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폴이었다. 세실리아는 전화기 너머로 듣는 존 폴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깊게 울리는 소리였다. 정말로 세실리아의 남편은 대책이 없었다. 끊임없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지각을 밥 먹 듯 했다
하지만 언제나 가족을 알뜰하게 보살피는 남자였다. 이건 남자가 할 일이지, 라는 태도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전형적인 가장이었다. 브리짓의 말이 맞아. 세실리아의 세계를 지배하는사람은 세실리아다. 하지만 위기가 닥칠 때, 그러니까 총을 든 미친 남자가 뛰어들어오거나 홍수나 화재가 났을 때 피츠패트릭 집안의 네 여자를 구할 사람은 존 폴이다.
"무슨 편지?" "자기가 나한테 쓴 편지." 세실리아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되도록 가볍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야 이 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아무것도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기가 죽은 다음에 펴보라는 편지 말이야."
펠리시티야말로 <도전! FAT 제로>에서 간절히 찾는 그런 사람이다. 뚱뚱한 몸에 갇혀 있는 매혹적인 미인.
결국 승리를 얻어냈다. 웃는 얼굴은 어제, 아직 윌과 펠리시티의비밀을 모르고 있을 때 그려넣은 것이다. 테스가 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두 사람은 유감이라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작은 비밀을 고백하면 저렇게 웃는 얼굴을그릴 수 없을 텐데 하고 말이다.
TWF 광고사입니다. 테스, 월, 펠리시티, 세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따 꿈에 그리던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그저 한번 해보면 어떨까? 했던 바람이실제로 이루어진 거다.
유당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이 그러듯, 테스는 수줍음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혔다.
테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펠리시티와 내가사랑에 빠졌어." "아주 재밌네." 테스가 머그잔을 모으며 웃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는 거야? 두 사람이 영혼의 동반자라고?" 윌은 뺨을 실룩거렸고, 펠리시티는 머리카릭을 잡아당겼다. 그렇다는 말이군. 그게 바로 두 사람이 생각하는 거였다. 그래. 진정한 사랑이야. 우린 영혼의 동반자라고!
제이컵을 처음 품에 안고 부드럽고 연약한 머리에 입을 맞춘 순간, 레이첼은 시들어버린 식물에 물을 주자 다시 살아난 것처럼자신의 삶도 다시 살아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갓 태어난 아기 냄새가 레이첼의 폐에 산소를 가득 불어넣었다. 누군가가 드디어 레이첼이 수년 동안 매달고 다녀야 했던 무거운 추를 받아든 것처럼허리가 쭉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동안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다시 색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레이첼은 아들이 엄마의 인생을 잊어버린 건지, 처음부터알지 못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전혀 흥미가 없는 건지 궁금했다.
레이첼은 자신의 인생이 카드로 만든 것처럼 이렇게 연약한 줄은 몰랐다. 롭과 로렌이 월요일 밤에 쳐들어와 카드로 만든 집에서 아주 중요한 카드 한 장을 저렇게 즐거워하면서 빼내갈 줄은몰랐다. 제이컵이라는 카드가 빠지면 레이첼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지고, 남은 카드들은 나풀거리며 땅바닥에 내려앉을 것이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레이첼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았다. <도전! FAT 제로>에 출연하는 트레이너 목소리였다. 레이첼은 그 프로그램이 좋았다. 총천연색 가짜 세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1984년에 가족에게 그 일이 생긴 뒤에 레이첼은 롭을 훨씬 더많이 사랑했어야 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사랑하는 능력을 완전히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 능력은 제이컵이 태어난 뒤에야 다시 돌아왔다.
폴리는 비밀을 사랑했다. 두 살 때 이 세상에 비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폴리는 끊임없이 비밀을 말했고, 비밀을 공유했다.
절대로 열어보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이젠 절대 열어볼 수없게 됐다. 차라리 말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세실리아는 차를 다 마시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모든 여성이 간절히 원하는 걸 지닌 아이는 어떤사람으로 자랄까? 세실리아가 보기에 아름다운 여자들은 자신이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예쁜 여자들은 엄청난 관심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같다. 세실리아는 딸들이 뛰고, 성큼성큼걷고, 발을 구르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폴리가 마구 흔들리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일부러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레이첼은 자신이 며느리를 얼마나 싫어하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미워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강철 바이스가 레이첼의 가슴을 움켜잡고 강하게 조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혀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고통 아래에서 침울하지만 차분한 경험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겪어본 일이잖아. 이것 때문에 죽진 않아,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지만사실은 숨을 쉬고 있잖아, 결코 눈물을 멈추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 멈추게 될 거야.
레이첼은 항상 눕는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불은 켜두었다. 자니가 죽은 뒤부터 레이첼과 에드는 어둠을 참지 못했다.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잠을 자지 않는 것처럼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해야 했다.
그저 아는 것은 제이컵이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지면 다시 견딜 수 없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아니, 사실 가장 끔찍한 일은 그런 삶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가장 끔찍한 일은 그런 삶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성당은 그녀가 영원히 응원할 팀이다. 하지만 신에 대해 말하자면, 그(또는 그녀)가 맡은 바 일을 잘하고 있는지는전혀 다른 문제였다.
세실리아는 브리짓에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신장을줄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이지 브리짓 위에 올라타 베개로얼굴을 깔아뭉개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어렸을 땐 그게 브리짓에게 규칙을 지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른이 되면 진짜 감정을 숨겨야 한다.
세실리아는 편지를 꺼내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는 읽어볼 수도 없고, 읽을 생각도 없다.
테스는 네 상여군이 관을 들고 영구차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났다. 저 사람은 얼굴을 간질이는 이 햇빛을 다시는 느끼지 못하겠지. 테스는 고통을 잊기 위해 죽음을 사색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날씨도 테스를 도와주지 않았다. 너무 지나치게 사랑스러워서, 꼭 테스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 너는 뭐가 문제니? 시드니가 테스에게 말했다.
두사람이 데이트를 하고 몇 달도 되지 않아 윌은 "당신이 없으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당신은 꼭 있어야만 잘 수 있는 베개 같아. 가는 곳마다 가져가야겠어" 라고 했다.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이야. 벨 씨네 큰딸인데, 피츠패트릭네큰가를 준 꽃이랑 결혼했어, 아들들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내가 보기게 가장 갈생긴 아들 말이야. 세실리아한테 동생이 있지. 다 같은 학년이었을 텐데, 누구더라. 그래 브리짓 벨."
이런 세상에. 테스는 모든 기운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말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그런기분이 들었다.
세실리아가 테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세실리아는 한참 동안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인거다. 테스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맞아요. 레이첼 크롤리 아주머니 말예요. 정말 효율적인 분이에요. 꼭 스위스 시계처럼 학교를 운영하시죠. 우리 시어머니랑같은 일을 나눠서 하시지만,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사실 레이첼이 일을 다 하세요. 시어머니는 그저 잡담만 하시죠. 이건 내가 하면 안 되는 말이긴 하지만, 저런, 근데 이미 말해버렸네요."
테스와 테스의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둘 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이런 순간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빠와의 대화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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