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셀다운에서 그가 레슬리 셔스턴과 앉아 있던 저녁이었다그들은 1미터쯤 거리를 두고 앉아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조언은 두 사람이 그리 친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랬다. 조앤은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 봄 이후...… 우리가처음 만나 사랑한 봄 이후......
나는 쭉 내가 있던 자리에 있었어 - 블란치가 옳았어 - 나는 세인트 앤을 떠났을 때 모습 그대로야. 쉬운 삶, 나태한 사고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
용기가 없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러고서 다시 생각했다. 로드니에게 가자. 미안하다고 말하면 된다. 용서해달라고…….…그래, 그렇게 말하면 된다.용서해줘요. 난 몰랐어요. 난몰랐을 뿐이에요.....

조앤은 겉으로는 조용하고 유능한 여행자의 모습을 되찾았다. 며칠 전 바그다드를 떠난 스쿠다모어 부인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겉모습 안에 감춰진 놀랍고 무서운 변화는 조앤 자신만 알았다.

☆"사랑하는 사림들에게 너무 매정했고, 그들을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로드니에게 잠시 시간을 주자. 이 사람에게 시간을 줘야해...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

로드니는 편지를 든 채 잠시 망설였다. 편지를 보관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편지였다. 그의 딸이 아빠에 대한믿음과 신뢰를 글로 공공연하게 밝혔으니까.
하지만 변호사로 살면서 보관한 편지의 위험성을 많이 목격했다. 너무 자주 보았다. 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그녀 자신이 만든 밝고 확고한 세상에서 행복하고 안전하게 남게해주고 싶었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에이버릴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게 에이버릴이었다. 과장이 없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았다. 인생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어 있었고, 타인의 도움 없이 삶을 살아낼 능력이 있었다.

로드니는 진정으로 행복한 육 주였다고 생각한다.

그랬다. 가상의 레슬리였다. 하지만 진짜 레슬리가 어딘가에,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하지 않으리.

"불쌍한 우리 아기." 로드니는 강렬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녀가 남편을 빤히 보았다. "뭐가 불쌍한데요? 그리고 나는애가 아니에요."
"나 여기 있어요, 아기 조앤이요. 아무도 옆에 없으면 난 혼자예요." 로드니가 평소의 놀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조앤은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서 숨가쁘게 말했다.
"난 혼자가 아니에요. 난 혼자가 아니라고요. 내겐 당신이 있잖아요."


"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로드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알았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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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이자 엄마라 자부하며 살아가던 조앤.
위중하던 막내딸을 보살피기위해 바그다드에 다녀오던 중, 폭우로 사막 한 가운에 자리한 인도인이 운영하던 작은 숙소에 머물게된다.
그 곳에 머무는 며칠동안 무의식적으로 알고있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체 무시하며 살았던 그녀의 인생 전반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자신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무너졌던 자신을 일으켜세워, 그녀가 잘했던 일들을 말하고 바로잡고자 다짐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추리의 여왕이 써 온 그 많은 반전 결말 중 가장 소름끼치고 등골서늘해지던 결말이었다.
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슬프기도했던 마지막.




















마치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청년이 플랫폼을 활기차게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그녀가 로드니 스쿠다모어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세월이 그를 비껴간 것 같았다. 그를 적극적이고 자신감넘치는 청년으로 되돌린 것 같았다.
마치 세월이 그를 비껴간 것 같아 ...
햇볕이 쏟아지는 사막에서 조앤은 갑자기 견디지 못하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방금까지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플랫폼을 기운차게 걸어가던 로드니, 버거웠던 짐을 내려놓은 듯 경쾌하게 걸어가던 ......

그녀에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있지도 않았던 일을 상상하고 지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장난을 쳤을 뿐일텐데,
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로드니의 뒷모습이 정말 어땠지? 지난 일을 명확하게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만해.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어. 

하지만 뭔가를 상상한다는것 가체가 그런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있다는 뜻이다. 사실일 리 없었다. 
그녀가 단순하게 내린 판단이 사실일리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로드니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반겼다니….…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사실일 리 없었다!

조앤은 핼링 숲의 오솔길을 걸어 애셀다운의 황량한 갓길로빠져나왔다. 곧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둘은 움직이지 않고가만히 앉아 멀리서 희미하게 빛니는 시골 풍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조앤은 마음이 놓였다. 머나 랜돌프가 아니라 서스턴 부인이었다! 둘은 가까이 앉지도 않았다. 적어도 1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이상한 거리였다. 친근하지 않은 거리!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친근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부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아마 그녀는 산책을 나왔다가 로드니와 우연히 마주쳤을 것이고, 로드니가 평소처럼 예의를 지키느라 같이걸어줬을 것이다.

애셀다운 산마루로 오른 두 사람은 잠시 쉬면서 경치를 감상했다.
사실 두 사람이 움직이지도 대화하지도 않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다정하지 않았다. 각자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아니면 말을 붙이거나 대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을까.

