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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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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암호는 적이 알지못하도록 문자나 숫자로 표시한 내용을 말한다. 꼭 전쟁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라는 테두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알기를 원치 않는 의도가 들어있다. 알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알면 안되는 경우에 필히 암호가 사용된다. 소설 다빈치코드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면서 중세이후 가톨릭교회 영향권에서 살아온 서구의 역사와 그에 맞선 기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교회에 의해 정형화되어간 탄생설화와 신격화된 예수의 생애로 말미암아 종교의 지배를 허용한 인간의 어두운 역사를 밝히는 것은 소설차원을 넘어서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암호는 은밀하다. 한 무리의 구성원이 아니라면 암호는 해독되지 않는다. 암호는 외적인 억압에서 발생한다. 어떤 암호가 만들어진 상황에 가해진 외부로부터의 억압의 성격은 암호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르네상스시대는 가톨릭에 반하는 다양한 숨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과학으로 설명되는 새로운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입을 강요당하는 시대에서 암호는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외쳐댄 이발사의 심정을 반영할 것이다.
보이니치 코드는 예일대 고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지금까지 해독되지 않은 고문서이다. 1912년 폴란드 고서 수집상인 보이니치가 구매한 책으로 로저 베이컨이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 책은 영국 점성가 존 디로부터 독일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루돌프 2세가 금화 600두카트를 주고 산 것으로 보인다. 1912년 윌프리드 보이니치는 로마근처 예수회 학교에서 이 필사본을 구입했고 1969년 그의 미망인으로부터 H.P.크라우스가 구입해 바이네케 도서관에 기증했다.
스페인 출신 작가 엔리케 호벤은 이 보이니치 코덱스를 소재로 한 장편을 썼다. 예수회 신부 엑토르를 주인공으로한 이 소설은 다빈치코드처럼 현란한 구성과 스릴러풍을 기조로 하지 않는 탓에 전체 흐름이 느슨하게 느껴지지만 글은 리듬감있게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다. 물리학자이기도 한 작가는 루돌프 2세치하의 프라하에서 왕실과학자였던 티코 브라헤와 그의 문하에 들어와 잠시 함께 작업을 한 요하네스 케플러의 이야기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미해독 암호문서와 동시대 과학자들과의 연관성을 유도한다. 그는 케플러에 의해 예수회 수도원에 이 문서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덴마크 출신인 티코 브라헤가 유복한 귀족 출신이었던 것에 비해 어려운 경제난에 시달렸던 케플러가 그의 스승을 독살했을지 모른다는 가설의 책이 나와 있다고 한다. 작가는 미국인 길더부부가 쓴 책에 짙어져있는 케플러의 혐의를 무화시키고 싶은 의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의 움직임을 지적한다. 체코여행당시 프라하성 뒷편에 서 있던 케플러의 동상을 보고 독일 사람이 왜 프라하에 있는지 의아했었다. 그가 루돌프 2세치하의 행성학자였던 것을 진즉 알았더라면 이해가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여행을 같이한 일행은 근처에 밥먹을 식당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잠시 그의 동상앞에서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중학시절 내가 처음으로 동경한 천문학자가 케플러였다.
이 책의 원제는 별들의 城이다. 작년 여름 한 방송에서 보이니치 코드를 소개하는 바람에 네티즌의 관심대상이 되었기에 이 책도 그 붐을 타고 이름을 이렇게 붙인 모양이다. 케플러의 묘비글 중 한 구절처럼 육신은 비록 땅에 있지만 영혼은 우주에 있을 역대 천문학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호모사피엔스이후 인간종의 한계능력은 초기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 싶다. 아무리 기술 발전 정보발전을 외쳐대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기술혜택수준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첨단을 부르짖는 동시에 창조론수호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이순간도 역시 암호해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