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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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제인 캠피온의 영화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의 동명 원작 소설이다. 토마스 새비지 (Thomas Savage 1915~2003)가 1967년 발표한 소설로 당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나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1년 <브로크백 마운틴>의 저자 애니 프루의 해설이 담긴 판본으로 출간되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2021년에는 한국어로도 번역, 2022년 나에게도 온 소설이다. 


워낙에 광활한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좋아해서 보려고 했는데, 마침 책이 눈에 띄었고 이상하게도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어 웬만해서 새 책을 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샀다. 여기엔 북플 이웃인 잠자냥님의 리뷰도 한 몫을 했다. 


<파워 오브 도그>는 토마스 새비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는 유타 주 솔트 레이크 시티 출생으로 어머니는 당시 아이다호 주의 유명한 양 목장 소유주의 딸이었다. 두 살이었을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몬태나 주의 부유한 목장주와 결혼하면서 대가족의 일원으로 성장,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은 훗날 작가의 작품에 풍부한 소재가 되었다.


'소 불까기는 언제나 필이 도맡았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파워 오브 도그>는 숫소를 거세하는 묘사로 시작한다. 단순히 거세했다가 아니라 거세의 과정과 그 처리를 보여줌으로써 처음부터 독자의 마음을 바짝 조여들게 만든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이 첫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필과 조지 형제는 몬태나 주 서남부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목장주이다. 버뱅크 목장은 '인근에서 가장 큰 목장'으로 형제는 목장의 공동 소유주이다. 

형인 필 버뱅크는 마흔 살로 목장 일에 최적화되어 있는 마초같은 남자이다.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한 그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머리가 비상하고 말타기, 밧줄 던지기, 목공, 박제, 수학, 체스, 밴조 연주, 휘파람 부는 솜씨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런 필을 두고 사람들은 "아깝기도 하지!" 라고 말하며 뭐든지 될 수 있는 그가 체력만을 필요로 하는 목장에서 그 재능을 썩히고 있음을 안타까워 한다. 또한 어린 시절 우러러 보던 카우보이 '브롱코 헨리'를 숭배하며 그와 함께 말을 타던 시절을 그리워 한다. 일할 때 절대 장갑을 끼지 않고 목욕도 남들이 없는 개울가에서 혼자 몰래 하며 머리도 잘 깍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약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싫어하는데, 일명 '암사내'라 불리는 여자같은 남자들, 거들먹 거리며 술주정 하는 인간들, '스스로를 동정하는 인간들'을 혐오한다. 이런 인간들에게 경멸 섞인 말을 내뱉어 모욕감을 주고 자신의 말로 인해 상대가 상처를 받을 때 희열을 느낀다. 


반면에 서른여덟의 동생 조지는 퉁퉁하고 무뚝뚝하며 느리다. 어떤 취미나 관심사도 없다. 그러나 심성이 착하고 사려가 깊으며 똑똑하진 않지만 기억력이 좋고 느리지만 꾸준하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필과는 다르게 '남에게 연민을 느끼는 재능도 탁월'하다.

이렇게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형제이지만 목장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 두 사람은 '짝꿍이자 형제 이상'의 관계이다. 


이렇게 형제가 같이 목장을 운영하며 말을 타기를 25년,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실을 같이 쓰는 이 두 형제에게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남편을 여의고 식당을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로즈는 가축 계류장인 마을로 천 마리의 소 떼를 몰고 온 버뱅크 목장 일꾼들을 손님으로 받게 된다. 이곳에서 로즈는 조지를 만나게 되고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남편을 따라 버뱅크 목장의 저택에서 살게 된 로즈가 목장 저택에 처음 도착한 날, 필과 잠깐 단둘이 남게 되자 어색함을 깨기 위해 "저기, 필 아주버님, 이렇게 있으니까 참 좋네요." 라고 말을 건넨다. 그러자 필이 빙그레 웃으며 한 말. "누구보고 아주버님이래."


이 날부터 로즈의 삶은 지옥이 된다. 필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로즈의 비위를 상하게 할지 잘 알고 있고, 특별한 대화 없이도 로즈의 신경을 긁는 법을 안다. 로즈는 필이라는 존재가 주는 위압감과 광활한 목장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나날이 지쳐가고 괴로워하다가 조금씩 술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여름이 되어 필이 '암사내'라고 부르는 열여섯 살 로즈의 아들 피터가 여름 방학을 보내기 위해 목장에 오게 되고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소설은 필이라는 인물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막대한 부와 신분, 모두가 우러러 보는 여러가지 재능과 목장주로서의 유능함까지 겸비한 그가 왜 그리 비뚤어지고 모난 사람이 되었을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그가 왜 그렇게 남의 약점을 너그럽게 봐주지 못하고 그것을 조롱하고 짓밟으면서 자신은 그토록 비밀스러운 사람이 되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스스로 외로운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것일까? 좋고 싫은 걸 왜 그렇게 분명히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스스로를 악인으로 만드는가?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묘한 인물인 필 버뱅크. 로즈를 조롱하고 괴롭힐 때는 참 징그럽게 싫다가도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털어놓을 사연 때문에 술 마시기를 두려워 하는 모습은 그도 약한 인간임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을 중심으로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 조만간 끔찍한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과 인물들 사이의 흐르는 묘한 심리는 독자의 마음도 서서히 끓어오르게 만들고 마지막엔 그 섬뜩함에 전율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성경 시편 22장 20편에 나오는 말이다.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저희 하나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 (Deliver me from the sword, my precious life from the power of the dogs.)


