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난 정말 조금도 안 변했구나. 조앤 스쿠다모어는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건 날씬한 중년 여성이었다. 얼굴은 팽팽하고갈색 머리에 흰머리는 거의 없었다. 파란 눈은 명랑해 보이고미소짓는 입가에는 활기가 넘쳤다. 단정하고 세련된 코트와 치마를 입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넣은 꽤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 괜찮아졌다. 조앤이 나서서 필요한 일들을 처리했다. 아기와 윌리엄, 회복되고 있는 바버라, 모든 일을 계획해서 순조롭게 돌아가게 해놓았다. 정말 다행이야, 

난 언제나 일을 잘 해결하니까. 
조앤은 생각했다.

"그래봤자 하인들에게 뭘 바라겠니?" 조앤이 말했다.
"엄마의 하인들은 완벽하잖아요. 엄마가 관리를 잘하시니까!" 바버라가 말했다.
조앤은 바버라의 말을 웃으며 흘려들었지만 내심 흐뭇했다.

누구나 칭찬을 좋아하는 법이니까. 이따금 그녀는 자신의 능숙한 살림과 보살핌과 헌신을 가족이 너무 당연시하는 건 아닌지의심이 들었다.
물론 비난하는 건 아니다. 
토니, 에이버릴, 바버라는 흡족한자식들이고, 그녀와 로드니는 자신들의 올바른 양육과 성공한인생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했다.

자식들 모두 훤칠하고 건강하고 행실이 발랐다. 조앤은 자기부부가 정말 다복하다고 느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부모 노릇을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조앤은 거울에서 눈을 돌리며 자신에게서 빛이 난다고 느꼈다. 그래, 자기 일에서 성공했다고 느끼는 건 정말 흐뭇한 일이야

나는 직업이나 그 비슷한 것을 갖고 싶었던 적이 없었고 아내이자 엄마로 만족스러웠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고, 남편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어. 그 성공 역시 내 덕분이라 할 수 있지, 사람은 영향을 받는 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내 소중한 로드니!

블란치 해거드, 세인트 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조앤은 블란치를 얼마나 숭배했던가! 누구랄 것 없이 블란치에게 열광했다.
블란치는 대담하고 재미있고 말로 다 못 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볼품없이 마르고 부산하고 너저분하고 늙수그레한 여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스웠다. 별난 차림새라니! 게다가 그녀는…. 적어도 예순 살은 되어 보였다. 정말 그쯤으로 보였다.
블란치는 불행하게 살아온 게 틀림없어. 조앤은 생각했다.

"귀여운 바버라 레이가 네 딸이었구나. 그걸 보면 사람들이얼마나 사정을 오해하는지 알겠다. 다들 그 아이가 불행한 가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맨 처음 청혼한 남자와 결혼했다고 알고 있거든."

"우리 둘 다 새로운 일은 원하지 않아. 로드니와 나는 서로에게 완벽하게 만족하거든."
"넌 늘 지독하게 냉정했지. 네 남편이 연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더라는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내 말은 다만…… 정말 유감이라는 거야."
"나한테?" 블란치는 그런 생각이 재미있는 듯했다.
 "넌 친절한 사람이야. 하지만 함부로 동정하진 마. 난 지금까지 꽤 재미있게 살아왔으니까."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친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블란치는자기가 한심해 보인다는 걸 알까?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조앤은 의심스러우면서도 약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될까?"

"하긴 세상이 그런 거지. 붙어 있어야 할 때는 그만두고, 내버려두어야 할 때는 매달리고, 한순간 인생이 너무나 멋져서 이게현실일까 믿기지가 않다가, 이내 지옥 같은 고민과 고통 속을헤매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 그런데 그렇지가 않지 ㅡ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이제 절대 위로 올라가 숨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게 인생이잖니?"

로드니가 연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더라고 했나? 천박한 표현하고는, 게다가 완전히 틀린 말이잖아, 완전히 틀린 말! 로드니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이전과 같은 생각이 마음의 표면을 지나갔다. 
하지만 뱀처럼재빨리 스쳐지나지는 않았다.
랜돌프 계집애……

내가 그때 현명하고 요령 있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조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화자찬하는 환한 표정으로 그때 자신이 한 처신을되새겼다. 그녀는 그 상황을 아주 잘 처리했다. 사실 아주 잘했다. 가볍게 해치웠다.

"아뇨, 아예 못 들어옵니다. 누사이빈 쪽에 큰비가 내렸거든요. 선로가 넘쳐서 사흘이나 나흘, 아마 대엿새는 기차가 다니지 못할 겁니다."
조앤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는 뭘 하죠?"

"로드니,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죠! 바버라는당연히 그를 사랑해요! 사랑하지 않는다면 대체 왜 결혼하겠어
"내가 걱정하는 게 그거지." 로드니는 좀 어눌하게 대답했다.

"집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하는 여자도 있어."
조앤은 갑자기 웃음이 났다.
"설마 바버라가 그럴 리가요! 우리처럼 행복한 가정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해, 조앤?"

"제가 엄마의 경험과 지혜라는 특별한 것 없이 혼자 배를 저어가야 한다는 것 같네요." 바버라가 미소지으면서 대담했다.

눈에 익은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전율했다. 그의 뒷모습이 갑자기 젊어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어깨를 펴고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앤에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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