이면 성폭행범들을 살인하고(<만월의 살인귀>), 악명 높았던 전직 건달은 자신이 운영하는 모텔 지하에서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잘라내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며(<묵도의 밤>), 부산 해운대로 MT를 간 대학생들은 인근의 흉가(凶家)에 들어갔다가 그 집에서 숨어 살고 있던 연쇄살인범을 맞닥뜨리게 된다(<유령의 집에서>). 또한 사업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생각하는 한 남자는 일주일전 자신의 살인을 의뢰했다며 파란 옷을 입은 자살 주식회사의 킬러들에게 쫓기고(<자살 주식회사>), 예지몽을 꾸는 한 남자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호텔의 한 여자 투숙객이 자살하는 장면을 꿈꾸고는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서며(<꿈속의 그녀>), 한 여학생은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학생을 떼어내기 위해 이리떼가 출몰하는 산 속 깊은 곳으로 있지도 않은 장미를 꺾어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지만 아침에 자신의 우체통에 꽂혀있는 핏빛 붉은 장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붉은 장미>).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원귀(寃鬼)들이 흉가에 출몰하여 사람들을 살해하는 작품(<향전>)도 있다. 이처럼 작가는 서로 다른 상황과 느낌의 열 편의 단편들을 통해 다채로운 공포의 향연(饗宴)을 펼쳐 보이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꽤나 이색적이고 상황과 이야기도 꽤 무섭지만 20~30 페이지의 너무 짧은 분량에 상황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모두 담아내려고 한 탓인지 무서울 만 하면 바로 끝이 나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역시 공포소설은 중반까지 세세하고 치밀한 심리와 상황 묘사를 통해서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중반 이후 속도가 급 빨라지면서 종반에 확 몰아치며 결말 나버리는 공포소설만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재미일 텐데, 이 책 에서는 분위기 조성이 생략된 채 주로 사건의 전개와 결말 위주로만 진행되고 있어 그런 공포 분위기를 한껏 맛보기에는 그 분량이 너무 짧았다. 편 수 를 줄이고 좀 더 살을 붙여서 대 여섯 편 만 실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좀비 소설을 연상시키는 <침입자들>이 그런 면에서 참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이렇게 단편으로 끝낼 께 아니라 좀 더 긴 호흡과 상황 설정으로 장편으로 펼쳐 낸다면 여느 외국 좀비 소설 못지 않은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블랙 유머가 가미된 <자살 주식회사>와 사이코 패스 연쇄살인범이 인상적인 <묵도의 밤> - 잔인한 장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긴 하지만 -, 갈수록 늘고 있는 여중고생 성폭행 사건과 함께 미성년자 범행에 대한 법적 모순을 짚어낸 <만월의 살인귀>,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고전적인 공포의 진수를 보여준 <향전> 만큼은 소재와 공포 분위기 면에서 기발하고 색다른 공포를 맛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선하고 기발한 공포와 재미를 맛볼 수 있었고, 앞서 읽은 두 책 보다 확실히 무섭기는 했지만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은 아닌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 작품이었다. 물론 예전보다 어지간한 공포스러움에는 무뎌진 내 개인적인 취향 탓일 테고 꽤 무서웠다는 평들도 있으니 무서움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은 이상 공포 소설 몇 권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단 한 밤 중에 읽으면 더위와 함께 그날 밤 꿈자리(熟眠)도 날아갈 판이니 환한 대낮에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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