책을 다 읽고 개들의 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성경에서는 사탄을 의미하는 거 같은데, 이 소설에서 악은 무엇일까? 역시나 단 하나의 단어로 말할 수 없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읽으면 무심코 지나간 대화나 묘사에 깔린 힌트로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소설이다. 주말에 영화를 봐야겠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해하고 연기한 필 버뱅크는 어떨지 기대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캐스팅을 잘 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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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o99 2022-02-12 00: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습니다. 본다고 해 놓고 못 보고 있었는데, 챙겨 봐야겠네요.

coolcat329 2022-02-12 08:57   좋아요 4 | URL
오 그렇군요! 영화가 더욱 기대됩니다 ~☺

바람돌이 2022-02-12 03: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이영화가 제인 켐피온 감독이군요. 피아노의 그 감독 맞죠? 아 영화도 진짜 궁금한데 그래도 꾺 참고 있다가 책 먼저 읽고 영화볼래요. ^^

coolcat329 2022-02-12 09:00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 책을 먼저 읽으면 영화 속 필을 이해하는데 좋을거 같습니다. 필이란 인간이 상당히 복잡한 인간이거든요. 🤔

잠자냥 2022-02-12 0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새 책 사셨는데 마음에 드셨다니 참 다행이에요! “누구 보고 아주버님이래.” 이 대사 정말 소름끼치죠?

영화는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ㅎㅎ

coolcat329 2022-02-12 09:04   좋아요 4 | URL
네~^^기대보다 더 재미있어 몰입해 읽었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로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많이 와닿더라구요.
한국 드라마 속 무서운 시어머니가 ˝내가 왜 니 어머니야˝ 이 대사와 맞먹는 그런 막강 대사였네요.😥

미미 2022-02-12 0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조만간 읽으려고 책상위에 준비된 책이라 일단 마지막 문단만 읽었는데요. 한 문단만으로도 기대가 더 커졌습니다~♡ 다읽음 리뷰 다시 볼래요.🤭

coolcat329 2022-02-12 13:54   좋아요 3 | URL
오~미미님도 사셨군요.
재밌게 읽으시길요~~😉

미미 2022-02-12 14:09   좋아요 2 | URL
저는 도서관에서 빌렸어요! 예약하고 10흘만인가 받았어요ㅎㅎ

mini74 2022-02-13 1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을 예정 ㅎㅎ 이라 실눈 뜨고 봤어요. 쿨캣님 굉장히 재미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영화도 평이 좋군요 !!!

coolcat329 2022-02-13 11:36   좋아요 3 | URL
네~제 글은 거르시고 책으로 직진하셔용~^^ 영화도 아주 훌륭하더라구요☺

scott 2022-02-14 0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보고 뜸들였다가,,,
쿨켓님 리뷰 읽고

킨들 구매 완료 ^ㅅ^

coolcat329 2022-02-14 08:39   좋아요 2 | URL
오~원서로 읽으시니 부럽습니다 👍 맘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singri 2022-02-14 00: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돈윈슬로가 쓴 개의 힘도 있어서 헷갈렸던 책이에요. 개의힘이 유명한거였네요.

coolcat329 2022-02-14 10:08   좋아요 3 | URL
오~돈 윈슬로의 <개의 힘>을 아시는군요! 아주 예전에 읽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저도 이 책 보고 돈 윈슬로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반갑습니다 😁

singri 2022-02-14 10:19   좋아요 4 | URL
김은희 작가가 강추라고해서요. 절판이라 사보지는 못하고요ㅜ

coolcat329 2022-02-14 10:25   좋아요 4 | URL
김은희란 작가를 모르지만 강추라니 반갑네요. 저도 정말 돈 윈슬로 <개의 힘>강추에요.
절판이라 아쉽습니다.

coolcat329 2022-02-14 10:27   좋아요 4 | URL
아! 김은희 작가 찾아보니 유명한 드라마 작가군요! 킹덤, 지리산...

singri 2022-02-14 10:31   좋아요 4 | URL
김은희도 킹덤할때 주지훈이 추천해서 읽었대요. 드라마덕후라ㅋ
암튼 이책도 흥미돋네요

얄라알라 2022-02-15 2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DUNE]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the power of the dog]이란 제목 처음 봤는데 coolcat님 리뷰 읽으니, 완전 재밌겠는데요. ˝누구보고 아주버님이래˝ 이 응수 대사에서 완전 긴장도 급상승....영상으로도 재미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