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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나무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나무는 자라서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지. 비록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일부는, 땅 속에 조금이나마 뿌리를 뻗고 있는 일부는 계속해서 잎과 꽃을 피우는 거야. 나무는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면서도 결코 비통해하거나 자신을 동정하는 법이 없어. (p.274)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반전문학으로 유명한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 가 1954년 발표한 소설이다.
레마르크는 1898년 독일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던 중 징집되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이 체험을 바탕으로 1929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그러나 나치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나치와 전쟁을 비판하는 그의 작품들은 불태워지고 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 1939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작품활동을 계속한다.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가던 2차 세계대전 막바지,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고 악취를 풍기는 죽음'으로 가득찬 러시아의 독일군 전선에서 주인공 에른스트 그래버는 2년 만에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고향은 연합군의 무자비한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어있고 부모님의 생사도 알 수가 없다. 폐허 더미에 둘러싸인 도시는 더 이상 자신이 그리워하던 고향이 아니었다.
'나는 폐허들을 수없이 보아 왔어. 하지만 진짜 폐허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오늘에서야 진짜를 본 거야. 바로 이 폐허를. 이것은 다른 폐허들과는 달라.' (p.123)
그래버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어머니가 치료를 받았던 크루제 박사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박사의 딸이자 같은 학교를 다녔던 엘리자베스를 만나게 된다. 크루제 박사는 독일의 승리를 의심했다는 누군가의 밀고로 수용소로 끌려간 상태이고, 엘리자베스는 애국단 일원인 리저 부인의 감시 속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치는 전쟁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고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살 수밖에 없으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습에도 대비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
한편 그래버는 한동안 보지 못한 동급생들도 우연히 만나는데 그들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무릎 위를 절단한 친구, 팔꿈치 아래로 두 팔을 잃은 친구, 이미 죽은 친구들, 미쳐버린 친구 등의 소식은 그래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과거 동창생 알폰스 빈딩은 잘나가는 돌격대 대장이 되어 전리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자신의 권력에 취해있고, 그가 어울리는 수용소 소장 하이니는 자신이 친위대 보안부에 있었을 때 자행한 집단 살육의 체험담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래버는 알폰스에게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묻지만 알폰스는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 되는 거야. 책임 같은 건 없어."(p.238)라고 말한다.
그래버는 강제 징집과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자신이 늘 진실을 회피해 왔음을 깨닫는다. 정의감과 연민은 '이기주의와 무관심과 불안감에 부딪혀 언제나 난파하기 마련'이라는 사실과 함께 자신도 간접적으로 이 범죄에 얽혀 있음을 깨닫는다.
배신당하고 기만당한 자신의 삶을 깨달은 그는 스승 폴만을 찾아간다. 폴만은 학교에서 파면당하고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 숨어지내고 있는 상태로 그래버는 폴만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저는 지난 십 년 동안의 범죄에 제가 어느 정도 관계되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미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쟁을 계속하는 건 정부와 당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일으킨 인간들이 권력을 좀 더 연장하려고 하기 때문이고, 그 결과 더 많은 불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일선으로 가고, 그것을 알면서도 공범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해야 할까요?" (p.247,248)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전쟁, 그러나 거부하면 총살을 당하고 철통같은 감시 속에서 탈영도 불가능하며 부모님에게도 보복이 가해질 것이다. 스스로 몸을 불구로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거의 언제나 발각이 되고 역시 처형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지혜로운 스승이라도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자네를 대신하여 결정할 수가 없네."(p.251)
그러나 다음의 말도 잊지 않는다.
"공범! 공범 관계라고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알고 있나? 자네는 아직 어렸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도 전에 거짓으로 중독되었던 거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그것을 눈앞에서 보고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무엇 때문에? 나태한 마음? 무관심? 이기주의? 혹은 절망이라고 할 것인가? 어떻게 해서 그런 페스트가 만연하게 되었을까? 자네는 내가 이 일을 날마다 외면한 채 지낸다고 생각하나?" (p.252)
그래버는 폴만 선생의 집을 나온 후, 광장의 커다란 보리수 나무를 보며 강한 생명의 힘이 자신의 내부로 밀치고 들어옴을 느낀다. 살아도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마침내 살아있음을 느끼며 남은 이 주간의 휴가 동안 폭격에 뿌리가 뽑혀나가도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자신의 생명의 힘을 믿기로 결심한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와 마지막일지 모를 소중한 시간들을 보낸다.
휴가가 끝나면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래버는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는 것인가?' 그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나를 지탱해주는 닻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버는 우린 곧 헤어져야 하지만 결혼하면 덜 외로울 거라며 청혼을 한다.
그동안은 살아도 죽어도 별 차이 없는 삶이었지만 엘리자베스에게 닻을 내린 그래버는 삶에 애착을 갖고 희망을 품게 된다. 두 사람은 시립학교 체육관에서 결혼을 하고, 너무나 짧은 신혼생활을 뒤로 한채 그래버는 다시 전장으로 떠난다.
<피에 젖은 땅>을 읽고 2차 세계대전에 관심 생겨 읽게 되었는데, 연합군이 아닌 독일병사와 독일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을 그려 다시 한번 전쟁은 누구에게나 비극임을 느끼게 되었다.
레마르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생명,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인간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것들이 전쟁에 의해 얼마나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3주 휴가 동안 사랑하고 삶의 애착을 느낀 그래버는 살아있음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죽음이 판치는 전장으로 가야했다...
이 작품의 원제는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으로 '살아있을 때와 죽을 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