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에게나 하나쯤 어린 시절 읽었던 전집류의 역사소설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박홍근 선생님이 엮은 <우리나라 역사전집>이 그것이다. 전 20권으로 된 그 책은 단군신화에서부터 조선 말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서술해 놓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글자크기는 보통이었지만 행간이 넉넉하고 페이지당 글자수가 빽빽하지 않아 초등생들이 읽어내기에 무리가 없는 편집이었다. 겨울방학내내 이 책을 벗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박홍근 선생님의 필체가 그동안 접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리라' 등으로 끝나는 문장들이 많아 나역시 작문시간이나 독후감에 이렇게 끝나는 문장을 익숙하게 사용했던 것같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장들과 재미있는 이야기 구성이 어린 마음을 무척이나 뒤흔들어 놓았었고 무엇보다 커다란 줄기로 엮어서 꿰뚫을 수 있었던 우리역사이야기가 그렇게 맛갈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화부인과 해모수, 주몽, 온조의 백제건국, 박혁거세, 김알지 등등 삼국초기역사는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서 나온 신비한 이야기들이었고 때때로 난리통에 우뚝선 장군들과 현명한 임금들이 주 등장인물이었는데 나는 그 책의 이순신 이야기를 독후감으로 써서 학년 우수상을 받기도했다. 아마도 내 글쓰기는 이 역사전집 읽기에 그 근간을 둘지도 모른다.  

이 책 삼한지도 꼬맹이적 나의 로망처럼 어느 누군가에게 대 로망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같다. 저자는 중국의 삼국지와 맞서는 우리네 삼국지를 만들고 싶다는 의도에서 이 삼한지를 썼다고 했다. 삼한이라고 하면 흔히 마한 변한 진한이라고 하는 상고시대의 세 부족사회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지칭한다. 말하자면 중국의 그것과 똑같은 삼국지가 되기에 저자는 삼한지라 이름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삼국의 역사를 초기부터 멸망까지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삼국통일을 목표로 인물과 사건의 배경들을 탄탄히 구축해간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출생 배경이 되는 그 친 부모들의 만남과 동시대 왕들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선대에 빼앗긴 영토의 수복을 위한 전쟁과 대중국(수와 당)의 침입에 맞선 명장들의 활약, 지모의 대가 춘추의 놀라운 외교술 등 삼한지 속에 가득한 인간사를 읽어가다보면 때로는 철저한 야사 자료에 기간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세상의 모든 욕망과 희망과 암투와 사랑이 녹아 있음을 공감하게된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땠을까. 중국의 동북아공정이 한창이던 시절 고구려와 발해를 배경으로한 TV드라마가 유행이었다. 그건 정권의 이념과 잘 맞아 떨어졌다. 최근의 역사드라마의 경향이 어떤가는 모두 감지하고 있겠지만 어쨌건 우리에겐 아직도 못다한 고구려에 대한 애석한 꿈이 21세기인 지금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 다행히 이 책에도 을지문덕 장군의 수려한 전략과 그에 속아 넘어간 수양제와 휘하 장군들 얘기처럼 브라보를 저절로 외치게 만드는 부분도 많다. 오로지 외세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대륙땅을 떨쳤던 기상은 고구려가 아니었나 싶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시절을 배울 때 얼마나 감개무량하였나.   

우리네 역사에도 아기자기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는데 저으기 놀랍다. 물론 다들어 아는 얘기인데도 백제 부여장인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드라마틱 스토리다. 부여장을 낳은 부여선과 안향의 만남도 그렇고 김춘추의 부친인 용춘과 천명공주, 그리고 김유신의 부친 서현과 안명의 얘기도 덤으로 얻어가는 러브스토리였다. 장군과 신하와 임금들, 공주와 왕자들, 역모와 배반, 혈투와 승전보 등 삼국 말기의 정세와 사건들을 구수한 고어체로 풀어낸 이 책은 대하소설에 목말랐던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남음이 있다. 

단지 몇가지 아쉬운 점은 옛 지역의 명칭인 군 현 주 등의 정확한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았겠고, 또한 1권에만 있는 역대 왕순서표를 매 권에 실었으면 도움이 되었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도 말했듯이 이야기의 성격상  약간의 고어체적 서술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면 좀더 끊어 읽기가 용이하게 서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반드시 4.4조로 해야 읽기 편한 것은 아니겠지만 리듬을 타고 읽을 수 있다면 다소 걸리적 거리는 생소한 표현들도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기 떄문이다. 더구나 한 장 안에서도 이야기의 도약이 빈번하다 보니 조금전에 백제 이야기에서 언제 신라로 넘어오거나 고구려 또는 중국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지라 독자가 글의 호흡을 쫓아가는데 다소 애로점이 있다. 그러므로 장면이 전환되거나 이야기 내용이 바뀔 때 한 줄을 띄어 서술해주는 배려도 요구된다. 고어체의 장점이자 약점이 한 문장안에 국경을 넘나들수도 완전히 다른 얘기를 뭉뚱그릴 수도 있는 것이기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이 책의 토대가 되었음을 저자는 밝혔다. 물론 전체로 보면 짧은 시기라 할지라도 독자에게는 자료의 어느 부분이 그대로 살려졌으며 또다른 윤색은 없었는지 그 경계를 밝혀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소설로 쓰여진 글이긴 하나 역사이야기니 좀더 사료적 차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적 역사로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삼한지만으로 역사공부를 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잡이도 겸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작가의 고향이 금정산이다. 그래서 작가의 이름도 김정산일까. 내가 나온 초중고교들의 교가에 늘 금정산의 정기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래선지 더욱 반가운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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