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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평점 :
이 책의 지은이처럼 나도 위로 딸 아래로 아들을 두었다. 지금으로부터 5-6년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을 떠올려본다. 아마 그때가 아이들과 함께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방학이면 여행도 가고 연휴만 되어도 뭔가 아이들에게 구경시켜주고 싶어 이곳 저곳 많이 다녔다. 대학시절 못가본 도산서원 다산초당 보길도 하회마을 등을 이 시절 가족과 함께 여행했고 아이들은 모든 걸 기억 못하더라도 내게는 아련히 흐믓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큰 애가 대학에 들어가고 작은 애가 고딩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지난 여름에는 다 큰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유럽에 갔는데 동행한 한국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공부할 얘들이 따라왔다는 듯 말이다. 다른 가족에 비해 그래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비교적 많다고 보는 우리도 이제 황금기는 갔다는 느낌이다. 얘들은 저마다 머리가 커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편하고 또 해야될 공부가 무엇보다 많다.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이켜보니 현재가 보이고 과거가 더 뚜렷하게 그려진다. 이 책의 지은이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장 멋진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사랑과 행복이 펑펑 넘쳐나고 있다.
지은이는 생각이 뚜렷하고 아이들에 대해 최선의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물론 아이들이 오물 조물 커 오는 시기를 거쳐 말귀도 알아듣고 귀여운 짓에서 좀더 어젓하고 신통방통한 행동을 할 무렵에는 어떤 엄마도 맛있는 반찬을 해주고 화목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엄마는 참으로 개성있고 더욱 열심인 파리지엔느 엄마다. 글을 써가는 솜씨에 세상을 보는 나름의 주관이 살살 배어 있어 독자들의 마음도 후련해지곤 한다. 자신의 일을 접고 두아이의 엄마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더 우선적인 가치로 둔 사람이다. 그녀 주변의 파리 여인들은 아이 다섯을 낳고 남편과 이혼하거나. 자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냉동식품으로 아이들 식사를 대신하는 것에 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더블 인컴이 되기 위해선 필히 노키즈라야 된다는 사실은 실제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자녀를 완벽하게 맡아줄 대행자를 가진 사람은 어느정도 예외일 것이다. 나역시 아이가 둘이 되자 삶이 난장판이 되는 것같았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니 자연히 내 공부와 일이 멀어져갔다. 선택은 힘들지 않았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기에. 그리고 지금도 별로 후회는 않는다. 가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모락거리긴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도 선택에 의한 행복한 삶을 이야기한다.
현비란 아이는 글로 보는데도 기특하고 예쁘다. 파파노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깨진 뒤의 이 아이의 모습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했다. 요맘때 아이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엉뚱한지 나도 속깊은 아이들의 마음에 여러번 놀래고 흐믓해 했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제2의 이유기를 맞는다. 그 귀엽고 사랑스럽던 아이들은 어떨땐 완전히 불가사의한 존재가 되어 부모 속을 파헤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은 어찌보면 일종의 정떼기일 것이다. 그 과정이 모두 암흑기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청소년기는 부모와 아이의 또다른 관계를 정립한다. 좀더 성숙한 무언의 이해과정이 더해진다. 이 엄마의 제 2막도 궁금해지는 것이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도 아마 슬기롭게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파리 남자랑 결혼해 아이둘 낳고 파리에서 사는 여러가지 모습들이 풋풋하게 정겹게 다가온다. 자상한 시부모님, 양로원에 있는 시할머니, 아이들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과 이웃 푸줏간아저씨와 폴란드 배관공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사람들이 눈앞에 있는 듯 그려진다. 아이와 함께 그렸다는 연필화는 더욱 책의 풍미를 더한다. 콘서바토리에서 누구나 손쉽게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풍토가 부럽다. 일년에 8주를 휴가로 받는 공무원들에게 질투심도 난다. 그런데 스멀스멀 머리에 기어다니는 이를 잡아야 한다면 파리, 노댕큐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어쨌든 이 책은 15년 파리 생활을 통해 아기자기한 자신만의 행복을 누릴줄 아는 한 한국인 여성의 똘똘한 에세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