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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들의 바로 옆에 있어서 너무나 익숙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 아니 부동산시장에선 가격의 기준이 된지 이미 오래고 부동산 시장의 가장 매력있는 투자처가 된 아파트. 그러나 좀더 깊이 있게 우리의 삶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바로 아파트다. 이제는 어디사니?가 아니라 어느 아파트에 사니?로 상대방의 주거에 관한 질문을 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아파트는 보통사람들의 거처로서 상징적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목이 대단히 선동적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아파트에 미쳐있다는 이야기다. 영어의 어딕션이 어디에 빠져서 못헤어나는 의미라면 아파트 어딕션이란 말도 가능할 것같다. 아파트 중독...... 나역시 결혼후 소형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우려 여덟, 아홉번을 아파트 평수와 경쟁하며 이사한 끝에 이제 소위 빌라라고 하는 연립주택에 도달했다. 넓은 의미로 보면 아니, 서양개념의 아파트 의미로 보면 우리나라의 빌라라는 것도 아파트에 다름없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아파트 거주자인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아파트라는 물건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 사회학적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만을 보았을 때 아파트가 미치는 도시환경의 추한 모습에 대한 비판적 글이려니 하고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보다 건축학적인 시선이 강조되어야하는 테마일 것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해서 아파트라는 주거환경과 처음 접했고 어떤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아파트라는 건물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사적으로 검토한 후에 아파트라는 한 대상의 사회적 속성들을 분석고찰해나간다. 거기에는 이데올로기와 미시적 규모의 정치적 의미도 포함된다.
홍콩에 갔더니 구룡반도의 좁은 길에는 현대건설이 지었다는 초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좁은 땅에 최대의 주거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카이 스크래퍼의 초고층 아파트들이 필요하리라. 홍콩에는 화장장도 도심한가운데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떤 건축가는 서울이란 도시는 공간효율성이란 면에서 좀더 높아져도 된다는 말을 한다고도 한다. 강남과 여의도에 이어 용산을 뒤덮어가는 초고층 력셔리 아파트들을 보며 걱정도 되었는데 아직은 더 높아져도 된단 이야기인가.
지방의 왠만한 도시에도 15층짜리 이상의 아파트들이 늘어간다. 80년대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경부선을 오가며 간혹 볼 수 있었던 지방 도시의 아파트들이었건만 이제 수도권의 비교적 덜 개발된 지역에도 빈틈없이 아파트가 들어섰다. 한국에 아파트가 뒤덮인 이유로 책은 기본적으로 알려진 것들 외에 공급과 수요라는 두 측면에서 접근했다.가장효율적인 주택공급방식으로 아파트를 택한 정책이 그 한 원인이고 한편 수요의 차원에선 난방과 방범및 부대시설이라는 차원에서 무시못할 편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제개발정책과 발전한 국내 건설기업체들의 기술성장이란 배경도 중요한 한몫을 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이슈에 대한 논쟁적 서술이리라는 기대와 달리 많은 부분 분석적 접근에 책을 할당한다.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과 더불어 조장된 신분차별적 의미, 부의 원천으로서의 투자가치로서의 의미, 개폐식 삶으로 일원화된 주거모습이란 의미, 아파트내에서의 새로운 사회공동체 현상, 구조에서의 한국적 아파트의 등장등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아파트를 해체한다. 마지막 장에서 한국의 건축문화와 관련하여 단독주택 멸종위기, 작금과 미래의 아파트 전성시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보여주지만 독자의 기대에는 크게 부족하다. 저자는 강릉의 선교장, 해남의 녹우당, 담양의 소쇄원과 같은 귀중한 문화유산이 100년, 200년 뒤에 후손에게 전해질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한다.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할 주택문화의 상징물이 남을 수 없으리라 예감했다. 물론 타워 팰리스가 100년뒤 흉물스런 모습으로 전해지진 않을지 모르겠다. 80년 뒤쯤에는 완벽한 폭파기술을 이용해 말끔히 청소하고 그 자리에 다시 또다른 스카이 스크래퍼를 쌓아 올릴 것이다. 아, 갑갑한 마음을 달래줄 진정한 건축가의 시선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