진실한 두 마음의 결합에 방해를 허락지 않으리
변화가 생길 때 변하고없애자고 없애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리
아, 그렇다!
사랑은 폭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지표,
높이는 잴 수 있어도 그 진가는 알 수 없는
모든 정처 없는 배들의 별,
사랑은 세월의 노리개가 아니리
비록 죽음의 낫이 장밋빛 입술과 뺨을 베어낼지라도
사랑은 짧은 시일에 변치 않고심판의 날까지 견디어내리
이것이 틀린 생각이고 그렇게 증명된다면

☆나는 글을 쓰지도, 어떤 인간을 사랑하지도 않았으리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요. 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까지 엄마로서의 희생과 아이들을 위해 한 헌신을 그려해보면…또 도마뱀이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에이바릴은 언제예의를 갖춰 물었지만 조앤은 그 이성적인 분위기가 직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실제로 뭘 하시는데요? 엄마는 우리를씻겨주지 않아요, 그렇죠?"

"그만하자. 에이버릴.‘
에이버릴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그 아이는 말로 타이르면 잘들었다. 한 번도 반항하거나 뻗대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버릴의순종은 대놓고 반항하는 것보다 더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제 특별히 한마디만 더 하겠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 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길비 선생님."

"왜냐하면 앙트르 누 , 그게 네 작은 단점이니까. 안 그러니, 조앤? 그러니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라. 또책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조앤, 인생은 지속적인 진행이어야 한단다. 과거의 나를 디딤돌로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거지. 고통과 괴로움이닥칠 거야, 누구나 겪는 일이지. 심지어 우리 주님마저도 인생의 괴로움을 고스란히 겪으셨다. 그분이 겟세마네의 고통을 아셨던 것처럼 너도 그 괴로움을 알게 될 거다. 네가 그것을 모른다면 네 길이 진정한 길에서 멀리 벗어났다는 이야기야, 조앤.

아니, 아니야. 또 이러면 안 돼. 그전에도 시를 외워보려다가실패했잖아 완전한 실패, 시에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어. 영혼 깊은 곳을 날카롭게 찌르는 뭔가가 있어………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영혼 깊은 곳을 탐구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녀는 영성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넌 늘 지독하게 냉정했지…..
왜 블란치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불쑥 들어올까? 천박한데다 캄견하는 말투까지, 정말 블란치다웠다! 

"맞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러는 건 아니야. 시골의 변호사는 인간관계의 약한 면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보는 사람이야 - 의사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래서이 일을 하다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인간이란 원래 나약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탐욕에 약한 존재지.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게 이타적이고 용감한 인간을 보게 돼.
어쩌면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폭넓은 동정심을갖게 되는 건지도 몰라."

"당신은 무슨 일에도 오랫동안 속을 끓이는 타입이 아니지."
"글쎄요." 그녀는 남편의 지적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서말을 이었다. 물론 나는 아주 차분한 성격을 가졌죠. 당신도 알겠지만,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게 인간의 의무예요."
"감탄스럽고 편리한 감정이야!"

조앤은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지만, 그런 마음이 어머니가 짜증나는 인간이라는 사실까지 가려주지는 않았다. 요령도 꾸준함도 없는 면모는 무책임한 명랑함과 충동적인 따뜻한 마음으로도 벌충되지 않았다.

조앤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쓴 편지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결혼 20주년 기념일에 쓴 편지였다.

오늘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없어서 몹시 쓸쓸하오. 지금까지 당신의 사랑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오늘의 당신이 내게 얼마나소중한지 이 편지를 통해 모두 말하고 싶소, 당신의 사랑은 내평생의 더없는 축복이고, 나는 이 축복과 당신을 주신 신에게 감사하오...

조앤은 레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불쌍할 뿐이었다. 대리석 묘석 아래 누워 있는 불쌍한 레슬리,
조앤은 몸을 떨며 생각했다. 추워, 누가 내 무덤 위를 걷고있어.

☆☆두렵고 위협적이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겁나는 무엇.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것. 그녀가 할 수 있는일이란 회피, 왜곡, 외면.....

우스운 일이다! 조앤 스쿠다모어를 소개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쿠다모어 부인.
정말 흥미롭다.…자신을 만나다니…자신을 만나다.
맙소사. 그녀는 두려웠다..
소름끼치도록 두려웠다

☆조앤은 그들 하나하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를 보며 씩 웃는, 그녀를 비웃는.
모두 진실의 편린들이었다. 조앤이 이곳에 도착하자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앤이 해야 할 일은 그 조각들을 맞추는것뿐이었다.
그녀의 삶 전체……… 조앤 스쿠다모어의 진짜 이야기……

블란치가 뭐라고 했었지?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그 말에 그녀는 얼마나 우월감 넘치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얼마나 멍청하게 대답했던가.

하지만 조앤은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가여운 아이에게 가보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칭찬할 만한 충동이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진실의 일부분에 불과한 게 아닐까?

여행을 한다는 데 마음이 끌렸던 건 아닐까? 신선함에,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사실에?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세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것을 보여줄 것이다.
한 가지 실마리는 어제 발견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온몸을 휘감는 맹목적인 공포감을 그때 처음 느꼈으니까.

그녀는 시를 암송했고, 거기서부터 일이 시작됐다.
☆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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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진을 잘라 선동적인 방식으로 붙인다. 여기에 드로잉을 첨가하고 다시 자른다. 신문 조각이나 오래된 편지,
그리고 주위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은 무엇이나 붙인다. 그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미쳐버린 세상과 대결하는 것이다." -한스 리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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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 미니앨범 답장
김동률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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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 감동이었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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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 2집 희망 [재발매]
김동률 노래 / 포이보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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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들어도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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