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인간이 가진 고등한 능력이라고 한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을 만약 선택했을 때 벌어질 일들을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 해보고 그 결과가 현실의 선택보다 낫다고 판단될 때 후회를 한다

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꿈꾸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건, '전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p.148)는 강한 의지일 뿐이라고 한다. 

사람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함으로써 다음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조금씩 발전하는 존재이다. 후회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뇌가 보내는 신호라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와 더 나은 삶을 위한 뇌과학자 정재승이 제안하는

열두 가지 이야기가 흥미롭다. 

우리는 인생을 리셋할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후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망과 후회의 차이가 뭘까요? (...) 실망하니까 후회하는 걸까요? 실망 다음에 찾아오는 감정이 후회일까요? 실망과 후회는 같이 따라다니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신경과학적으로 보자면 이 두 단어는 굉장히 다른 뇌 영역에서 처리됩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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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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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은 1984년 공쿠르 상 수상작으로 프랑스령 베트남을 배경으로 15살 소녀의 욕망, 비정상적이고 가난한 가족으로 인한 아픔과 외로움, 수치심, 분노 등을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탄 배 위에서 소녀는 부유한 중국인 남자를 만난다. 이 만남으로 소녀는 겉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삶의 고통에서 빠져나와 쾌락에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12살 차이의 중국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15살 소녀의 파격적인 모습은 1992년 장 자크 아노의 동명 영화에서 꽤나 적나라하게 묘사되었지만, 소설은 두 사람의 에로틱한 관계보다는 사춘기 소녀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감춰진 심리에 주목한다. 


나는 그가 내 몸을 즐기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몸을 어떻게 누리는가를 바라보았다. 그런식으로 육체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내가 바라던 것을 넘어, 내 육체의 숙명에 적합한 곳까지 나를 데려갔다. (p.118)


나는 이 상식을 깨는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이야기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읽으면서 아니 에르노와 콜레트 생각도 났다. 프랑스 여성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설명할 때 '솔직함과 당당함'이라는 단어는 늘 따라다닐 거 같다. 

가독성이 좋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여성의 욕망을 독특한 방식으로 탐색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여인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은 화장과 화려한 보석에 있는 게 아니라고 소설 속 화자는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의 주체가 나임을 아는 것이 여자를 진정으로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 사실, 내가 이 책을 통해 깨달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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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9-16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영화도 보지 못했지만,
오래 전 <라망>의 몽환적인 이미지로만
강렬하게 기억되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오리엔탈리즘의 향기도.

coolcat329 2023-09-16 16:46   좋아요 0 | URL
라망이 뭐지? 검색 찾아도 안 나와서 뭐지? 하다가 아! 연인이 불어로 라망이지! 했어요. ㅋ
92년 당시 저는 고딩이었지만 이 19금 영화를 몰래 봤답니다.ㅋㅋ 순진한 저는 충격을 받았다는...관능적이고 몽환적이라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지만 영화를 이해는 못했던 거 같아요.

물감 2023-09-16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흑 저 이거 읽다 포기한...

coolcat329 2023-09-16 16:50   좋아요 1 | URL
물감님 이해합니다. ㅎㅎ
번역이 이상한가, 원래 글이 이런가 갸우뚱하며 물음 표시한 곳도 두세 군데 되네요. 관계는 파격적인데 야하지도 않고 ㅋㅋ

페넬로페 2023-09-16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만 봤는데
책으로 읽고 싶은 소설이예요.
영화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더라고요~~

coolcat329 2023-09-16 16:5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만 치중해서 보여줬어요. 책은 전혀 야하지도 않고 서사보다는 화자의 생각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파편적으로 나오니 읽기 쉽지 않았어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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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이라고 소개했지만, 나에게는 ‘잡담‘이 아니었다. 역시나 물리학과 수학은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뇌과학과 생물, 화학은 재미를 넘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인문학이 당면한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이 물질 세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과학으로 맹자와 칸트의 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공산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생물학을 통해 재미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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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인간이 한낱 ‘유전자의 생존기계라는 사실‘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문과남자의 과학공부>의 작가 유시민도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데, 도킨스의 이론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그럴법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고, ’내가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지 알아서 기뻤‘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그동안 자신이 왜 대답을 못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 삶에 주어진 의미라는 건 없기에 저 질문은 잘못되었다는 사실. 주어진 의미 따위는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가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본능의 동물이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 아주 복잡한 종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작가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보며 자존감이 올라갔다고 한다. 

작가의 다짐이 나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와 적어본다. 근데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는데, 조르바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이 안나다니…서서 죽었구나…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 타인, 사회, 국가, 종교, 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 채 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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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9-15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 걱정 없이
조르바 처럼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매나 좋을까요.

조르바 삶의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에피쿠로스적인 그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coolcat329 2023-09-16 16:5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자기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부러워집니다. 그동안 세상의 시선속에서 갇혀 살았던 느낌이 드는 건 저뿐인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한밤의 아이들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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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15일 인도 독립일에 1001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 중 독립하는 순간, 자정에 태어나 새로 탄생한 인도와 그 운명을 함께하게 된 살림 시나이의 서른 해를 그린 작품. 한 국가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과 버무려 그야말로 인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엄청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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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28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 말았는데... 다시 도전해야지 싶습니다.

coolcat329 2023-08-30 09:09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백 년의 고독>과 비교하게 되더라구요.
뭐가 더 좋은지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둘 다 너무 매력적인 걸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