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 빅엿’ 양심 판사, 사법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
서기호.김용국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TV 방송을 보다 보면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MC, 국민 여동생 등 “국민”을 수식어로 붙여진 연예인들을 여럿 보게 된다. 그만큼 세대를 불문하고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뜻일 텐데, 수긍이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고개가 갸우뚱대는 것을 보니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 수식어인 것 같다. 그런데 연예인이 아닌 데도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것도 우리랑은 전혀 별개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법조인 “판사(判事)” - 물론 지금은 전직(前職) 판사이지만 - 에게 말이다. 법조인들 중 “국민”이란 호칭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면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유일한 분일 텐데 감히(?) 누가 이런 호칭을 받고 있는 걸까? 바로 트위터(twitter)에 “가카 빅엿”이라는 글을 올려 유명했던, 그리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法服)을 벗고 지금은 야당 국회의원이 된 “서기호” 의원이 그이다. 트위터 사건 때부터 그 분의 아이디를 팔로잉해오고 있고, 인터뷰 기사와 사건 해설 기사들을 찾아 읽어서 내막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과연 이 분이 국민 판사로 불릴 정도로 업적이나 또는 사법개혁에 대한 어떤 복안이나 의지가 있는 지는 잘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바로 <국민 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 빅엿 양심 판사, 사법 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오마이북/2012년 7월)> 라는 책 말이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서 총선(總選)은 진작에 끝났는데, 정치인 책들치고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의아해서 살펴보니 출판사 소개글에 이 책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서기호 판사와 김용국 「오마이뉴스」시민기자가 직접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긴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나온다. 즉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자서전이 아니라 비교적 오랜 시간 인터뷰를 통해서 만들어낸 책인 것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인 “서기호” 전(前) 판사 - 국회의원이니 의원으로 호칭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인터뷰를 진행했을 당시에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또한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자신의 인생사와 판사시절에 대한 회고(回顧)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호칭은 “전(前) 판사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 는 “서기호의 이야기; 국민판사로 새 인생을 시작하다”에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날이라는, 사법부의 판사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법원 직원들과 공무원노조가 자발적으로 마련해준 “국민과 소통하는 사법부의 양심 서기호 판사 퇴임식”이 열렸던 “2012년 2월 17일”에 얽힌 전후 사정들과 자신이 야당의 비례대표로 선거에 나선 이유를 들려준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은 법률 전문가의 시각에서 어렵게 쓴 이론서가 아니라 비전문가인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소통의 관점에서 기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가카 빅엿’, 재임용 탐락 등의 사건들이 한 때의 치기나 유명세에 기댄 것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시류에 휩쓸려 우발적으로 한 행동들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해왔으며, 이 책이 단순한 자기변명이나 혹은 정치판에 뛰어들기 위한 출사표(出師表)은 아니라는 말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본문에 들어서면 1,2장에서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함께 판사로서 지난 10년 간 겪어온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사(個人史)이긴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거셌던 80, 90년대를 함께 살아온 동시대의 청년으로서 시대에 대한 고민과 일반인들에게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만 느껴지는 판사로 재직하면서 피의자들이나 주변 법조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다른” 판사가 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3장에서부터 그를 세상에 알리게 한 사건들, 즉 촛불재판 파동, 사법주권을 위협하는 한미 FTA, “가카 빅엿”으로 유명했던 트위터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업무 성적 낙제 판사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 쓰고 판사직을 그만 두어야 했던 사건의 전후 사정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마지막 5장에서는 사법개혁을 위한 자신의 소신을 하나하나 밝힌다. 어쩌면 이 책의 핵심이 바로 이 5장라고 할 수 있는데, 서 전 판사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냈지만 아쉬운 부분과 부족한 점이 계속 눈에 보인다며 앞으로 더 많은 경험과 연구,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서장에서 솔직하게 밝히며, 아울러 ‘국민판사 서기호’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지런히 실천하고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이 책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서 전 판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판사도 자유로운 표현을 할 권리가 있으며, 사법개혁은 “소통”을 통해서라는 이 두가지 일 것이다. 서 전 판사는 판사도 인간이기에 1인 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권리가 있으며, 특정 언론과 대법원의 눈치 때문에 매우 위축되고 불편하고 찜찜해서는 안 되며, 일반인들 뿐 아니라 판사에게도 사생활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라고 말한다. 또한 사법개혁의 핵심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관료 시스템을 깨는 것인데, 이건 국민과 함께 해야 하며, 자신은 비록 10년간 법복을 입다가 강제로 벗게 됐지만, 이제는 더 멋있는 국민법복을 입었기 때문에 훨씬 든든하다고 말한다. 또한 법원이 국민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대법원과 평판사 사이, 대법원과 일반 직원 사이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법원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부분은 이른바 밑바닥 민심과 관계가 없으며, 밑바닥 민심은 결국 직접 맞부딪치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법원의 구성원인 평판사, 일반 직원과 대법원이 제대로 소통한다면 이 사람들을 통해 자연스레 국민과의 소통이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처음에는 권위적이고 호통 치는 판사였지만 “비폭력 대화”에 대한 교육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오래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었으며, 또한 권위 의식을 벗고 진심으로 피의자들이나 재판 참여인들과 소통을 나누게 되었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법관 파면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려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린 연임심사와 대통령의 임명으로 결국 권력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대법원장 임명 제도, 도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배석판사제도 등등 현 사법제도의 모순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개혁방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 분량 자체가 300 여 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쉽게 쓴 이야기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다만 서 전 판사도 아쉬워했듯이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법개혁”의 진정한 의미와 개혁 방법들은 실천적이고 구체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이 책 만으로는 서 전 판사의 사법개혁에 대해서 동의나 반대 등 특정 입장을 표방하기엔 부족할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심정적으로 그의 생각에 공감을 하지만 공론화되기에는 좀 더 다듬고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사법개혁에 대한 방향 제시로서의 가치보다는 서기호 전 판사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수준 정도로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수구언론의 적대적인 기사들이나 또는 일방적인 옹호 기사들로만 그를 접해본 분들과 그의 정치 행보를 삐따닥하게 바라보는 분들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서 전 판사의 진정성과 품성을 알게 되고는 그에 대한 오해는 이제 말끔히 씻어낸 것 같다. 그러나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이상 과거의 진정성으로 그를 평가하기에는 역시나 부족할 것 같다. 그동안 국민의 종이 되겠다느니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느니 낮은 자들의 벗이 되겠다느니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선배 정치인들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복마전(伏魔殿)보다 더 하다는 정치판에 나선 이상 이제 그는 공감과 응원의 대상이 아닌 그가 보여준 진정성이 과연 지켜질 지 계속 지켜봐야 할 감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국민 판사라는 수식어를 뛰어넘어 “국민 정치인”이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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